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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대선에 이길 수 밖에 없었던 세가지 이유

화이트보스 2012. 12. 29. 12:13

박근혜가 대선에 이길 수 밖에 없었던 세가지 이유

  • 고성국·정치평론가

  • 입력 : 2012.12.29 03:04

    ①시대 흐름 잘 읽어
    산업화·민주화 뛰어넘는 새 패러다임 필요한때에 '국민행복' 담론으로 승부
    ②쇄신·변신·혁신…
    약점인 중간층 공략위해 당 색깔 등 혁명적 교체 거역 못할 흐름 만들어
    ③文·安 지리멸렬
    과거에 갇혀버린 문재인, 단일화에 묶인 안철수… 미래 없는 정권교체론 매몰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승리 요인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싶다. 첫째 시대적 흐름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25년이 흘렀다. 20세기 산업화 민주화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 당선인이 대선 출마 선언에서 밝힌 '국민행복시대 개막'이라는 담론이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다. 새 시대를 여는 선거를 정초(定礎)선거(foundation election)라 한다. 새 시대를 여는 선거이니만큼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될 것은 불문가지. 이번 선거의 높은 투표율,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세대가 골고루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 행동에는 새 시대를 여는 정초선거적 의미를 자각하고 체현한 국민의 통찰력이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서울지역 합동 유세에 경찰 추산 2만5000여명의 지지자들이 모였다 /전기병 기자

    박근혜의 경쟁력

    둘째 박 당선인의 경쟁력이다. 박 당선인은 2007년 당내 경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한 직후부터 2012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약점인 중간층 공략을 위해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1년 넘게 싸워 세종시 원안을 고수해냈고 3년간에 걸친 작업 끝에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을 내놨다. 보수의 외연을 확장해 중간층을 공략하는 이 같은 각고의 노력이 박 당선인을 이 대통령과 구별지었다. 이것이 박 당선인이 야당의 거센 정권 교체론 공격을 피해갈 수 있었던 힘이었다.

    박 당선인의 힘은 이 대통령과의 인위적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으면서 야권의 정권 심판론에 맞서 이긴 데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박 당선인의 경쟁력은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등장 이후 더욱 빛났다. 박 당선인은 안철수-박원순 단일화를 통해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태풍'에 맞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안철수 태풍에 민주당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박 당선인이 이끈 새누리당은 박 당선인에 기대 태풍을 견뎌냈다.

    안철수 태풍의 여진이 야권을 재편해 민주통합당을 탄생시키고 문재인 후보를 등장시켜 새누리당을 전방위로 압박해 들어올 때 박 당선인은 다시 비대위원장으로 돌아와 새누리당을 지켜냈다. 박 당선인이 새누리당을 지켜내기 위해 감행한 '수동혁명(passive revolution·예방적 개혁을 통해 혁명을 봉쇄하는 전략)'은 정당 사상 가장 성공적인 당 쇄신 중의 하나로 불리게 될 것이다.

    박 당선인은 우선 당의 색깔을 바꿨다.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의 전환은 색깔의 강렬한 대비에서도 놀라운 변신이었거니와 이 변신을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대담하게 감행한 데서 더욱 놀라웠다. 로고와 당강령까지 바꾼 터라 당명을 바꾸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완전히 바꿨으므로 새 포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한다는 인적 쇄신론을 누가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친이계의 저항은 '당랑거철(螳螂拒轍)', 역사의 수레바퀴에 맞서는 버마재비의 가련한 몸짓에 불과했다.

    박 당선인의 경쟁력은 자신의 마지막 선거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야권이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카드로 대선 정국의 처음부터 끝까지 간단없이 지속적으로 긴장을 불어넣었음에도 박 당선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초조해하지도 지루해하지도 않았다. 야권이 과거사 문제를 거칠게 공격해 들어왔을 때도 박 당선인은 고통스러운 자기 부정의 과정을 감내하면서 끝내 이겨냈다. '아버지 시대와의 역사적 단절' 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승부수는 이번 대선을 온전하게 '박근혜의 선거'로 만든 역사적 사건이었다.

    과거에 갇힌 문재인

    셋째 야권과 문재인, 안철수의 지리멸렬(支離滅裂)이다. 숲 속에 있으면 숲이 안 보이듯 선거전 한가운데서는 선거판이 잘 안 보이는 법이다. 역대 득표 2위인 1400만을 넘는 지지를 받고도 선거에 졌다면 후보와 캠프의 정치 역량을 다시 평가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지난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유세장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 함께 두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박 당선인이 과거를 뛰어넘어 미래로 나아갔다면 문 후보는 박 당선인의 과거를 공격하다 과거에 갇혀버렸다. 안 전 교수가 문 후보와 끝내 화학적 결합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보수 VS 진보' '독재 VS 민주' 구도에 입각한 정권 교체론은 새 정치라는 본질적으로 미래 지향적 가치를 표방하고 정치판에 뛰어든 안 전 교수와는 처음부터 어울리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안 전 교수가 '단일화 담론'에 묶여 문 후보와 2인 3각의 어정쩡한 관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박 당선인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박 당선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안 전 교수도 범야권을 추동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주장인 정권 교체론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전 교수가 정권 교체와 시대 교체·새 정치 담론을 섞어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돌이켜 생각하면 안 전 교수는 바로 그때 '단일화 담론'이 아니라'새 정치담론'을 더 전면화했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문 후보를 정권 교체론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고 두 사람이 손잡고 '시대 교체론'이라는 미래 지향적 담론 구도를 주도했어야 했다. 이것은 문 후보뿐 아니라 안 전 교수에게도 뼈아픈 실패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

    박 당선인 승리의 세 가지 요인은 그대로 향후 정국의 핵심 포인트가 되고 있다. 박 당선인은 과연 새로운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떤 사람들과 함께 어떤 방향으로 열어갈 것인가.

    인수위의 면면이 박 당선인의 구상을 짐작할 수 있는 첫째 시료가 될 수도 있지만 직무 중심, 일 중심의 인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박 당선인이므로 실무형 인수위의 면면으로 새로운 시대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보다는 당선 후에 보인 박 당선인의 행보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향후 정국의 첫번째 포인트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먼저 만난 박 당선인이다. 난곡동 창신동의 서민들을 기업보다 먼저 만난 박 당선인이다. 대기업의 편법 상속, 부당 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불공정 행태를 비판하고 지나친 구조 조정을 자제해 줄 것을 대기업 총수들에게 요구한 박 당선인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 그리고 민생 안정에 국정 운영의 중심을 둘 것이라는 것을 이 이상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또 있을까? 당선 후 행보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경제 민주화와 복지 영역에서 당선인의 의지가 아니라 그것을 실행할 행정 권력의 능력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선거의 여왕'이 국정 운영에서도 성공할 것인가. 흔히 선거를 잘하는 것과 국정을 잘 운영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나 다른 점보다 훨씬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은 둘 다 권력을 다루고 권력을 운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선거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선거에 강했던 것이 민심을 읽고 민심에 부합하는 정치 행보를 해온 결과라면 이것이야말로 국정 운영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겠는가. 다만 선거가 상대와 더불어 승부를 다투는 것인 반면 국정 운영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윈윈'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국정 운영이 선거에 비해 좀 더 통합 지향적이라는 차이는 인정할 수 있겠다. 사실 박 당선인이 초기 인선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바로 이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탓이 컸다. 바로 이 점이 박 당선인의 국정을 보는 둘째 관전 포인트다.

    마지막 셋째 포인트는 야권의 재편이 정국에 미칠 영향이다. 강한 야당이 강한 여당을 만든다. 야권이 제대로 질서 재편을 못하고 지리멸렬하면 여당도 덩달아 자기 역할을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정국 운영도 여와 야가 어느 정도는 균형 잡힌 역학 관계 속에서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한다. 야권의 질서 재편에서 민주통합당의 정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실체적 힘으로 존재하는 안 전 교수의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포괄해야 야권 질서 재편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야권의 재편이 질서 있고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국은 파행으로 얼룩지게 될 것이다. 대화와 타협도 지도자가 책임 있게 결단내릴 때 가능한 법이다. 야권의 질서 재편이 혼란스럽게 진행되면 될수록 대여 강경 투쟁론이 고개를 들기 쉬운 것이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 정국을 운영함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같은 야권의 동향이다. 어쩌랴! 정치란 상대가 있는 법이고 대통령은 그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큰 정치를 해야 하는 자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