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3.11 03:05 | 수정 : 2013.03.11 22:06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하루 뒤 평안북도 신의주를 마주한 랴오닝성 단둥(丹東)시. 고급 백화점이라는 신이바이(新一百) 1층 매장의 금은방 여점원은 "핵실험 직전까지 조선(북한) 부자들이 벤츠를 타고 와 금이나 명품 시계를 위안화로 사갔다"고 말했다. 10만위안(약 1750만원)짜리 가격표가 붙은 롤렉스 시계도 북한 부자의 쇼핑 대상이다. 같은 북한 주민이라도 한쪽에선 꽁꽁 언 강변에서 금을 밀매해 식량 살 위안화를 구하고, 다른 쪽에선 위안화를 싸들고 압록강 다리를 유유히 건너 금을 사 가는 것이다.
북·중 국경 1400여㎞를 취재하면서 만난 북한 전문가와 탈북자는 "김정은의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말하는 남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식 개혁·개방과 북한 현실의 차이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북한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권력을 넘겨줄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은 6·25전쟁 때 폭사(爆死)했고, 다른 아들들은 일찍 죽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옌볜(延邊)대의 한 교수는 "마오쩌둥도 아들이 있었다면 북한처럼 권력 세습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했다. 둘째, 중국은 문화대혁명(1966~1976)이란 광풍 덕분(?)에 기득권 세력이 대거 몰락한 상태에서 개혁·개방의 시동을 걸었다. 반면 북한은 김씨 왕조와 가신(家臣) 그룹이 60년 넘게 기득권을 지키고 있다. 벤츠를 타고 단둥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세력이 그들이다. 셋째, 덩샤오핑(鄧小平)은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앞서 '사상 해방'부터 실시했다. 훈춘(琿春)의 조선족 변호사는 "마오 사상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김일성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려 했던 한 중국인은 "북한식 개혁·개방과 관련된 논문을 준비했지만, 북한에서 요구한 '이론적 배경'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일성·김정일 전집에 개혁·개방과 관련된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더라는 것이다.
지난해 김정은이 만화 '미키마우스'와 영화 '록키'를 모란봉악단 공연에 등장시키자 국내 일부에선 "북한에도 봄을 알리는 제비가 왔다"고 흥분했다. 김정은이 덩샤오핑처럼 해외 유학 경험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전문가도 있었다. 그러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나면서 압록강과 두만강도 녹기 시작했지만 강 건너 북한 땅은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