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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저주

화이트보스 2013. 4. 15. 22:51

꿀벌의 저주

기사입력 2013-03-29 03:00:00 기사수정 2013-03-29 03:00:00

허문명 오피니언 팀장
벌이 사라지고 있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우리나라 토종벌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토종벌을 폐사시키는 악성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멸종 직전까지 갔다. 이름도 생소한 ‘낭충봉아부패병’과 ‘미국 부저병’으로 꿀벌과 유충이 집단 폐사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토종벌 가운데 76%가 죽었다. 지금까지도 이들 바이러스는 여전히 벌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벌이 사라지는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농무부 산하 농업조사연구기관인 ARS(Agricultural Research Service)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사육되는 꿀벌 군집 수는 2009년 겨울 전년보다 33.8% 줄어든 데 이어 2010년 겨울엔 30%, 2011년엔 전년보다 21.9% 줄었다고 한다.

벌들이 떼로 폐사하는 현상을 CCD(Colony Collapse Disorder), ‘군집붕괴현상’이라고 하는데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됐다.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다만 각종 병균과 바이러스, 기생충, 진드기, 살충제, 유전자 조작 작물, 휴대전화 전자파, 이상기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꿀벌의 실종’이 문제가 되는 것은 꿀벌이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점에 있다. 인류가 기르는 식용 작물의 75%는 외부의 힘이 작용해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줘야만 열매를 맺는다. 일명 ‘꽃가루받이’라고 하는 이 수분(受粉) 활동을 바로 꿀벌이 한다. 꿀벌은 꽃의 수술에서 꽃가루를 묻혀 암술에 옮겨줘 열매를 맺도록 해준다.

지구 전체 작물들은 수분 활동을 해야만 열매를 생산할 수 있다. 그중 꿀벌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사과 딸기 호박 오이는 물론이고 아몬드 블루베리 체리 멜론 커피 등 인간이 먹는 대부분의 작물은 꿀벌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또 가루받이 방식으로 자란 풀과 곡물을 소 돼지 닭 등 가축이 먹기 때문에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치명적인 식량난에 처하게 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2006년 이후 매년 꿀벌 생태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고 대학 연구소, 꿀벌보호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언론 역시 진지하고도 심각한 시선으로 ‘CCD’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창조경제’니 ‘미래창조과학’ 같은 거창한 구호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흔히 정보통신기술(ICT)이나 과학의 발전만 생각하는 듯하다. 인류를 창조하고 또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생태를 창조해주는 자연 생태계에 대한 관심은 모두들 뒷전이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꿀벌의 저주’가 덮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과학기술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터전인 생태계가 무너지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지구에서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벌이 없다면 꽃가루받이도 없고 더이상 인류도 없다’고 예언한 바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011년 ‘아인슈타인이 옳았다-꿀벌 폐사는 지구의 식량문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그의 예언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미 생태계의 혼란은 현실이 되고 있다. 지구촌은 얼마 전부터 신·변종 바이러스로 공포에 떨고 있다. 대처 방법이 없는 바이러스들이 국제적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날로 확대되는 국가 간 물자와 동식물의 이동경로를 수출입 관문에 설치된 방역시스템만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벌의 폐사 원인을 찾아 개체를 보존하는 국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시급히 담당 부서를 정하고 예산을 증액해 농민과 함께 벌을 살리자.

허문명 오피니언 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