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혼수와 사랑의 깊이

화이트보스 2013. 11. 18. 16:31

혼수와 사랑의 깊이[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11.12 19:00 / 수정 2013.11.13 10:01

[일러스트 강일구]
책상 위에 청첩장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온 모양이지요. 지인들이 혼인을 알리는 예비부부에게 덕담을 건넵니다. “잘~ 살아라!”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화촉을 밝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부부 10쌍 가운데 3쌍은 남남이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이 갈등의 전초전 같은 게 ‘각종 결혼 비용 정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 혼수, 예단, 예복. “원래 신부 측에서 내는 거다” 또는 “신랑이 내는 거다”라며 옥신각신하게 되죠. 도대체 이런 것들은 누가 정했는지, 한숨을 쉬다 보면 어느새 결혼날짜가 다가오곤 합니다. 이번엔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을 하고, 또 한 달 만에 “2000만 원 예식비” 때문에 헤어진 한 커플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신부 이야기, “결혼식비 반반 안 된다고?”

“나 결혼해.”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내밀었다. “계집애, 너 이럴 줄 알았다! 얼굴보기 어렵더니 그동안 연애했던 거야?” 친구들의 하이 톤 원성을 귓등으로 넘겨들으며 ‘예랑(예비신랑)’의 정보를 흘렸다. “만난 지 한 달 밖에 안돼. 별건 아니고 작은 가게를 하나 하고. 나이는 5살 위.” 친구들이 "꺄아" 소리를 지른다. 친구들 중에선 내가 처음으로 결혼하는 셈이니 이렇게 호들갑을 떨 만도 하다.

사업하는 아버지 덕에 편하게 자랐다. 모자란 것 없이.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하던 엄마. 엄마가 “좋은 자리가 하나 났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의 손에 끌려나간 선자리. 남자는 꽤 큰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라고 했다. 세 번째 만나던 날. 양가에선 혼담이 오갔다. ‘길일’이라고 받은 날짜는 한 달 뒤. “무슨 결혼을 이렇게 급하게 하느냐”며 펄쩍 뛰었지만, 그날이 제일 좋은 날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네 번째 만난 날엔 남자의 한복을 370만 원주고 샀다. 그리고 이틀 뒤엔 예비신랑의 양복과 구두를 300만 원에 구입했다. 여섯 번째 데이트에선 예단비 5000만 원에, 시아버지 양복 값 200만 원을 넘겼다.

촉박한 결혼일정 때문에 데이트는 쇼핑이나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보면, 뭔가 사기 일쑤였고, 그러지 않으면 결혼을 못할 것만 같았다.
신혼여행비는 250만 원씩 각각 냈고, 결혼 며칠 전 데이트에선 신랑 예복 140만 원에 내 옷 210만 원, 이렇게 썼다.

“사돈, 밥값은 반반 합시다!”

결혼식 당일. 폐백을 올리고 나니 엄마 아빠 얼굴이 이상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너는 알 것 없다”고만 하셨다. 기분이 찜찜해 신랑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결혼식 비용 때문에 좀 의견이 다른 가봐.” 요컨대 이랬다. ‘우리 아버지’는 결혼식비는 반반을 부담하자고 하셨고, ‘시아버지’는 손님 수만큼 나눠내자는 거였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 쪽 손님이 많은 건 당연지사. 2000만 원의 결혼식 비용을 두고 양가가 얼굴을 붉히다니,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시댁은 “웨딩 비용, 촬영비용 300만 원까지 우리가 냈고 손님도 적은데 왜 밥값을 절반이나 내야 하냐”고 펄쩍 뛰었다. 결국 아버지를 설득해 아버지가 1400만 원을, 시댁이 600만 원을 부담하는 걸로 마무리를 했다.

“아가, 출근 왜 하니?”

신혼여행에서 돌아와도 돈 쓸 일은 계속 이어졌다. 이바지 음식비만 260만 원이 들었고, 예단 음식값도 300만 원이나 시댁에 줘야 했다. 소파를 바꾸고 싶으시단 말씀에 시집에 300만 원짜리 소파도 하나 놓아드렸다. 신혼여행 후 첫 월요일. 아버지의 회사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연락이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던 터라, 고민 없이 회사로 나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결혼 후에도 아버지 회사로 출근을 계속하자 남편은 “결혼 전 약속과 다르다”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결혼하면 집에서 전업주부로 내조만 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깼다는 거였다. 남편은 “장인어른이 마음대로 결혼식 비용 부담 문제를 반반으로 하자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 출근 문제를 미리 의논하지 않은 건 미안했지만, 이미 지난 일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이번엔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아가, 왜 출근을 하니! 넌 내가 우스운 게냐!”

문자로 헤어진 우리

시아버지의 폭언을 듣고 난 뒤.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짐을 싸 친정으로 향했다. 남편에겐 문자를 남겼다. “아버님은 우리 아빠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단다. 나는 졸도하기 직전이다. 도저히 오빠랑 같이 살 수가 없다.”

남편은 내가 다시 돌아와 주길 바라는 모양이었지만,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혼인신고도 못했던 결혼 한 달. 그 짧은 시간에 지옥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남편에겐 혼수비 5000만 원 등을 포함한 1억3000만 원을 돌려내란 소송을 냈다.

법원 “경솔한 아내, 방관한 남편 모두 책임”

아내와 남편은 맞소송으로 서로 “비용을 물어내라”며 맞붙었다.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부산가정법원은 이 소송에 대해 “아내와 남편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아내는 출근문제로 배우자의 부모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상황을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경솔하게 집을 나갔다”고 잘못을 지적했다.

남편에 대해서도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못하고 이를 방관해 분쟁을 심화시키고, 해결방법을 찾지 못한 채 혼인관계를 정리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짧은 기간 교제 후 서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화를 통해 이해와 양보를 도출하고 차이점을 극복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