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작은 결혼식'

화이트보스 2013. 4. 30. 11:34

'작은 결혼식'
기획시리즈 취재 뒷얘기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일본에 마루오카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모했더니 일본 전역에서 짧은 글 7만통이 쏟아져 들어왔답니다. 그중 찡한 편지를 묶은 책이 ‘가끔 쓸쓸한 아버지께’(다산북스)입니다. 

“양복 속에 모든 것을 감추었던 아버지/퇴직하시고서 처음으로 알아챘어요/등이 휜 것을.” -사토 히로코, 31세.

처음 읽었을 때 그냥 그랬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아릿하더라고요. 그새 저의 친정 아버지가 정년퇴직 하신 까닭이 아닌가 합니다.

아버지는 내내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다가 은퇴하실 때 불쑥 “앞으로 염색 안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갑자기 은발이 된 아버지가 손녀랑 장난감 마트 다녀오시는 모습을 보니 찡했습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은발이셨는데 제가 깜박 잊고 살았을 뿐이지요.

전국민이 못살던 시대였지만 아버지는 그중에서도 특히 못사는 만학도로서 새벽밥 지어먹고 출발해도 서울역에 내리면 캄캄해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66학번으로 대학 마치고 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시국사건에 휘말려 기자시험을 못 보고 대신 언론사(言論史)를 연구하는 학자가 됐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저에게 “네 길은 네가 정하라”고 하면서도 제 엄마를 보면서 “난 어쩐지 얘가 기자가 된다고 할 것 같아”라고 했습니다. 고도(高度)의 심리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은 제가 성적이 많이 오른 아이에게 주는 노력상을 탔습니다. 이튿날 집에 와보니 우리집 마루에 아버지 친구와 후배가 한가득 앉아 갈비와 잡채를 잡숫고 계셨습니다. 누가 보면 저 집 자식이 올림픽 금메달 땄나보다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가 흐뭇한 얼굴로 대학 도서관에 가서 제 상장을 30부나 복사한 프린트물을 손님들에게 돌렸습니다. 손님 치르느라 혼난 엄마가 “왜 이왕이면 산수동 동장님한테도 부치지 그러우?” 했더니 아버지가 정색을 하고 “그럴까?” 하는 겁니다. 저는 속으로 ‘아빠가 왜 저러시나’ 했습니다. 우등상도 아니고 노력상인데 창피하잖아요.

그랬던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신 일이 얼마 전 있었습니다. 작년부터 조선일보 동료기자들과 함께 ‘작은 결혼식’ 시리즈를 취재해 오고 있는데 이 시리즈로 올해 초 중견 언론인 단체인 관훈클럽이 수여하는 관훈언론상(제30회)을 동료들과 함께 받은 것입니다. 담담한 척, 겸손한 척 했지만 속으로 신났습니다.


	[클릭! 취재 인사이드] "심수봉 노래 리메이크해서 가요톱10 1등 만들라"는 지시?

■ "자식을 간절하게, 참 간절하게 키우는 한국의 아버지들"

하지만 저보다 더 신난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살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아버지 얼굴에 ‘에헴’ 이라고 써 있더라고요. 함께 상을 탄 동료들의 부모님도 그랬습니다. 요즘에야 아주 조금 철이 든 저는 부모님들의 좋아하시는 모습이 더 찡했습니다.

한국 부모는 자식을 간절하게, 참 간절하게 키우는 것 같습니다. 작년 2월부터 저희 팀은 신랑·신부·혼주를 400명 넘게 만났습니다. 스치듯 통화한 사람들 빼고, 취재수첩 펼쳐든 기자 앞에서 자기 삶의 내밀한 기쁨과 슬픔을 세세하게 털어놓은 분들만 헤아린 숫자입니다. 다 큰 자식 결혼비용 대느라 내집 팔고 셋집으로 옮기는 초로의 부모가 너무 많았습니다.

원래 셋집에 살아서 줄일래야 줄일 게 없는 분들은 더 괴로워했습니다. 반지하 셋집에 사는 한 어머니는 얼마전 하루 1만~2만원 버는 막일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아들이 몇년째 돈이 없어 결혼을 미루다가 “나는 왜 남들처럼 출발할 수 없느냐"고 대들더라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받아적고 있자면, 노후는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 차마 묻기 어렵습니다. 관훈상 시상식장에 오신 부모님을 보고 가슴이 저릿했던 데는, 1년 내내 이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한국 부모가 얼마나 고단하게 사는가 뼈저리게 느낀게 컸습니다. 

작년 2월 당시 편집국장은 저희들을 부러더니 이렇게 말하며 취재를 지시했습니다. “결혼식 올리는데 이렇게 돈 많이 든다‘는 게 말이 돼? 결혼문화 고쳐야 해. 어떻게 쓸지 고민해봐!”

하지만 이 얘기는 구문(舊聞) 중의 구문인데, 신문(新聞)에 멋지게 다시 쓰라니. 그래선지 편집국장의 지시가 저희 귀에는 “심수봉 히트곡 리메이크 해서 가요톱10 1등 하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심수봉이 1000번 부른 명곡(名曲)을 어떻게 심수봉 찜쪄먹게 부르며, 최신곡이 난무하는 무대에서 그 옛날 그 노래로 어떻게 1등을 하나 싶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때 그렇게 투덜거린 제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작은 결혼식' 시리즈는 두 부분으로 진행됐습니다. 우선 고비용 결혼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조목조목 따져서 집값을 포함한 결혼비용이 전국 평균 2억원을 넘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그 다음엔 초로의 부모가 조기퇴직·집값 하락·자식 결혼이라는 삼각파도를 맞아 빈곤의 수렁에 빠지고, 양가가 거래하듯 명품 예단과 현금을 주고받는 세태를 파헤쳤습니다.

“대안도 내놓으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저희들은 공공기관을 예식공간으로 개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나부터 작은 결혼식을 실천하겠다”는 릴레이 서약을 받았습니다.


	[클릭! 취재 인사이드] "심수봉 노래 리메이크해서 가요톱10 1등 만들라"는 지시?

■ 10번 보다 100번, 100번 보다는 1000번을 노력할 때 성공하는 게 삶의 美學

이 기획시리즈는 지금도 진행 중인데, 1년 간의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상식의 회복'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인들은 집 사면 으레 집값이 오르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 돈으로 더 큰 집을 사고, 나중에 자식이 크면 그 집을 팔아서 결혼비용 대주는 걸 당연하게 알았지요. 그러나 이 시스템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앞으로도 되살날 것 같지 않습니다. 정년은 파괴됐고 수명은 길어졌습니다.

부모 세대가 애쓴 덕분에 지금 세상에 나오는 젊은이들은 한겨울 꼭두새벽에 연탄 가는 일 없이 자랐습니다. 그 대신 그들 앞에는 취업난과 고용불안이 상시적인 삶의 조건이 된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기 노후를 준비하고, 자식은 스스로 일어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팀이 기사 몇 개로 이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대신 저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계속할 뿐입니다. 

그동안 크게 배운 게 있다면 ‘가요톱10 1등 하는 비결’ 두 가지를 깨우쳤다는 겁니다.

먼저, 1등 하는 노래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관객이 그 순간 듣고 싶어하는 노래가 1등을 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문화에 허례허식이 많다는 기사를 숱한 언론사가 썼지만, 독자들이 관심없을 땐 반향이 없었습니다. 똑같은 기사라도 독자들의 삶이 바뀔 때 쓰면 ‘확' 하고 반응이 옵니다. 그리고 한국은 지금 상식적인 삶의 행로를 회복하지 않으면 온국민이 큰코 다치게 될 위기에 직면에 있습니다. 

둘째, 힘은 ‘삽질 1000번’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1명 만나고 쓴 기사보다 2명 만나고 쓴 기사가 좋고, 10명 만나고 쓴 기사보다 100명 만나고 쓴 기사가 좋습니다. 400명 만났다고 거들먹 거리지 않고, 계속해서 500명, 1000명 만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는 우등상이 좋고 노력상은 창피한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노력상이 더 폼나는 상 같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노력상은 결국 ‘삽질 1000번의 미학(美學)’을 인정한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된 딸에게 “앵두야, 엄마가 ‘자기 힘으로 시집가야 한다’는 기사를 써서 큰 상을 받았어. 사람은 언행이 일치해야 하니까 너도 꼭 네 힘으로 대학도 가고 시집도 가라”고 말했더니, 딸은 “엑!” 하고 비명을 지르더군요. “나 그냥 대학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