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02 03:00 | 수정 : 2013.07.02 09:40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공정위, 서울 21곳 실태 조사
식사 주문량 모자라면 대관료 4000만원까지 받아… 꽃장식·무대 연출 강매도
끼워팔기 등 관행 적발하고도, 공정위 "법적제재는 어렵다" 꽃장식·음료 등 외부반입 권고
지난 주말 서울의 한 특1급 호텔. 신랑·신부가 하객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식장 입구에는 화환 20여개가 늘어서 있었다. 식사로 해산물 샐러드, 소고기 스테이크, 치즈 케이크, 커피가 차례로 나왔다. 테이블마다 와인이 놓였다. 호텔 직원은 "꽃과 무대 장식, 와인은 필수라 원하지 않아도 뺄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서울의 대표적인 특1급 호텔인 신라호텔에서 그 정도 규모로 하객을 초청해 결혼식을 치르면 얼마쯤 들까. 품목별로 가장 값싼 상품만 선택해도 결혼식 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어간다. 밥값 6700만원(1인당 13만4000원×500명), 와인값 600만원(100병 주문 시), 꽃 장식 1210만원, 무대 연출료 440만원, 대관료 2000만원 등 호텔에 내야 하는 금액만 최소 1억950만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특급 호텔의 웨딩 상품 판매 관행을 조사해 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호텔들은 서민층이 상상도 해보지 못한 가격의 웨딩 상품을 제시하면서 호화 결혼식을 조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서울의 대표적인 특1급 호텔인 신라호텔에서 그 정도 규모로 하객을 초청해 결혼식을 치르면 얼마쯤 들까. 품목별로 가장 값싼 상품만 선택해도 결혼식 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어간다. 밥값 6700만원(1인당 13만4000원×500명), 와인값 600만원(100병 주문 시), 꽃 장식 1210만원, 무대 연출료 440만원, 대관료 2000만원 등 호텔에 내야 하는 금액만 최소 1억950만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특급 호텔의 웨딩 상품 판매 관행을 조사해 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호텔들은 서민층이 상상도 해보지 못한 가격의 웨딩 상품을 제시하면서 호화 결혼식을 조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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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특1급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 장면. 특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는 예비 신랑₩신부는 꽃 장식도 반드시 해당 호텔에서 구입해야 한다. 꽃 장식 비용만 1000만원이 훌쩍 넘기도 한다. 공정위는 1일“특급 호텔들이 꽃 장식을 끼워 팔고 있다”며 고객이 외부 업체도 이용할 수 있게 하라고 시정 조치를 내렸다. /이태경 기자
호텔별로 제일 저렴한 하객 식사비는 한 끼에 평균 8만7000원이었다. 하지만 상당수 호텔은 "예식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면서 1인당 10만원도 넘는 식사를 권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비싼 식사는 신라호텔의 21만7800원짜리였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도 최고 18만원 안팎의 밥을 팔고 있었다.
플라자호텔 등 9곳은 일정량(보통 300~400명분) 이상의 식사를 주문하지 않으면 따로 예식 공간을 빌리는 대관료를 받겠다고 고객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예식을 치를 때마다 일정 규모의 매출을 확보했다. 웨스틴조선과 JW메리어트는 식사 주문 숫자가 모자랄 경우 요구하는 대관료가 각 4000만원에 달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1인당 가격이 비싼 식사를 주문하면 식사 주문량을 줄여주는 식으로 가격 흥정을 하는 게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신라호텔만 유일하게 식사 주문량과 무관하게 대관료를 2000만원 받고 있고, 10개 호텔은 대관료가 없었다. 와인 가격은 최저가 평균이 6만7000원이었지만 불과 2~3종만 내놓고 있어 선택의 폭이 좁았다.
12개 호텔은 꽃 장식을 반드시 호텔 협력업체나 호텔 내부 꽃집에서 구입하도록 강요하다가 적발됐다. 신랑·신부가 자기 마음에 드는 외부 업체를 선정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꽃 장식을 생략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외국 플로리스트의 디자인을 사오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도 3가지 정도였다. 예식 서비스와 꽃 장식 서비스는 엄연히 별도의 상품인데 한꺼번에 구입하도록 강요해온 것이다. 공정위가 조사한 꽃 장식의 최저 가격(평균 713만원)은 예식 무대만 기준으로 한 것으로, 하객이 앉는 테이블이나 신부 대기실에 꽃 장식을 하면 추가로 돈을 받고 있다. 9개 호텔은 웨딩 무대 연출도 필수 구입 항목으로 지정해놨다.
◇얌체 '끼워팔기', 제재도 못 해
공정위는 꽃 장식 '끼워 팔기'와 같은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강제력이 있는 행정 제재를 내리지는 않았다. 고병희 공정위 서울사무소 경쟁과장은 "소비자가 다른 예식장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대신 자율적으로 관행을 개선하도록 행정 지도를 했다. 예식 상품 견적서에 필수 구입 항목 표시를 하지 못하게 했고, 꽃 장식·와인·음료 등을 외부에서 반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 시정 조치로 특급 호텔의 '끼워 팔기' 관행이 사라질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서울 마포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B씨는 "공정위가 아무리 시정 조치를 내려도 특급 호텔이 '갑'인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결국 호텔이 자기 입맛에 맞는 몇몇 업체들과 계약을 하고 꽃 장식의 종류를 조금 더 늘리는 정도로만 바뀔 것"이라고 했다.
임계순(68)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결국 바뀌어야 하는 것은 특급 호텔을 이용하는 사회 지도층의 의식"이라고 말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꽃 장식을 강매하지 않고 외부 반입을 허용한 일부 호텔에서도 고객들은 외부 업체를 선택한 사례가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공정위는 1999년 특1급 호텔 결혼식이 허용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조사·단속을 하지 않았다. 손 놓고 있던 공정위는 본지가 '작은 결혼식' 캠페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고비용 결혼식 구조를 비판하고, 이어 국회 정무위 소속 강석훈 의원(새누리당)이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를 지적하자 올 1월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에 그 첫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 호텔 결혼식 밥값, 1인당 21만원까지 손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