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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착한 남자'의 단일화 게임

화이트보스 2012. 9. 19. 10:23

두 '착한 남자'의 단일화 게임

  • 홍준호 논설위원

  • 입력 : 2012.09.18 23:30

    서로 '권력욕 없다'는 野 후보들 담백한 문재인 물러서려 해도
    文 앞세운 세력은 '안철수론 親盧의 분노 해결 못 한다' 여겨
    安, 친노 압도할 정치적 리더십 못 보여주면 들러리 그칠 수도

    홍준호 논설위원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대선 후보가 된 날 밤 한 방송 앵커가 '권력 의지'를 묻자, "사실 권력 욕심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전부터 자신이 정치에 나선 것은 권력을 원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일만 없었으면 정치에 나서지 않았을 사람이다. 오늘 마침내 대선에 나설 것이라고 입을 뗀다는 안철수 교수도 자신의 정치 참여 여부는 "내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고 자신은 "정치에 호출된 격"이라고 했다.

    권력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게 정설(定說)인 세계다. 이 비정하고 냉엄한 세계의 한복판에 서겠다는 사람들을 상대로 대선을 석 달 앞둔 지금까지 권력 의지가 있니 없니 하는, 태어나서 처음 구경하는 문답이 오가고 있다. 두 사람이 정말로 권력의 단맛과 담을 쌓고 있는지 여부는 곧 벌어질 야권 후보 단일화 게임에서부터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15년 전 대선에서 손을 잡은 DJ와 JP는 상극(相剋)의 정치인이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 사람은 김일성과도 대화해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김일성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10년 전 손잡은 노무현과 정몽준은 한 사람은 현대중공업 대주주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회사에 찾아가 머리띠를 동여맨 노동자들보고 더 싸우라고 등을 떠민 사이였다. 이전 민주당 집권 시대 10년은 이처럼 보통사람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상극 간 정치연대'를 통해 이뤄졌다.

    이에 비하면 문재인·안철수 조합은 새누리당이 아무리 '야합(野合)' 운운해도 긴장감부터 떨어진다. 두 달 전 문·안 두 사람이 잇따라 출간한 '사람이 먼저다'와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나서 든 첫 의문은 "두 사람 정책 차이가 뭐지?"였다. 두 사람의 유일한 차이는 문 후보는 민주당 정치인이고, 안 교수는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권을 구체제로 몰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안 교수가 대선 출마를 상의한다며 만난 지난 시대 인사들 면면을 보면 두 사람 간 정치적 차이란 것도 덥석 손에 잡히질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안 교수 출마 선언 이후 야권 내 여론이 문·안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으로 급속히 쏠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관심은 양측 지지도가 팽팽하거나 정당 배경이 없는 안 교수가 제1야당을 대표하는 문 후보를 앞서더라도 그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을 경우다. 이럴 경우 권력욕이 없다고 해온 두 '착한 남자'도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일각에서 거론하듯 한 사람은 대통령, 다른 사람은 국무총리 식으로 손쉽게 나눠 먹기로 갈지 궁금하다.

    보통 사람들끼리 벌이는 담력 게임에선 자기 집착이 덜한 담백한 성품의 사람이 먼저 물러서기 마련이다. 문 후보는 말에 군더더기가 없고 행동도 절제된 편이다. 이에 비해 안 교수 언행에선 메시아적 분위기가 풍기는 데다 이따금 '응징' "반쯤 죽여놔야 한다" 등 대중의 정서를 직접 건드리는 표현도 튀어나온다. 또 문 후보는 본인의 독창적 의견을 내기보다 몸담은 조직의 생각을 모아서 대변하려는 쪽인 데 비해 안 교수는 자기 견해를 밝히고 대중의 반응을 살핀 후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런 서로 다른 언행과 스타일로 미뤄 보면 문 후보에 비해 안 교수가 자기주장이 더 강하고 자기 생각에 더 집착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선은 개인을 넘어 세력이 다투는 정치 마당이다. 세력 대결은 어느 후보가 더 착하고 덜 착하냐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무엇보다도 문 후보 뒤엔 '친노(親盧)'가 버티고 있다. 5년 전 대선에서 대패하고 친노·반노(反盧)·비노(非盧)로 뿔뿔이 흩어졌던 야당이 다시 전열을 정비해 여기까지 오는 데 중심 역할을 한 건 3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걸 계기로 다시 결집한 친노다. 친노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자기들끼리만 뭉쳐 폐쇄적이란 소리를 들으며 패권주의 논란을 불렀지만 여전히 민주당을 이끄는 중심 동력(動力)이란 사실이 문 후보 승리로 입증됐다. 민주당 안방을 거머쥔 친노는 앞으로 안 교수까지 끌어안고 가려 하겠지만 가슴에 쌓아온 분노를 안 교수를 통해 해결하고 자신들 미래까지 열어 갈 수 있을 것으론 보지 않을 것이다.

    안 교수에겐 열광하는 젊은 세대와 친노에 불만인 민주당 비주류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정치적으로 엮이지 않았고 이들만으로 친노 세력을 대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늘 국민 앞에 대통령 꿈을 내비칠 안 교수는 친노를 압도할 큰 그림을 내보이고 이를 이뤄낼 정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야당 단일 후보로 가는 문을 여는 일부터 힘에 부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