입력 : 2012.09.18 23:30
서로 '권력욕 없다'는 野 후보들 담백한 문재인 물러서려 해도
文 앞세운 세력은 '안철수론 親盧의 분노 해결 못 한다' 여겨
安, 친노 압도할 정치적 리더십 못 보여주면 들러리 그칠 수도
- 홍준호 논설위원
권력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게 정설(定說)인 세계다. 이 비정하고 냉엄한 세계의 한복판에 서겠다는 사람들을 상대로 대선을 석 달 앞둔 지금까지 권력 의지가 있니 없니 하는, 태어나서 처음 구경하는 문답이 오가고 있다. 두 사람이 정말로 권력의 단맛과 담을 쌓고 있는지 여부는 곧 벌어질 야권 후보 단일화 게임에서부터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15년 전 대선에서 손을 잡은 DJ와 JP는 상극(相剋)의 정치인이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 사람은 김일성과도 대화해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김일성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10년 전 손잡은 노무현과 정몽준은 한 사람은 현대중공업 대주주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회사에 찾아가 머리띠를 동여맨 노동자들보고 더 싸우라고 등을 떠민 사이였다. 이전 민주당 집권 시대 10년은 이처럼 보통사람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상극 간 정치연대'를 통해 이뤄졌다.
이에 비하면 문재인·안철수 조합은 새누리당이 아무리 '야합(野合)' 운운해도 긴장감부터 떨어진다. 두 달 전 문·안 두 사람이 잇따라 출간한 '사람이 먼저다'와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나서 든 첫 의문은 "두 사람 정책 차이가 뭐지?"였다. 두 사람의 유일한 차이는 문 후보는 민주당 정치인이고, 안 교수는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권을 구체제로 몰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안 교수가 대선 출마를 상의한다며 만난 지난 시대 인사들 면면을 보면 두 사람 간 정치적 차이란 것도 덥석 손에 잡히질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안 교수 출마 선언 이후 야권 내 여론이 문·안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으로 급속히 쏠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관심은 양측 지지도가 팽팽하거나 정당 배경이 없는 안 교수가 제1야당을 대표하는 문 후보를 앞서더라도 그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을 경우다. 이럴 경우 권력욕이 없다고 해온 두 '착한 남자'도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일각에서 거론하듯 한 사람은 대통령, 다른 사람은 국무총리 식으로 손쉽게 나눠 먹기로 갈지 궁금하다.
보통 사람들끼리 벌이는 담력 게임에선 자기 집착이 덜한 담백한 성품의 사람이 먼저 물러서기 마련이다. 문 후보는 말에 군더더기가 없고 행동도 절제된 편이다. 이에 비해 안 교수 언행에선 메시아적 분위기가 풍기는 데다 이따금 '응징' "반쯤 죽여놔야 한다" 등 대중의 정서를 직접 건드리는 표현도 튀어나온다. 또 문 후보는 본인의 독창적 의견을 내기보다 몸담은 조직의 생각을 모아서 대변하려는 쪽인 데 비해 안 교수는 자기 견해를 밝히고 대중의 반응을 살핀 후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런 서로 다른 언행과 스타일로 미뤄 보면 문 후보에 비해 안 교수가 자기주장이 더 강하고 자기 생각에 더 집착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선은 개인을 넘어 세력이 다투는 정치 마당이다. 세력 대결은 어느 후보가 더 착하고 덜 착하냐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무엇보다도 문 후보 뒤엔 '친노(親盧)'가 버티고 있다. 5년 전 대선에서 대패하고 친노·반노(反盧)·비노(非盧)로 뿔뿔이 흩어졌던 야당이 다시 전열을 정비해 여기까지 오는 데 중심 역할을 한 건 3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걸 계기로 다시 결집한 친노다. 친노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자기들끼리만 뭉쳐 폐쇄적이란 소리를 들으며 패권주의 논란을 불렀지만 여전히 민주당을 이끄는 중심 동력(動力)이란 사실이 문 후보 승리로 입증됐다. 민주당 안방을 거머쥔 친노는 앞으로 안 교수까지 끌어안고 가려 하겠지만 가슴에 쌓아온 분노를 안 교수를 통해 해결하고 자신들 미래까지 열어 갈 수 있을 것으론 보지 않을 것이다.
안 교수에겐 열광하는 젊은 세대와 친노에 불만인 민주당 비주류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정치적으로 엮이지 않았고 이들만으로 친노 세력을 대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늘 국민 앞에 대통령 꿈을 내비칠 안 교수는 친노를 압도할 큰 그림을 내보이고 이를 이뤄낼 정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야당 단일 후보로 가는 문을 여는 일부터 힘에 부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