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3D 프린팅

3D 프린팅 미래, 소재 개발이 좌우

화이트보스 2013. 8. 18. 20:01

“3D 프린팅 미래, 소재 개발이 좌우”

인터뷰 ‘3D 프린터 세계 1위’ 스트라타시스 조너선 자글럼 아태지역 총괄사장

지난해 3D 프린터 업계에 인수·합병(M&A)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연초 세계 3위 3D시스템즈가 경쟁사인 Z코퍼레이션을 사들여 덩치를 치웠다. 곧이어 업계 선두끼리 손을 잡는 빅뉴스가 터져 나왔다.

1위 스트라타시스와 2위 오브젯이 대등 합병을 통해 시가총액 3조 원 규모의 거대 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스트라타시스’라는 이름을 이어받은 새 회사는 세계 산업용 3D 프린터 시장 52%를 차지한다. 조너선 자글럼 스트라타시스 아태지역 총괄사장은 “3D 프린팅 시장이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3D 프린팅 기술이 시제품 제작에만 쓰였지만 이제는 최종 부품 생산에까지 폭넓게 활용된다”며 “이는 제조업의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출신인 자글럼 사장은 엘카난 자글럼 오브젯 전 회장의 아들이다. 지난 2월 21일 한국을 찾은 자글럼 사장을 만났다.


약력 :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졸업. 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MBA. 2005년 오브젯 동유럽 지역 책임자. 2009년 오브젯 글로벌운영 부사장. 2012년 스트라타시스 아태지역 총괄사장(현).


3D 프린팅은 언제 처음 등장했습니까.

역사가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입체 석판술(Stereolithography)이 초기 기술인데 주로 의료용 장비 제작에 사용됐지요. 1988년 스트라타시스가 설립됐고 오브젯은 1998년 출범했죠. 그 후 기술이 많이 발전했어요.

3D 프린팅이 급성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 동인을 꼽을 수 있어요. 첫째가 캐드(CAD)의 발달이죠. 3D 프린팅은 말 그래도 3차원으로 표현될 수 있는 캐드 데이터를 출력하는 겁니다. 캐드 자체가 2D에서 3D로 빠르게 발전했어요. 두 번째는 3D 프린터의 가격 하락과 성능 향상이에요. 가격이 저렴해져 누구나 쓸 수 있게 되고 사람들의 기대를 일정 수준 충족시킬 만큼 성능도 좋아진 거죠.

3D 프린팅이 제조업 부활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3D 프린팅은 지금 변화 중이에요. 시간이 다소 걸릴 수는 있지만 변화의 방향만은 분명하지요. 과거에는 3D 프린팅이 주로 시제품 제작에만 쓰였어요. 지금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생산과 제조에까지 활용되기 시작했죠. 이미 최종 부품까지 프린트해 냅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거대한 공장 설비, 컨베이어 벨트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거예요. 3D 프린터에 달린 트레이가 그 자체로 그대로 제조 설비이자 공장인 거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3D 프린팅에 주목하고 있는 데요.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 연두교서 연설에서 3D 프린팅을 통해 제조업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국가적인 비전을 선포했지요. 3D 프린팅은 인건비나 재고, 제조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어요. 재고가 필요 없다는 것은 정말 큰 변화죠.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금형을 다 만들어 놓았는데 뒤늦게 버튼 하나가 빠진 걸 알았다면 어떻게 합니까. 생산 라인을 멈추고 버튼을 위한 금형을 다시 만들어야 해요. 3D 프린터가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 자리에서 버튼만 프린트해 갖다 붙이면 그만이죠.

미국 국방부는 군부대에 3D 프린터를 갖추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군 수송기가 갑자기 고장 난다든가 하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별도로 부품 재고를 잔뜩 쌓아두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3D 프린터와 데이터만 있으면 언제든지 프린트할 수 있거든요. 엄청난 혁신이자 혁명이죠.

일반 소비자를 위한 가정용 3D 프린터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3D 프린팅의 성장에는 이견이 없어요. 그만큼 강력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요즘 3D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주제는 ‘3D 프린터가 개별 가정에까지 보급될 것인가’, 아니면 ‘디지털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사진관에 가는 것처럼 동네마다 3D 프린팅 로컬 허브 같은 게 생길 것인가’하는 문제죠.
 
저는 3D 프린터가 가정에까지 보급되는 것은 너무 원대한 목표라는 생각입니다. 거기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제가 확신하는 미래는 이런 겁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실수로 안경코를 밟아 부러지면 오클리닷컴에 접속해 STL(3D 프린팅에 사용되는 데이터 형식) 파일을 3달러 내고 다운로드 받은 다음 로컬 허브에 가서 프린트해 붙이는 거예요.

언제쯤 현실화될 것으로 보십니까.

그런 시나리오가 가능하려면 2가지 필수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우선 프린터 가격이 소비자가 구매 가능한 수준으로 더 떨어져야죠. 출력 가능한 데이터도 폭발적으로 늘어나야 하고요. 제가 오브젯에 처음 입사한 2005년 무렵에는 컴퓨터공학 학위가 있어야만 엠캐드나 오토데스크, 카티야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15세 청소년도 인터넷에 접속하면 엠캐드가 통합된 무료 툴로 손쉽게 자기 파일을 올리고 변형한 다음 다시 다운로드 받아 출력할 수 있어요. 도스와 윈도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되죠. 도스 시대에는 머리가 좋아야만 도스 명령어를 익히고 프로그램도 짤 수 있었어요. 그러다 윈도가 출시되면서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죠.

프린터 업체들도 붐을 맞았어요. 도스 시대에는 집에 프린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적었어요. 사용도 어렵고 출력할 것도 별로 없었거든요. 윈도의 등장으로 프린터를 쓰는 사람이 늘고 출력 가능한 데이터도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같은 원리가 3D 프린터 시장에도 적용됩니다. 요즘은 구글의 스케치업 등 무료 3D 캐드 툴의 등장으로 출력할 수 있는 3D 콘텐츠가 굉장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2005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기술들이 그걸 가능하게 하고 있어요.

지난 8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 같은 국가 수반급 인사가 3D 프린팅을 언급하는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정말 놀라운 성장과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죠.


금속 등 재료 다양화도 과제일 것 같은 데요.

3D 프린터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중간 가교에 불과해요.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프린터가 아니라 제품 자체죠. 컴퓨터에서 만든 문서를 프린터로 출력할 때 어떤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용했는지보다 얼마나 만족할만한 출력물을 받는가 하는 게 더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재와 재료 개발이 핵심이죠.

재료 개발에 어떤 투자를 하고 있습니까.

스트라타시스는 연구·개발(R&D)에 엄청난 투자를 합니다. 임직원 4명 중 1명이 R&D 인력이죠. 방대한 R&D 조직 중에서 가장 큰 부서가 바로 신소재를 연구하는 화학부서예요. 그만큼 핵심적인 과제이기 때문이죠. 소재가 다양해져야만 그로부터 도출되는 솔루션도 다양해집니다. 스트라타시스와 오브젯이 합병을 선택한 까닭도 거기에 있어요.

서로가 가진 기술이 상호 보완적이라 사용할 수 있는 소재의 폭이 넓어졌어요. 스트라타시스의 열가소성 플라스틱 재료와 오브젯의 광경화성 포토폴리머를 함께 제공하는 거죠. 스트라타시스의 난연성 소재는 항공우주산업에서 매우 높은 가치를 발휘하죠. 오브젯은 투명한 소재와 합성수지(ABS), 고온에 강한 소재 등 다양한 소재들을 개발했고요. 앞으로 3D 프린팅의 미래는 소재 개발이 좌우할 겁니다.

합병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세계적으로 3D 프린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이 3D 프린팅의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했죠. 이 업계에서 일한 지난 8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 같은 국가 수반급 인사가 3D 프린팅을 언급하는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정말 놀라운 성장과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죠. 이제 본격적으로 3D 프린팅의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두 회사가 힘을 합친 겁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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