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방 비워두시죠
기사입력 2013-07-29 03:00:00 기사수정 2013-07-29 09:38:13
민병선 문화부 기자
스님 잘 지내시지요?스님께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가끔 보내주시는 좋은 글이 장마철의 햇살처럼 반갑습니다. 제가 종교 담당 기자였던 시절 맺은 작은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오시는 스님. 속세의 신산스러움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찾아가면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로 맞아주셨죠.
요즘 속세는 ‘그분’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내야 할 돈을 안내는 그분 말이죠. 그분이 공분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문화계에는 화두를 주는 분이죠.
그분으로부터 검찰이 추징금을 받기 위해 압수한 미술품 덕분에 미술계는 요즘 뜨겁습니다. 미술계는 압수한 500여 점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신정아 사태 이후 미술계가 가장 주목 받고 있습니다.
그분의 장남인 전재국 씨가 소유한 출판사 시공사는 이전부터 출판계의 이슈 메이커였습니다. 시공사는 1990년대 초반 미국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100만 부 이상 팔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로 불린 영국 여성 작가 E L 제임스의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히트시켰지요. 돈 안 되는 서양 고전 시리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제법 출판기업의 모양새를 갖추기도 했죠.
영화계는 또 어떻습니까. 지난해 말 그분을 다룬 영화 ‘26년’은 관객 296만 명을 불러 모아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던 이 영화의 제작비 모금에 2만 명이 넘게 참여한 걸 보면 그분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습니다.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2011년 작고)이 민주화운동을 하다 붙잡혀 고문당한 일을 다룬 ‘남영동 1985’도 그분 시절의 이야기이지요. 영화 속에 잠깐 그분의 초상이 나옵니다.
몇 년 전 제가 설악산 백담사에서 둘러 본 그분이 기거했던 방은 무소유를 실천한 현장이었습니다. 단출한 세간은 스님들의 방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에 감명을 받아 무소유를 썼다고 합니다. 간디는 프랑스 마르세유 공항 세관원에게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밥그릇,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 않은 평판밖에 없다”고 했다지요. 간디는 한 나라의 지도자였지만 소유의 덧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분의 연세가 여든 둘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유를 내려놓고 떠나실 때가 그리 오래 남은 것 같지는 않네요. 그분이 1987년 민주화운동에 밀려 모든 걸 내려놓고 기거했던 그곳이 이제 인생을 마무리할 가장 좋은 거처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이 계신 그곳 백담사말이죠. 스님 그 방 비워두시죠.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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