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장인이 내 결혼식 비디오 찍어… 내 아들때도 그렇게 할것"

화이트보스 2012. 10. 15. 13:03

"장인이 내 결혼식 비디오 찍어… 내 아들때도 그렇게 할것"

  • 김수혜 기자
  • 입력 : 2012.10.15 03:02 | 수정 : 2012.10.15 10:23

    [6부-<21>홍명보 감독, 두 아들과 함께 작은 결혼식 약속]
    호화 결혼식 가보니 - 1000명 가까이 불러서 누군 들어가고 누군 안 되고…
    '이게 뭐냐' 싶었다
    진짜 기억에 남는 건… - 무슨 거창한 '式'이 아니라 청혼하던 떨리던 순간과
    두 사람이 함께한 일상
    두 아들, 평범한 사람 만나 기억에 남는 결혼식 했으면

    14일 오전,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 수도권 어린이 축구클럽 16개 팀이 땀을 뻘뻘 흘리며 푸른 잔디 위로 흰 공을 찼다. 스탠드에 앉은 코치와 학부모가 발을 구르며 응원하고, 벤치에 돌아온 아이들이 벌건 얼굴로 물을 마셨다.

    이날 열린 대회 제목은 '홍명보장학재단과 함께 하는 현대카드 키즈사커매치'. 홍명보(43)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축구 영재를 발굴하기 위해 올해로 여섯 번째 여는 경기다.

    홍 감독은 "조선일보 기사에 공감해 저도 두 아들을 잘 교육해서 나중에 가족끼리 작은 결혼식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서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펼치는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흔쾌히 동참했다.

    "제가 결혼할 때만 해도 지금 같지 않았어요. 갈수록 결혼식이 화려해지더라고요. 저도 굉장히 화려한 결혼식에 초청장 받아서 몇 번 갔어요. '이게 뭐냐' 싶었어요. 1000명 가까이 불러서 누군 들어가고 누군 못 들어가고…. 정말 '별로'던데요. 눈으로 보기엔 좋죠. 잘 꾸며놨으니까요. 근데 과연 끝나고 기억에 남을까요? 저는 별로 기억이 안 나던데요."

    그는 눌변(訥辯)이다. 툭툭 끊어지는 말투로 띄엄띄엄 얘기하지만, 대신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다. 홍 감독은 서울 구의동에서 방앗간집 3남매 중 장남으로 자랐다. 1994년 미국으로 전지훈련 갔을 때, 현지에서 대학 다니던 부인 조수미(39)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97년 3월 가족·친지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젊은 시절 방송사 PD로 일한 장인이 손수 딸의 결혼식 비디오를 찍었다.

    "신부 아버지가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니까 하객들이 놀라서 쳐다봤어요. 지금도 결혼식 비디오 보면 그날 생각이 나요. 업자한테 맡겼으면 이런 추억이 없겠죠."

    연이은 훈련과 경기 때문에 홍 감독은 신혼여행도 못 가고, 부인이 두 아들 낳을 때도 곁에 없었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스포츠 스타로 살아왔지만, 그만큼 마음고생도 숱하게 했다. 그는 "결혼식은 일생에 한 번 하는 거니까 되도록 크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물론 이해는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슨 '식'이 아니에요. 저는 와이프에게 청혼하려고 미국에 갔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떨렸죠. 그 사람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요. 일생 지속될 중요한 각오를 하면서 갔죠. 그 뒤 일본에 진출해 둘이서 애를 낳아 길렀어요. 말도 안 통하고 힘들었어요. 그때 결속력이 생긴 것 같아요. 정말 기억에 남는 건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이 함께 한 일상이지 이벤트가 아닌 것 같아요."


    홍명보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자신이 주관한 어린이축구대회 ‘키즈사커매치’를 지켜보면서 “내 아이들도 작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홍 감독은 “자녀의 얼굴이 알려지면 (자녀가 살아가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자녀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다.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
    홍 감독은 "아무래도 제가 기부를 하니까, 화려하게 결혼식 하는 데 돈 쓰는 게 더 불필요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1997년 포항구단에서 일본 J리그로 이적할 때 포항스틸러스구단이 지급한 전별금 5000만원을 기부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자기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10억원 이상 개인 돈을 기부해왔다. 그는 "미국·일본에서 선수 생활하면서 보니까 거기도 물론 자식에게 큰돈 쓰는 사람이 있긴 있지만, 우리처럼 (호화 결혼식 등) 불필요한 돈을 마구 쓰는 사람은 훨씬 적은 것 같다"고 했다.

    "외국은 안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과시할까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가 그런 걸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아요. 좋은 차 타고 비싼 옷 입으면 대접을 잘 해주니까, 실제로 그렇지 못한 사람도 안간힘을 써서 자기를 부풀리는 거지요."

    그는 "제가 과시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2, 초등학교 6학년 두 아들에게 홍 감독은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지 않는 아빠다. 두 아들이 "다른 애들도 다 있다"고 하면 홍 감독은 "다른 애들은 다른 사람 자식이니까 상관없다. 너는 내 자식이고, 나는 필요한 물건만 사준다"고 대답한다. 그는 지난해 본지와 인터뷰에서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가질 수 있게 키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집 근처 판자촌에 두 아들을 데려가 "어렵게 사는 분들도 있다는 걸 기억해라. 학교에서 이 동네 친구를 만나면 절대로 놀리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

    그는 "아이들 인생은 아이들이 알아서 하겠고, 아버지로서 바람이 있다면 두 아들이 (부자나 유명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만나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걸 평소에 아들들에게 가르치겠다고 했다. "남들이 화려한 결혼식을 추구해도 우리 가족은 진정으로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참여하려면 이메일 또는 전화를 통해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보내주세요. 약속 증서를 댁으로 보내드립니다.

    ▲이메일 보낼 곳: life21@life21.or.kr ▲문의: (02)793-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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