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13년 연두교서 발표 이후 주목 받고 있는 도시가 있다. 오하이오 주 영스타운은 한때 제조업이 흥했으나 공장들이 이전하면서 쇠퇴한 도시였다. 하지만 이곳에 3D 프린팅 관련 정부 주도 산학협력 기관인 NAMII의 본부가 설립되면서 도시는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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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D 프린팅을 통해 미국 제조업의 부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2010년 오하이오의 금속 부품 업체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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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부는 2012년부터 3D 프린팅을 제조업 혁신의 핵심 기술로 간주하고 관련 법령 및 투자 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연두교서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조업 부활의 핵심으로 3D 프린팅이 언급되면서 해외로 나갔던 기업을 미국으로 다시 귀환시키고 새로운 하이테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3D 프린팅이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생산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의 속성 자체를 변화시켜 산업구조를 바꾸는 혁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제조업에서는 새로운 물건을 제조하려면 높은 금형 제작비에 투자해야 하고 제작 기간도 수개월이 소요된다.
따라서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즉각적으로 실현하기 어렵고 소량생산해 경제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3D 프린팅은 다양한 형태의 시제품 제작과 맞춤형 소량생산을 가능하게 해 대량생산의 시대를 대량 맞춤화의 시대로 바꾼다.
대량 맞춤화 시대 열려
3D 프린팅은 개발, 생산 단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 프로세스 전 단계에 변화를 가져온다. 기존처럼 다수의 부품을 수급해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형태의 제품을 한 번에 찍어내기 때문에, 공급망 관리와 재고관리를 단순화해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판매 단계에서도 비용 타산이 맞지 않았던 소량 주문 고객에 대한 판매가 가능해지며 투자 실패 리스크 및 재고 자산의 회수 불확실성도 줄어들어 제조 기업의 재무관리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변화는 대규모 기업과 저임금 국가에 집중돼 있던 기존 제조업의 판도를 변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혁신의 한계에 도달한 기존 제조 산업에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에서 규모의 경제 법칙이 약해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제조업 벤처 창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 과거에는 자금 조달, 생산기술, 유통, 법률문제의 복잡함 때문에 제품 발명가의 아이디어가 실현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공장을 짓거나 외주제작을 할 필요 없이 3D 프린터를 구매하거나 임대, 주문 제작하는 방식으로 경제적으로 제조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사업 위주의 벤처를 넘어 제조업도 벤처 창업이 용이한 분야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는 3D 프린팅으로 시제품 제작비용을 40~50배 줄인 제조업 벤처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벤처·창업가의 스타트업 비용이 감소해 제조업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노동집약적이던 제조업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같은 창의 산업으로 변모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이제 대규모의 제조 설비 대신 3D 프린터 몇 대만 있으면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한곳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대량 맞춤화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제조 모델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처럼 제품 종류별로 특화된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물류 단계를 거쳐 전 세계 주요 시장으로 배달되는 형태가 아니라 소비 시장에 근접한 제조 설비가 지어져 국가·주·도시 단위의 소비 시장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뉴욕·도쿄 등 주요 도심과 근교에는 이미 이러한 제조 설비가 등장하고 있다. 현재는 취미 활동 등의 용도로 실험적으로 도입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소비 시장에 가까운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기존 제조업체도 이에 참여하면서 폭넓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컴퓨터로 디지털 3D 도면을 수정하면 바로 개선된 제품 생산이 가능하고 3D 도면을 인터넷으로 전송하면 세계 어디에서나 3D 프린터로 즉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 음악·도서·신문과 같은 미디어 산업이 디지털화로 변혁을 맞이한 것처럼 3D 프린팅은 제조업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을 통해 글로벌 생산·유통·소비가 가능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3D 프린팅과 인터넷을 연계한 새로운 서비스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의 3D 프린팅 통합 플랫폼 사업자 셰이프웨이는 3D 프린팅 서비스의 선두 주자로, 가장 큰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셰이프웨이는 제품 디자인·판매·제조·배송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통합 서비스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한다.
제품 아이디어만 가진 개인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별도의 투자비용 없이 실제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 이 업체는 뉴욕 등 도시 근교의 공장에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온디맨드(On-demand) 제조 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빠른 속도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클라우드형 공장도 가능
3D 프린팅은 기존 제조업에 재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 사업 등의 ICT 산업은 제조업과 결합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파생 서비스 및 의료·교육 등에서 새로운 시장이 발굴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손쉽게 사업화할 수 있는 창업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3D 프린팅 산업은 기존의 저임금 제조업 일자리와 달리 고급 인력의 수요가 증가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저임금 국가에 집중된 제조업 패권이 선진국으로 회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에 따라 최근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은 3D 프린팅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18세기 말 등장한 방직기계는 섬유산업을 기계화하면서 제1차 제조업 혁명을 가져왔고 20세기 초 포드사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면서 제2차 제조업 혁명을 유발했다. 3D 프린팅은 제조업의 ICT화를 통해 대량 맞춤화의 시대를 여는 제3차 제조업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된다.
‘롱테일 법칙’의 저자이자 IT 전문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을 역임한 크리스 앤더슨은 그의 책 ‘제조사-새로운 산업 혁명’을 통해 3D 프린팅이 가져오는 제3차 제조업 혁명의 시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웹상에서 상상하는 모든 물건들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공동 제작하는 개방형 혁신이 진행되고 투자 방식도 투표에 의한 소셜 펀딩이 확산될 것이다. 다가올 미래는 가상의 ‘클라우드형 공장’에서 제작부터 판매까지 이뤄지는 제3차 제조업 혁명의 시대가 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얼마 전 세계 최대 3D 프린터 업체 스트라타시스가 한국 시장 공략 강화를 선언하면서 3D 프린팅 관련주 주가가 급등하는 등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높은 제조업 경쟁력과 ICT 인프라, 우수한 인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3D 프린팅 산업의 빠른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이보경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bokyung@k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