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0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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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준 TV조선 사회2부 기자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婚外) 아들이 사는 집에서 자주 자고 갔다고 증언한 가정부 이모(61)씨가 자신의 증언이 보도된 뒤 보인 첫 반응이었다.
아주머니는 "몇년 동안 가슴에 쌓여 있던 한(恨)이 풀렸다"고 했다. 그동안 자신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슴 한구석이 늘 무겁고 답답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전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은 그저 마음속에 묻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못 배운 내 얘기를 누가 믿겠느냐"는 체념이었다. 힘센 권력과 무서운 '주먹'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채 전 총장 혼외자 의혹' 보도가 터져 나왔고, 아주머니의 체념은 용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도 털어놓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후환이 없을까 무서웠다. 그래서 TV조선과 첫 접촉 이후에도 만나는 약속을 잡기까지는 오랜 설득이 필요했다. 약속 장소에 나온 아주머니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목소리도 떨렸다. 대화를 하면서도 몇 번이나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았다.
하지만 '진실의 토로'가 시작되자 아주머니의 눈시울은 치밀어 오르는 격한 감정으로 붉게 물들었다. 채군 어머니 임모(54)씨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주머니는 임씨에게 빌려준 돈 6770만원 중 아직 절반 이상을 못 받았다.
그 돈에는 아주머니 평생의 피눈물이 배어 있었다. 아주머니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과거 남편은 술만 먹으면 자신과 두 자식을 마구 때렸다. 남편이 아주머니 머리를 잡아채 펄펄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으려던 적도 있었다. 아주머니의 절규에 동네 주민들이 겨우 말리기도 했다. 그렇게 17년을 살다 아주머니는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식당 허드렛일부터 사창가에서 밥 차려주는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인터뷰 중 목이 메는 아주머니에게 기자가 편의점에서 작은 생수 한 병을 사서 드렸다. 평생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를 먹어봤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돈이 아까워 단 한 번도 밖에서 음료수를 사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모은 돈이었다.
보도 이후에 만난 아주머니 얼굴에는 예전의 불안이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느냐"고 묻는, 푸근한 이웃집 아주머니였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진실을 털어놓으니 마음이 개운해요. 평생 이렇게 마음 편한 적이 없었어요. 이제야 나도 세상의 일원(一員)이 된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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