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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5세 만델라, 네번째 입원에도 살아 버티며 長壽하는 비결은?

화이트보스 2013. 8. 13. 16:43

올해 95세 만델라, 네번째 입원에도 살아 버티며 長壽하는 비결은?

  • 이성훈·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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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8.13 03:04 | 수정 : 2013.08.13 10:28

    
	이성훈 특파원
    이성훈 특파원
    며칠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세계적 관광명소인 남부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산의 정상이 평평해 탁자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에 높이 60m의 넬슨 만델라(95) 전(前) 대통령의 얼굴상(像)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남아공의 대표적 장소에,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의 모습을 오래도록 보존하겠다는 것입니다.

    100세를 눈앞에 둔 만델라는 지난 6월 8일 오전 1시30분쯤 폐 감염증이 재발해 수도(首都) 프리토리아의 메디클리닉심장 병원에 입원한 후 지금까지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이달 8일로 꼬박 두 달이 지났지요. 정확한 병세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게 대부분의 관측입니다.

    실제로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올해 6월23일 성명을 통해 “병원에 있는 만델라의 건강이 심각한 상태에 빠졌으며, 지난 24시간 사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작년 말 이후 6개월여 만에 네 번째 입원이었습니다.

    남아공 정부는 이전까지는 만델라의 상황이 괜찮다며 국민을 안심시켰지만, 이날 주마 대통령의 발언은 사뭇 심각했습니다. ‘만델라가 곧 숨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고, 일부 외신은 그의 장기(臟器) 가운데 50% 정도가 손상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백인 분리정책) 철폐를 이끈 거목(巨木)인 만델라의 마지막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저는 현지에 급파돼 일주일간 머물렀습니다.

    만델라는 그러나 주마 대통령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의 마지막 사투(死鬪)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남아공의 평균 수명은 58세로 전 세계 약 200개국 가운데 160위권 수준, 즉 보기드문 단명(短命) 국가인데도 만델라는 지난달 18일 병상에서 95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만델라의 부인인 그라사 마셸 여사는 얼마전 남아공기독교 성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만델라가 의식이 명료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세오카 주교는 "만델라가 모든 말을 알아듣고 있으며 그에 반응하고 있다"라고 기자들에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오랜 수감생활 등의 후유증이 매우 큰 만델라가 이렇게 장수(長壽)하는 비법이 있는걸 까요?

    
	AFP 뉴스1
    AFP 뉴스1

    감옥생활 중 매일 먹은 음식과 몸모게 매일 기록, 젊은 시절엔 복싱 헤비급 선수로도 활동

    우선은 철저한 자기 관리입니다. 그 증거를 저는 요하네스버그 시내에 있는 ‘넬슨 만델라 재단’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엔 만델라가 직접 작성한 일기와 젊은 시절 사용했던 여권,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받은 기념품 등이 보관돼 있었습니다.

    그 중 눈에 들어 온 것은 그가 투옥 기간 27년 중 18년을 보낸 로벤섬 감옥에 수감됐을 사용한 달력과 일기(日記)였습니다. 그 달력에는 거의 매일 빠짐없이 자신의 몸무게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기에는 자신이 먹은 음식도 기록했습니다. 만델라 재단 관계자는 “당시 교도관이 만델라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당분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건강에는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만델라는 또 타고난 건강 체질입니다. 만델라는 신장이 190㎝에 달하는 거구입니다. 거기다 남아공 토착민인 템부족의 왕족 자손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다른 흑인과 달리 충분한 영양섭취를 하는 등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습니다. 운동 신경도 뛰어나 젊은 시절에는 복싱 헤비급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권투의 폭력성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몸을 움직여 자신을 보호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전술을 구상하는 게 좋다”며 “링 위에서는 계급도, 피부색도,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고 모두 평등하다”고 적었습니다. 또 수감 생활 중 일기에선 “저녁에 운동하고 난 후 다음날 아침 일어나 내 몸이 더 좋아진 것을 느끼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언론에선 만델라가 현재 폐 감염증에 시달리는 것을 두고 수감 시절 채석장에서 했던 강제노역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물론 그 탓도 있습니다. 만델라는 이전에도 폐결핵을 앓았고, 수감 시절 안구(眼球) 손상이 백내장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폐 감염증이 오랜 수감 생활의 후유증이 일차적 원인이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남아공의 평균 기대수명이 58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일단 만델라는 타고난 체질과 자기 관리 덕분에 일반 국민의 평균수명보다 40년 가까이 더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델라의 건강을 순전히 자신의 노력 덕분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남아공의 의료 기술도 만델라의 장수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의료기술이 뛰어난 편입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일찌감치 서양식 학문이 전해졌고, 자연스럽게 이들 국가의 이주민(移住民)을 중심으로 의학이 발전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한 국가가 남아공입니다.

     
    남아공의 뛰어난 의료 기술, 정치적 이유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시킨다’는 관측도

    1967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그루트슈어 병원에서 외과의사 크리스티안 바너드가 인류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바너드 역시 네덜란드계 출신입니다. 현재 만델라가 입원한 프리토리아의 메디크리닉 심장병원은 외관상 우리나라의 중소 종합병원 수준에 불과하지만, 거기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만큼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현지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만델라의 현재 병세를 두고 정치적 해석도 나옵니다. 올 6월 말 만델라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을 때, “만델라의 생을 편안하게 마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의 연령과 건강 상태를 봤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보다는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었지요. 이런 주장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것이 주마 대통령을 비롯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였습니다. ANC는 만델라가 소속돼 인권운동을 벌였던 정치단체로, 현재 남아공 집권당입니다.

    ANC의 정당성과 힘은 만델라의 후광(後光)에 의존하는 부분이 큽니다. 그런데 만약 만델라가 세상을 떠나면, 그 구심점이 급속히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더구나 ANC는 최근 부패문제가 터지면서 국민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남아공 정부는 지금도 만델라의 병세에 대해 ‘심각하지만 안정적(critical but stable)’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이 ‘안정적’이라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조선일보DB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조선일보DB

    남아공 정부는 환자 상태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의사의 환자비밀 보호 의무’ 때문이라고 하지만, 만델라가 갖는 상징성과 그의 건강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생각하면, 선뜻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ANC가 만델라의 연명치료 중단에 반대한 것은 순수한 뜻도 있겠습니다만,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은 이런 상황 때문입니다.

    만델라가 병상에서 일어나 다시 일상생활을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하지만 인권(人權)운동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활화산 같은 의지와 인내심을 생각하면 기적의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를 ‘마디바(만델라의 애칭)’라 부르며 존경하는 남아공 국민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