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력시위와 한미동맹 60주년 – 3
북한은 ‘서울 불바다’를 운운하며 전쟁을 할 것 같은 위기를 조성하는 ‘벼랑끝 전술’로 1994년의 승리를 이룬 바 있으니, 지금도 같은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2013년 한반도 위기의 개략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것을 안다면 우리는 무엇을 강화·유지하고 무엇으로 북한을 눌러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손자(孫子)는 적군을 공격해 이길 수 있는 공성(攻城)과 벌병(伐兵) 능력을 갖춘 후, 적의 전략·모략(謀略)을 무너뜨리는 벌모(伐謀)와 적을 고립시키는 벌교(伐交)를 해야, 싸우지 않고 적을 항복시킨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의 모략(전략)을 무너뜨리고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전력을 갖춰나가야 한다.
북한이 받고 있는 압박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조약을 끌어내기 위해 미국이 추진한 정전협상을 무력화하는 조치를 취했었다. 정전협정을 맺으면 제일 먼저 포로를 교환한다. 미국은 한국과 방위조약을 맺지 않고 정전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헌병대를 시켜 공산포로 가운데 한국에 남기를 바라는 반공포로를 몰래 풀어주는 전무후무한 작전을 펼쳤다.
그 바람에 정전협정이 엉켜버리자, 화가 난 미국은 이승만을 하야시키는 작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한국민들의 충성도가 대단히 높아, 실행하지 못하고 이 대통령을 달래는 쪽으로 돌아섰다. 방위조약을 맺어줄 테니 다시는 정전협상을 방해하지 말라고 사정한 것. ‘외교에는 귀신’인 이대통령은 미국을 더 압박해, 한국군 60만을 현대화해준다는 약속까지 받아내고 벼랑끝 전술을 멈췄다.
덕분에 한국은 한국군을 현대화하고 제2의 6·25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미국은 바보가 아니었다. 한국 사태에 무조건 말려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 국내법을 이유로 이 조약 3조에 ‘헌법상의 소속에 따라 행동한다’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조약을 맺더라도 미국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지원군을 한국에 파병하겠다고 한 것.
그때는 이것이 한국이 받아낼 수 있는 최고였기에 한국은 이를 수용했다. 그리하여 1953년 말 이 조약이 체결되고 1954년 양국 국회의 비준을 받아 이 조약이 정식으로 발효됐다. 한국은 6·25정전 정전 후 한국에 남게 된 UN군 사령부와 이 조약을 양축으로 안전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970년대 중반 큰 변화가 일어났다. 베트남 공산화를 시작으로 인도차이나 국가들이 연쇄 공산된 것. 위기를 만난 미국은 양대 공산대국인 소련과 중국을 분리시키는 데탕트 전략을 구사했다. 중국을 친구로 만들어 적을 하나로 줄인 것이다.
미국이 밀리자 공산세력을 중심으로 한 비동맹 세력이 힘을 발휘했다. 북한을 멤버로 받아들인 이들은 한국에 있는 UN사 해체를 주장했다. 덩달아 미국에서는 인권을 내세운, 한국과는 이상하게도 코드가 맞지 않는, 카터 대통령이 나서서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했다. ‘종이조각’인 한미상호방위조약만 남은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이 기막힌 전략을 발휘했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막으면서 UN사 해체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미군과 연합사를 만들기로 한 것(1978년). 미군 역시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고 있었기에 한미연합사 창설에 적극 찬성했다. 한국은 한미연합사를 만들어 UN사에 맡겨 놓았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연합사로 넘겼다.
이로써 한국은 방위조약 3조의 한계를 단번에 극복해버렸다. 미군이 한국 방어를 책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해체할 것 같던 UN사도 해체되지 않고 존속하게 되면서 한국 방어는 보다 확실해졌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한국은 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 등을 성공시키며 G-10 국가 수준으로 급발전했다.
한미연합사 체제의 핵심은 ‘시차별부대전개제원(TPFDD)’다. 이 제원은 유사시 한반도로 오는 미군의 증원 전력의 이름을 적어놓은 목록이다. 이 제원에 따르면 유사시 69만명의 미군이 한국으로 와 순식간에 한미연합군의 전력은 북한군보다 많은 130만명에 이르게 된다. 전력 증강은 그 이상이다.
미 공군은 F-22, F-117, B-2 같은 스텔스기를 포함한 공군원정군을 보내고, 미 해군은 3함대 소속의 5개 항모전단을 7함대에 배속시킨다. 이러한 항공세력을 한미연하공군구성군사령부가 통합 지휘하니, 연합군은 한순간에 제공권을 장악해 공지작전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스트라이커(Stryker) 여단을 중심으로 한 전력사령부 예하의 미 지상군의 기동부대들이 달려온다.
지금도 북한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전력이 오면 더욱 큰 봉쇄를 받게 되기에, 위협만 반복하며 큰 도발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원군이 오면 중국도 힘을 잃기에, 중국은 북한의 위협이 거세지면 북한을 누르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북하도 이러한 사태가 두렵기에 비대칭 전력 개발에 애를 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김씨 정권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에, 제네바 협상 예에 따라 위기를 일으켜 미국과 대화하려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다. 이것을 안다면 2013년 한반도 사태를 두려운 눈으로만 바로 볼 필요는 없어진다.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의 혜안이 한국을 위기로부터 꺼내 G-10 국가 수준으로 발전하게 했다. 한미연합 방위 체제 때문에 북한은 철저한 봉쇄를 달해 거꾸로 우리를 공격할 것 같은 반말마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위협은 TV를 보듯이 생중계 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그 허실이 드러난다.
2013년 북한 위협은 공갈이었다는 것이 확인되면 우리는 보다 자신을 갖고 북한을 통제하며 통일을 단초를 쌓아갈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도전의 바탕에 한미연합체제가 있다. 현재의 안보와 미래의 통일을 이루고 싶다면 우리는 방점을 어디에 찍어야 할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북한 무력시위와 한미동맹 60주년]
북한이 심리전에 이용하는 정체불명의 미사일 ‘무수단’
http://blog.donga.com/milhoon/archives/1741
동맹국이라도 무기수출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
http://blog.donga.com/milhoon/archives/1746
주한미군 철수를 막은 박정희 대통령의 기막힌 전략
'민족사의 재발견 > 겨례의 지도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朴대통령, 한국시리즈 3차전서 '깜짝 시구' (0) | 2013.10.27 |
---|---|
50년 전 어머니네요" 朴대통령 추억 잠겨 (0) | 2013.10.22 |
삼국지와 세 리더십 (0) | 2013.09.29 |
朴대통령 "기초연금 죄송" 이틀째 사과 (0) | 2013.09.29 |
런웨이 오른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 외교' (0) | 2013.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