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11.25 22:13 | 수정 : 2008.11.25 22:54
노조 무리한 요구에 회사 굴복
정치는 표 의식해 목소리 못내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기의 여파로 소비가 급랭하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씩 감소하는 상황에서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GM의 어려움에 대해서 미국의 여론은 상대적으로 싸늘하다. 이는 자동차 업계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의 많은 부분이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방만한 경영 때문이라고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종 이해(利害) 관계자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너무 많은 브랜드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또한 복잡한 하청체계를 거느리다 보니, '규모의 경제'에 따른 효율적 경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더욱이 청문회에까지 전용비행기를 타고 오는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까지 겹치면서 방만한 경영이 만연된 상태이다. 경영뿐 아니라 노조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강성노조인 자동차노조는 파업위협 등을 통해서 고임금구조를 정착시켜 놓았다. 이 때문에 자동차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의 시간당 임금이 미국 남부에 비하여 두 배 가까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노조의 입김은 임금뿐 아니라 의료혜택 및 연금 등 각종 복지혜택까지 자극하였으며, 특히 퇴직자들에게 지급하는 연금 수준을 회사가 지탱하기 힘든 정도로까지 올려놓았다. 이로 인해 미국 자동차산업은 고비용구조가 고착됐고, 생산원가를 아무리 낮추어도 의료비와 연금 등 각종 복지비를 지급하다 보면 한국이나 일본 차에 비해서 대당 수천 달러씩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욱이 정치인들 역시 노조를 의식하여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 역시 자동차 구제금융안을 지지하는 이유가 자신의 선거를 지지해 준 자동차노조에 진 빚을 갚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은 자동차업계의 위기가 단순히 금융위기로 인한 일시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의 자동차산업 사태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에 지적한 미국 자동차업계의 문제점들이 한국의 자동차업계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위치한 울산의 1인당 소득이 전국 최고수준이 될 정도로 현대자동차는 높은 임금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노조는 매년 각종 수당과 복지비 등의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비슷한 강도의 일을 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과 같은 조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노조는 매년 파업을 정례화하고 있으며, 경영진 역시 이들의 요구에 늘 무릎을 꿇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곤 하였다. 더욱이 이를 지지하는 일부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현재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20여 년 전 모습과 너무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미국 자동차업계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반짝하는 반사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만일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영진과 노조가 지금이라도 내부개혁을 통한 구조개선을 이루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한국 역시 현재의 위상을 중국이나 인도 등에 내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