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신화의 빚
기사입력 2013-07-17 03:00:00 기사수정 2013-07-17 08:54:17
부형권 정치부 차장
대형서점 어린이책 코너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위인(偉人) 반열이다.책 제목들을 짜깁기하면 ‘끈기와 성실함으로 세계를 설득한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처럼 키워라’. 외교부 출입기자들이 쓴 ‘위인전’도 여러 권이다.
마음이 불편하다. 우선 그 책들과 다른 생각이 있어서 불편하고, 그것이 틀린 생각인가 하는 자기검열을 하게 돼서 더 불편하다.
두 차례에 걸쳐 약 3년간 외교부를 출입할 때 반 총장은 리더(leader)보다 참모(staff)로서 빛나 보였다. 윗분을 모시는 극진함과 빈틈없음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 국무총리의 해외순방에 외교차관으로 수행한 비행기에서 그는 총리의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10시간 넘게 비행하는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고 한다. 뒷자리 총리에게 꾸벅거리며 조는 모습을 보이기 싫고, 총리가 언제 질문을 던져도 바로 답변하기 위해서였다.
외교부에 ‘반(潘)의 반(半)도 따라하려 하지 말라’는 경구가 내려오는 이유다. 그를 참모로 썼던 리더들은 큰 만족감을 표시한다.
그럼 리더로서의 반 총장은? 탁월한 전략가(strategist)나 혁신가(innovator)보다 훌륭한 관리자(manager)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조직구성원이나 국내외 지인(知人) 관리는 전설적이다. 매년 수백 통 보낸 친필 송년카드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가 외교장관이 됐을 때 간부 대다수가 ‘내 세상이 열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스스로 반기문의 최측근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조직의 미래도 이렇게 철저히 관리했을까. 내가 만난 중견 외교관들의 반응은 대체로 ‘글쎄…’였다. 장관 시절 인적 쇄신과 개혁에 대한 요구와 압력이 강했지만 끝내 칼자루를 휘두르지 못했다. 피를 봐야 하는 외과수술은 모든 일을 잘하고, 모두에게 잘해야 하는 ‘반기문다움’과 맞지 않았다. 결국 그가 유엔으로 떠난 뒤 후임 장관의 몫이 됐다.
외신들이 ‘유엔 개혁이 지지부진하다’며 반 총장을 공격할 때 ‘그건 그의 장기(長技)가 원래 아니거든’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까닭이다.
제8대 유엔 수장인 반 총장이 역대 총장들과 구별되는 경쟁력은 따로 있다. 스스로 직접 밝혔다.
“특히 제가 직접 관여해왔던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유지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합니다.”(2006년 11월 10일 국회연설)
2011년 연임에 성공한 뒤에도 “적절한 시기에 북한도 방문할 계획이다. 북한도 나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기문 방북설’만 나와도 “전혀 근거 없다”는 반박자료를 쏜살같이 낸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한반도 문제에 유엔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을 미국이 싫어한다”고 분석했다.
외교부 일각에선 “반 총장에게 ‘한반도 문제 역할론’을 주문하는 것은 한국의 사무총장이 돼 달라는 요구”라는 반박이 나온다. 동의하기 어렵다.
반기문 위인전을 읽은 어린이들은 ‘나도 세계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겠지만 제2의 한국인 사무총장이 나올 수 있을지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대륙별 순환이란 불문율에 따라 10년씩(5년 임기 연임) 100개국만 돌아도 1000년이다.
그래서 정부 안팎에서 반 총장은 ‘대한민국 국운(國運)의 최정점 인물’이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이 가슴 졸이며 함께 만들어온 ‘반기문 신화’는 지구촌 마지막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완성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공감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추진 구상’에서부터 유엔과 반 총장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한다.
▶본보 16일자 A1면 [단독]“中도 DMZ 평화공원 구상 지지”
▶본보 16일자 A3면 지뢰 제거도 추진… DMZ 전체를 평화벨트로 만든다
반 총장의 10년 임기는 2016년 말에 끝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국인 사무총장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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