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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수행 막말 시대 침묵 찾아 山寺로 간 사람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이자 몸을 찌르는 칼"

화이트보스 2013. 7. 28. 11:54

막말 시대 침묵 찾아 山寺로 간 사람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이자 몸을 찌르는 칼"

  • 순천=이길성 기자
  • 입력 : 2013.07.27 03:21

    "쉿"

    "말로 지은 업이 많다며 신부님도 오는데…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더라"

    4박5일 묵언수행
    자녀에게 막말 舌禍 아버지
    SNS로 상처받은 대학 교수
    하루종일 전화 상담하다
    우울증 걸린 필리핀 교포…
    "말로 인한 상처치유 절실"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 메모지
    "옆사람이 코를 너무 골아요"
    "도대체 부처님은 누군가요"
    불평이나 질문은 메모로

    서릿발 경고
    얼굴 익고 익숙해진 2일차
    스님옆에서 대화하다 적발
    2NE1 노래 즐겼던 대학생
    "환청처럼 노랫소리가 들려"

    말문 트인 마지막날
    전라도 등 팔도 사투리로
    적막했던 법당이 왁자지껄
    "묵언후 말 참는 버릇 생겨"

    반성, 그리고 힐링
    상처 주는 말, 남 의식한 말
    그동안 얼마나 많이 했나…
    묵언하니 절로 자신과 대화
    마음의 힘, 2배로 커지더라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요일이었던 지난 21일 오전 9시.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松廣寺) 사자루(獅子樓)에는 남녀 48명이 침묵 속에 좌정하고 있었다. 가슴에 '묵언'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단 이들은 4박5일 일정의 여름수련법회를 찾은 일반인들. 수련 이틀째 오전 좌선이 시작될 무렵. 사자루 안으로 피자 6판이 들어왔다. 산사(山寺)에 난데없이 등장한 패스트 푸드에 수련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송광사는 한 달에 두 번 전체 스님들이 삭발을 합니다. 오늘이 그중 하루입니다. 삭발 일에는 떡을 지어 나눠 먹는데 요즘은 신세대 스님들이 많아져 피자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지도법사인 진웅 스님의 설명에 수련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토핑은 모두 식물성"이라고 스님이 덧붙였다.

    속세의 여느 곳이라면 왁자지껄한 웃음과 말소리로 가득했을 터. "공양들 하시죠"라는 스님의 말에 '침묵의 피자 파티'가 시작됐다. 48조각의 피자가 사라지는 동안 법당 안은 조계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 물소리만 가득할 뿐. 계곡 건너편 관광객들의 모습과 들뜬 재잘거림이 밖으로 열어젖힌 8개의 창을 간간이 넘어왔다.

    예순아홉 할아버지부터 열여덟 고등학생까지 나이도, 직업도, 종교도 저마다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침묵을 찾아 입산했다는 점. 오전 3시에 일어나 108배, 하루 두 번의 예불과 4번의 좌선, 두 번의 공양(식사), 두 차례의 강의 등 하루 일과를 관통하는 제1의 계율은 묵언(默言). 정치인들의 막말, 스포츠 스타의 SNS 설화로 더 뜨거웠던 여름. 7월 20~24일 송광사 묵언수행에 참여했다. 그들은 왜 말 많고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침묵을 찾아온 것일까.

    
	지난 7월 23일 순천 송광사 사자루에서 좌선 중인 여름수련법회 참가자들. 이들은 4박 5일간 오전 3시 눈을 떠 오후 9시 잠들 때까지 묵언을 지켜야 했다.
    지난 7월 23일 순천 송광사 사자루에서 좌선 중인 여름수련법회 참가자들. 이들은 4박 5일간 오전 3시 눈을 떠 오후 9시 잠들 때까지 묵언을 지켜야 했다. / 송광사 제공
    20일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수련생들은 속옷과 양말, 세면도구만을 남기고 휴대폰과 태블릿PC, MP3 같은 모든 디지털 기기를 반납했다. 빈 몸이 된 수련생들에게 떨어진 첫 계율은 '지금 이 순간부터 묵언하라'는 것이었다. 오후 12시 40분. 남성 참가자 20명이 남자 숙소에 모였다. 숙소 안팎엔 '묵언' 표지가 붙어 있었다. 그 아래 작은 글씨는 법구경(法句經) 구절이었다. '오로지 입을 지켜라. 무서운 불길같이 입에서 나온 말이 내 몸을 태우고 만다. 일체 중생의 불행은 그 입에서 생기나니 입은 몸을 치는 도끼와 몸을 찌르는 칼이다.'

    방 안엔 노란색 포스트잇과 모나미 볼펜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수련생들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내 옆 사람이 코를 너무 골아서 힘들다'는 불평이나 '도대체 부처님은 누군가요' 같은 질문은 오직 메모로만 전해야 한다. 스님이 묻는 말에는 손을 모아 허리를 숙이는 '합장반배'로 "예"라는 대답을 대신해야 했다.

    남성들은 입고 온 옷을 벗고 법복으로 갈아입었다. 누구 하나 말하는 이가 없었다. 83~86㎡(25~26평) 남짓한 방에는 선풍기 8대 소리만 요란했다. 김기환(69)씨처럼 수련회 경험이 많은 몇몇 불교 신자들을 빼고는, 수인사조차 나눌 수 없는 묵언이 어색한 표정들이었다. 경찰, 은퇴한 외항선 기관장, 수퍼마켓 주인, 늦깎이 약대생, 대기업 중견 간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수련생들은 옆 사람이 뭘하고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채 산사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여자 숙소에도 침묵이 흘렸다. 양성순(55)씨와 둘째딸 이다은(24)씨 모녀도 서로 눈짓만 교환할 뿐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홍익대 미대생인 딸 이씨는 방학을 맞아 엄마를 따라 묵언수행에 나섰다. 평소 헤드폰을 끼고 다니며 음악을 즐겼던 그녀는 묵언의 효과를 절감하고 있었다. 요즘 한창 빠져 있는 걸그룹 '투애니원(2NE1)'의 노래들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던 것이다. 부산의 한 고교 사회과목 교사인 배은희(33)씨도 '순간순간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느라 침을 꼴깍꼴깍 삼켜야 했다.

    묵언 첫날의 낯선 느낌은 서로 얼굴이 익으면서 누그러들었다. 익숙함은 방심을 낳기 마련. 이튿날 수련생 일부가 묵언의 계율을 깨는 모습이 목격됐다.

    '침묵의 피자 파티' 후 결국 경고가 내려졌다. 산사에서 만난 세속의 음식이 계율의 중압감을 희석시킨 것일까.

    교무국장 도현 스님이 나섰다. "아침에 몇 분이 모여서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봤습니다. 말만 안 한다고 묵언이 아닙니다. 그런 것까지도 금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 스님이 지나가도 아랑곳없이 말을 나누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당장 하산(下山)하고 싶은 분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묵언을 확 풀어버릴까요." 밖은 폭염이었지만, 사자루 안은 얼음장처럼 서늘해졌다.

    묵언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받은 그날 오후. 현묵 스님의 강의가 있었다. 현묵 스님은 묵언 정진을 뜻하는 무문관 수행을 7년이나 한 선승(禪僧)이었다. 스님의 목소리는 맑았다. "처음 묵언을 시작한 뒤에는 꿈속에서 말을 했다. 6개월이 다가오자 꿈속에서도 '아 지금 묵언 중인데…'라며 묵언 파기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6개월을 넘기자 비로소 꿈속에서도 묵언이 편안해졌다." 큰스님의 말씀은 4박5일의 묵언조차 힘겨워하는 나약한 대중에게 위안이 됐다.

    
	좌선용 방석을 안고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경내를 가로지르고 있는 여름수련법회 참가자들. 정치권의 막말과 스포츠 스타의 SNS 설화(舌禍) 파문으로 유난히 시끄러웠던 여름, 이들은 “백마디, 천마디의 말보다 침묵이 더 강력한 각성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좌선용 방석을 안고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경내를 가로지르고 있는 여름수련법회 참가자들. 정치권의 막말과 스포츠 스타의 SNS 설화(舌禍) 파문으로 유난히 시끄러웠던 여름, 이들은 “백마디, 천마디의 말보다 침묵이 더 강력한 각성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 송광사 제공
    묵언이 익숙해지면서 차츰 편안함이 찾아왔다. 남자 스무명이 한방을 쓰는 숙소에서도, 남녀노소 마흔여덟명이 함께 수련하는 사자루에서도 각자가 오롯이 혼자 있는 듯한 느낌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묵언이 선물한 침묵 속에서 48명 각자는 자신의 생활과 삶을 돌이켜봤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퇴직한 양경식씨는 자신의 34년 직장생활을 되돌아봤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라는 핑계로 몸을 참 막 굴리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재취업에 성공한다면 좀 더 절제된 생활을 하자'고 다짐했다. 김명숙(53·한양대 교육대학원 음악교육전공 강의교수)씨는 강의를 해오면서 혹시 자신이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았나 자문해봤다.

    수련 사흘째가 되자 말을 안 해도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이뤄졌다. 식사시간 공양간에서 만든 음식이 들어올 때 가톨릭 신자인 이현정(58)씨가 반찬 쟁반을 건네받으면, 늦깎이 약대생인 김승현(33)씨가 밥통을 날랐다. 화장실 청소를 할 때는 최고령 김기환씨가 휴지통을 비우면 최연소 박동근(18·서울자동차고)군이 변기를 닦았다. 말을 안 해도 통하는 '심심상인(心心相印)'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수련자 모두에 대해 묵언이 풀린 것은 철야 1080배를 마친 마지막날 오전 자리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 지붕 아래서 밥 먹고 수련했던 48명은 만난 지 닷새 만에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말문이 트이자 5일 동안 정적에 빠져 있던 사자루는 팔도 사투리, 굵은 톤과 가냘픈 목소리가 한데 뒤섞이며 와글거렸다. 경인교대 음악교육과 석문주 교수는 "사람의 음색이 그처럼 다양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고 말했다.

    그들은 왜 침묵을 찾아 산으로 들어왔을까. 필리핀 교포인 이영실(56)씨는 "묵언이 너무나 절실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해외주재원인 남편과 23년째 마닐라에 살면서 한국 종교 단체의 현지 포교 시설에서 살림살이를 맡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현지 사정을 잘 알고 종교 시설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현지 한국 사람들의 하소연과 푸념을 들어주는 카운셀러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상처받은 얘기를 묵묵히 들어줬다. "성직자를 보조하는 역할이니 나서서 말은 못했어요. 그저 귀만 있고 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런 전화가 온종일 걸려오는 날도 있었어요." 이씨는 "다른 사람은 위로를 받을지 모르지만, 마음속에 뭔가 공허한 게 쌓이더니 결국 우울증 증상이 왔다"고 했다.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않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절실했어요. 이번 묵언수행은 제겐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예요." 이씨는 이번 수행 때 옆에서 자는 수련생과 작은 속삭임 한 번 나누지 않았을 만큼 철저하게 묵언의 계율을 지켰다. 그는 "4박5일간 마음이 치유된 것 같다"며 "누구를 보듬어 안으려면 자신부터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장세영(40·안양대 겸임교수·디지털미디어디자인 전공)씨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그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묵언수행을 하러 왔다"고 했다.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 같은 SNS 때문에 너무 예민해졌어요. 소통을 하자고 만든 그 모든 시스템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그는 6개월 전부터 모든 SNS를 끊고 잠수 중이다. 장씨는 "오해의 여지가 큰 짧은 한마디 한마디 때문에 힘들었고, 어떨 땐 침묵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답신이 바로 안 온다, 그러면 별 상상을 다 하게 돼요. '아, 내가 외면당한 것인가' 하면서. 소통하기 위한 미디어가 오히려 사람을 힘겹게했어요." 그래서 그 모든 걸 다 접었다고 했다.

    장씨는 특히 "밤 12시, 1시에도 학점이 잘못됐다며 카톡 메시지를 보내오는 대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학기 초 "카톡, 페이스북은 사적인 미디어다. 학점에 대한 이의 제기는 전화로 말해달라"고 공지했다. 하지만 '어, 제 학점이 왜 A가 아니고 B죠?'라는 심야 메시지는 계속 됐다. "바로 답을 안 하면 안 돼요. 강의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거든요. 전임 교수라면 무시할 수 있겠지만, 저처럼 시간 강의를 하는 사람들에겐 스트레스, 상처가 돼요." 그는 "그 소란한 말들로 인해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덜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올해로 43년째인 송광사의 여름수련법회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묵언수행의 효시다. 스님들의 평소 일상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1박2일짜리 템플스테이가 관람이라면, 체험 프로그램인 셈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서울대 들어간 사람도 송광사 수련법회에는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경쟁률이 치열했다. 송광사의 수련법회가 인기를 끌면서 전국의 각 사찰에도 묵언수행을 핵심으로 한 수련과정이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강원도 평창의 월정사는 9년전부터 아예 머리를 삭발하고 한 달 간 출가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전남 해남의 미황사는 7박8일간의 묵언수행 과정을 만들었다.

    천주교 신자인 김윤수(52)씨는 수년 전 우연히 묵언수행에 참여했다가 교사로서 큰 도움을 받았다. 인천의 한 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그는 묵언을 체험하면서 "명색이 국어교사인 내가 온종일 쏟아내는 말 중에 의미 있는 게 얼마나 됐나 하고 반성했다"고 말했다. 수행을 마치고 온 뒤 김씨는 담배를 피우며 욕설을 하는 아이들에게 묵언수행을 시켰다. 아침·점심·저녁으로 한 번에 50분씩 묵언을 시켰다. 장소는 학교 운동장 한쪽 옹벽 앞이었다. 김씨 자신도 같이 묵언을 했다. "그렇게 석 달을 했어요. 처음 괴로워서 몸을 뒤틀던 아이들이 차분해지더군요." '담배 피우다가 걸리면 묵언수행을 해야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좀 논다'는 아이들이 담배를 안 피우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달 다시 묵언수행을 찾아갔다. 이번엔 마음의 상처 때문이었다. 지난 4월 18일간 무단결석을 한 학생을 붙잡고 훈계를 하다 봉변을 당했다. 그는 "몸을 다친 것보다 마음을 더 많이 다쳤다"고 했다. 그는 "교사로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을 겪고 나니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었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6개월 휴직을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런 한편으로 전남 미황사 묵언수행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말을 하지 않으니 내면을 더 잘 볼 수있었고 마음이 한결 평화로워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수행 때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경전의 말씀을 두고두고 곱씹었다고 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교사로서 내가 과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내 주관을 섞어서 본 것은 아닌가 하고 되돌아봤지요."

    전남 광양에서 임대업을 하는 이정모(63)씨는 자신이 일으킨 '설화(舌禍)' 때문에 13년 전 처음으로 묵언수행을 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과 딸의 생활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던 그는 "제대로 공부 안 하면 호적에서 파 없애버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급한 성격 탓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 그렇게 큰 상처가 될지 몰랐어요." 아들은 가출을 해버리고 딸은 아빠에게 방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제 발로 송광사를 찾았다. 그는 "처음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을 참을 수 없어 불평이 튀어나왔다"고 했다. "수행을 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벙어리'라고 손가락질하는 꿈까지 꿀 만큼 열심히 했어요. 5일 만에 다시 만난 아내는 긴가민가하면서도 '당신,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이씨는 "묵언을 경험한 뒤 의식적으로 말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풀어지는 걸 막고 스스로를 조이기 위해 그 뒤로 7년간 매년 묵언수행에 참여했고, 지금은 여름수련법회에 참가한 묵언수행자를 돕는 묵언 자원봉사자로 해마다 송광사를 찾고 있다.

    광주의 한 특수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문서희(40)씨는 올해만 세 번이나 미황사 묵언수행에 참여했다. 맨 처음엔 귀의 이상으로 어지러움을 느끼는 이석증 때문에 요양차 사찰을 찾았다. 그땐 묵언수행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나 묵언수행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이 오직 밖으로만 열려 있었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남을 의식한 말들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살았는지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얼마나 새나갔는지 알게 되더라고요." 그는 "묵언을 하게 되면 자기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생긴다"며 "그러면 외부로 향했던 마음이 내부로 향하고 마음의 힘이 두 배로 키워지더라"고 말했다.

    송광사 포교국장 각안 스님은 "송광사 묵언수행을 매년 찾는 분 중에는 '말로 지은 업(業)이 많고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 많다'며 겸손하게 말하는 천주교 신부님도 계신다"고 전했다. 각안 스님은 그러나 "정치인들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