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덕여왕릉에 꽃을 바치리요
![](http://uriul2010.cafe24.com/board/record/45991/page/files/attach/images/44560/991/045/경주_불국사1.jpg)
세계의 역사중 천년을 이어온 왕조는 신라와 로마 두 왕조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작가는 경주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곳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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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라고 불리는 그 경주의 가을 속으로 길을 떠날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벌써 경주의 들녘은 황금물결로 일렁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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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표지판만 보아도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 길만 따라가면 선덕여왕릉이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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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덕여왕릉으로 가는길에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 모르지만 기적을 울리며 쏜쌀같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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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뚝길을 지나니 왠 이상한 것이 우뚝 서 있습니다
저게 뭘까 ?
신라 문무왕이 역대 왕들의 능을 보니 초동과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래 부르고
여우와 토끼들이 굴을 파는데 죽은 사람일에 큰 비용을 들이는 것은 재물을 낭비하는 일이라
서국식(인도)으로 화장하라 하여 문무왕의 화장터라 일컫는 능지탑입니다
이곳에서 문무왕을 화장하고 감포 가는 길에 있는 문무왕 수중릉에 그 유해를 모셨다고 혹은 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사방불을 모신 불전이나 고려때 만든 5단의 방형탑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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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찿아가는 선덕여왕릉이 있는 산은 마치 이리가 엎드린 모양과 같다하여 이리 "낭" 뫼 "산"
"낭산"이라고 합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18대 실성왕때 낭산에 구름이 일어 누각 같이 생겼는데 향기를 풍기며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으므로 임금이 신령이 내려와서 노는 곳 신유림이라 하여
이후로는 이 산에서 나무 베는것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이 산 밑에는 집이 가난하여 옷을 누덕 누덕 기워 마치 메추리를 매단것 같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동쪽마을 백결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는 거문고의 명수 백결선생이 산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북서쪽 중턱에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선생이 어린시절 공부한 곳이라는 독서당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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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가는길에 노랗게 잘익은 감이 더욱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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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선덕여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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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시간에 왔는데도 벌써 꽃과 음식이 한상 차려져 있어 그 인기를 실감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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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선덕여왕이 방영되고 난뒤 참 많은 사람들이; 선덕여왕릉을 찾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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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부인사에는 대구의 어느 극장사장이 꿈에 보았다는
선덕여왕의 얼굴을 바탕으로 유황 경북대 교수가 그린 선덕여왕 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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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누구인가 ?
26대 진평왕은.
넓혀진 나라를 물려줄 아들이 없고
덕만, 천명, 선화공주 세 딸만 있었다.
선덕여왕은 국가 중대사를 정하는 화백회의를 통해 왕위에 오른다
명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당시 선덕여왕의 나이는 오십대 초반이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은 모두 190명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수많은 왕이 있었지만 그중 여자가 왕이 된적은 딱 세번 밖에 없다
선덕/진덕/진성여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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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골품제 때문이다
성골의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선덕여왕이 즉위한다
그런 선덕여왕에게는 늘 그림자처럼 두 남자가 따라 다녔다
그 한사람이 후에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요
또 한사람은 김유신이다
우리가 오늘날 경주에서 만나게 되는
분황사/ 황룡사 구층탑/ 첨성대/경주박물관에 가있는 삼화령 애기부처/남산 감실부처
모두가 선덕여왕시절의 유물이다
그리고 원효와 의상은 선덕여왕시절 젊은날을 보냈고 자장율사는 선덕여왕 때 고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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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부터 여자들은 눈을 가리시지요
때는 선덕여왕 5년의 일이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어인 일인지 개구리 우는 소리가 왕궁안 옥문지에서 요란히
들려왔다. 한 겨울에 개구리소리라니 가당치 않은 일이다. 신하들은 틀림없이 어떤 불길한 흉조라고 수근거리고
있는데 현명한 여왕은 무슨 생각에서였슴인지 두 사람의 장군을 불렀다. 그러면서 명령하였다. 『지금 당장 달려
가 서북쪽 여근곡에 적을 섬멸하라』라는 것이었다. 지금 건천읍 신평리 썹들 여근곡에 출전할 것을 명령한 것이
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곳에는 500여명의 백제 기습군사가 숨어서 진을 치고 있었다. 물론 출동한 신라군은 계곡
속에 숨어 잠복하고 있던 적군을 포위해서 섬멸하고 말았다. 그 뒤 신하들은 여왕에게 어떻게하여 적군의 매복을
알아차렸느냐고 물었다.
개구리의 노한 형상은 병사의 형상이고, 또 옥문이란 여자의 생식기니 여자는 음이요, 음은 그 색깔이 백색이고
백색은 서방이므로 군사는 서쪽에 있음을 알 수가 있었오.
또 남자의 생식기는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되므로
이것으로써 쉽사리 잡을 줄 알 수 있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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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적으로 여근곡에 대한 전설처럼 어찌 그리도 멀리 혹은
가까이서 보아서도 이상하리만큼
. 이 능선과 계곡이 흡사 여성의 그 곳을 닮아서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은 이 곳을 보게되면 재수가 없다하여
애써 고개를 돌려 지나 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경주 부윤이 부임해 오면 이 곳을 반드시 지나게 되는데 여근곡을 보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영천에서 안강으로 가는 노팃재를 넘어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퇴임해 갈때는 그 모양새나 한번 보자고 구경하며 가기도 했다
6.25 때의 일이다. 두 달만에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인민군이 경주를 점령 직전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적의
밀물 같은 포화가 오봉산 아래에 있는 단석산을 향해 공격했지만 수포로 돌아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이야기로는 이 서면에 위치한 여근곡인 음기가 백제군을 견뎌내지 못하게 포로로 만들었
듯이 인민군의 공격은 하필 경주 경계인 서면 외곽까지 들이닥쳐 왔지만 이상하게도 한발짝도 들어오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여근곡의 음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향토적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 맞춘 새가지 이야기 즉 "지기삼사" 중에 한대목 걸쭉하게 풀어 봤습니다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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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을 보고 조금만 내려오면 그 유명한 사적 제8호인 사천왕사지 입니다
27대 선덕여왕이 살아 생전에 "내가 어느해 어느날에 죽을 것이니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 하였다
신하들이 그 도리천이 어딘가를 물으니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이라 하였다
과연 선덕여왕이 말한 그해 그달에 유언대로 죽으매 낭산 남쪽에 장사 지냈다
그 후 문무왕이 사천왕사를 선덕여왕 무덤 아래쪽에 지었다
불경에는 사천왕 하늘 위에 도리천이 있으므로 이것을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 맞춘 세가지 일 "지기삼사"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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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발굴중 입니다
사천왕사는 ,<제망매가>와 <도솔가>라는 향가로 유명한 월명스님이 살던 절로 월명스님이 피리를
하도 잘 불어 하늘을 가는 달도 멈추고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천왕사 앞길을 월명로 마을 이름은 월명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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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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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관람하기 좋게 관람선을 쳐두었습니다 화살표따라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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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눈이 시리도록 푸른 저 하늘 좀 보시지요
코발트빛 같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것 같습니다
ㅇ
일제는 이 땅을 강점하면서 한민족의 정기를 끊어 놓으려는 속셈으로 무열왕릉과 김인문 묘를 반으로 절단하고
국도를 내고
반월성과 안압지 역시 반으로 갈라 국도를 내었다
그것도 부족하여 사천왕사지 절터 뒤쪽에 위의 사진을 보듯이 절터를 두 동강이 내고 동해남부선 철도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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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타깝게도 왠 목이 없는 거북이 두마리가 좌 우에 흩어져 있네요
동쪽 귀부에는 사천왕사 사적비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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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릉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천왕사 서편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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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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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이제 버스를 타러 가야지요 그런데 저 엎에 당간지주가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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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는 절의 행사가 있을때 오늘날 국기 계양대처럼
깃발을 달아 놓았던 곳입니다 가까이 다가 가보면 왼쪽 당간지주가 부러진 것이 역력히 보이지요
일제는 사천왕사 뒤로는 철로를 내고 앞으로는 국도를 내어
호국사찰이었던 사찬왕사터를 의도적으로 두 동강이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울산쪽에서 무거운 짐을 실은 차가 굽은길 코너를 돌다가 도로 위를 치고 올라
당간지주를 들이받아 부러뜨리자 시멘트로 붙여 놓았는데 또 박고 다시 붙이고
저 당간지주 하나에서도 힘이 없는 나라의 역시는 어떤 굴욕과 치욕을 당하는지를 역력히 보여 줍니다
선덕여왕 기행에는 꼭 자녀들과 또는 가족들과 함께 하시길 당부 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 줘야 되는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부족한 글 보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