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27 18:12 | 수정 : 2013.04.27 18:28
김진홍 목사.

김진홍(金鎭洪) 목사는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의 ‘절친’이자 ‘멘토’로 알려져 있다. 같은 1941년생으로, 한때는 직접 정치세력을 만들어 이명박 정부 출범에 공을 세웠다. 17만명에 달하는 보수우파 최대 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맡아 정권교체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무허가 판잣집을 개조해 스스로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활빈교회’를 세웠던 빈민 목사다. 최근 발매된 ≪월간조선≫ 5월호에서 김 목사는 “젊어선 빨갱이, 환갑이 지나선 꼴통 소리를 듣게 됐다”고 웃지만, “신념에 따라 살았으니 나는 행운아”라고 말했다.
“서른 살 때는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가 빈민목회를 하며 넝마주이를 했고 마흔에는 화성시 남양만 간척지로 귀농해 교회를 세워 농민 사역을 했어요. 쉰을 넘어서는 공동생산·공동소유를 실천한 ‘두레마을’ 공동체 운동으로, 60대 때는 경기도 구리에 두레교회를 세웠고 한편으로 뉴라이트 운동을 실천, 사회참여에 나섰다가 나이 70에 모두 내려놓고 동두천에 정착, 인생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이곳에서 5단계로 이어진 제 인생의 피날레를 장식하려 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해서 시작됐나요.
“같은 크리스천이고 나이도 1941년 동년배지요. 20여 년간 친구처럼 지냈어요. 말을 놓지는 않지만, 목요일마다 기독교 실업인 모임을 하며 만났어요. 그 모임의 초대 회장이 이 대통령이었어요. 저는 성경 선생으로 모임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분은 열심이고 정직하고, 깨끗한 분인데 국민한테 전달된 이미지는 그렇지 못해 아쉬워요.”
-이제는 보수운동 안 해도 되나요.
이명박 정권 탄생으로 국가적 위기는 넘어섰다고 봐요. 그러니까 한국은 체제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이승만 대통령과 공산주의를 택한 북한 김일성에 의해 시작된 체제경쟁에서 남한이 승리했다고 봐요. 그 확실한 승리 분기점이 이명박 정권 때라는 것이죠. 지금 안보위기가 심각하지만, 고비를 넘기면 안정권에 들어갈 것으로 봅니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에 자주 갔습니까.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호텔에서 배달한 스테이크가 식사로 나왔어요. 저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어요. 그냥 청와대 뒤뜰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통 사다 놓고 삼겹살 구워 먹으며 머리를 맞대야 신바람이 납니다. 그런 웨스턴 스타일은 민중적이지 못하잖아요. 요즘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식일 것 같아요. 토론이나 참여가 너무 약하지 않나요- 그것은 정치공학적으로도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아쉬워요. 목회를 하다 보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반대자를 그냥 두고, 찬성하는 사람이 세를 이루어 그것을 묻히게 하면 됩니다.”
*“뉴라이트, 이제 필요 없다”
김진홍 목사는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한 이들에게 정치참여를 적극 권했었다. 이후 적지 않은 수의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했고, 다수는 공기업, 정부에 참여했다. 야당에서는 이를 두고 “MB 사조직에 의한 국정농단이고 월권”이라 주장했었다.
-그분들이 뉴라이트의 소명에 충실했다고 봅니까.
“이명박 대통령 책임도 있는데요, 뉴라이트 계열의 일꾼 중에 특A급은 제자리에 두고 쓰지 않았습니다. B급, C급 일꾼, 그러니까 평균 내지 평균 이하의 일꾼들이 청와대에, 각 분야에 들어갔었습니다. 대통령의 인사에 문제가 있었지요. 그러니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에) 참여를 못했어요.”
이명박 정부 출범에 공을 세웠던 뉴라이트 운동은 이후 MB 정권과 유착하면서 선명성이 떨어졌다. 뉴라이트가 보수혁신 운동으로 시작했으나 보수의 혁신보다 노무현 정권과 그 주변세력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두었고, 노무현 정권이 몰락하자 표적(標的)을 잃으며 같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김 목사는 “일리 있는 얘기”라며 “뉴라이트 운동이 가치관 운동으로 승화됐으면 좋았을 것을 정권교체에 너무 치중하지 않았나. 정권이 교체되고 나니 목표가 없어진 것처럼 운동의 강조가 그렇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상득(李相得) 전 의원이나 최시중(崔時仲)씨도 전부터 잘 알았나요.
“그렇지요.”
-정권 말기에 영어(囹圄)의 몸이 돼 안타까워요.
“감옥도 우리처럼 30대에 살고 끝내야지 70대에 살면 참 …, 불행이지요.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을 쓴 책임도 대통령에게 있지요. 뉴라이트 사람들은 처음부터 반대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그래도 이명박 정권 5년은 성공이지요. 한 70점 정도- 국위를 높였고 경제를 선방했으니 성공이지요.”
-70점이란 얘기에 이 전 대통령이 좋아할까요, 섭섭하게 생각할까요.
“대통령은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고, 국민은 너무 준다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