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내 결혼 때문에 부모님 힘들었다"는 자녀 35%뿐… 의사와 결혼 앞둔 女, 일주일 밥 안먹더니 돌연 "결혼 안 할래" 하길래

화이트보스 2012. 11. 17. 09:14

"내 결혼 때문에 부모님 힘들었다"는 자녀 35%뿐… 의사와 결혼 앞둔 女, 일주일 밥 안먹더니 돌연 "결혼 안 할래" 하길래

  • 김수혜 기자
  • 김효인 기자
  • 입력 : 2012.11.17 03:12 | 수정 : 2012.11.17 06:28

    20년 벌어 40년 살아야하는데… 혼주들 결혼비용 아우성 <下>
    정반대 부모·자식 심리 - 부모 60% "더 못해줘 미안" 자녀 52% "남들은 더 받아"
    88만원 세대의 합리화 - 자기 힘으로 출발 어려운 구조 "어차피 안 된다" 집단적 체념
    '엄마 만능주의' 대한민국 - 보육·교육·복지 전부 '엄마' 몫 지원 당연시… 갚을 생각 안해

    집집마다 다 큰 자식 결혼 비용 대느라 허리가 휘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정작 자식들은 부모가 그 정도로 괴로워하는 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취재팀이 만난 혼주 대다수가 "우리 때는 맨몸으로 단칸방에서 출발하는 게 당연하고 부모가 뭔가 도와주면 그게 도리어 예외적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정반대"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풍요롭게 자랐을 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건 부모에게 지원받는 걸 당연하게 자라다 보니 부모가 느끼는 어려움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지가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부모 세대·미혼남녀·신혼부부 등 3개 집단을 각각 220명씩 조사해 보니, 이런 심리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부모 세대의 절반은 자식 혼사 치르는 스트레스가 치통(齒痛)이나 산통보다 고통스럽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식 중에서 "부모님이 나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사람은 3명 중 1명에 불과했다(그래픽).

    또한 부모 세대는 10명 중 6명이 "더 많이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응답한 반면, 자녀 세대는 과반수가 "남들은 나보다 더 지원받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취재팀이 만난 혼주들은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 모르고 자라 안이하지만, 내 자식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무리해서 지원하긴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자식이 답답하고 섭섭할 때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의사 사위를 본 박연숙(가명·54)씨는 딸이 결혼을 앞두고 일주일쯤 밥을 남기다가 "엄마, 나 그냥 결혼 안 할까 봐" 하길래 깜짝 놀랐다고 했다. 박씨는 "사돈의 요구가 우리 형편에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자식이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 할 수 없이 무리를 했다"고 했다.

    또 다른 혼주 양경미(가명·59)씨는 딸 셋 중 위로 둘 결혼시키느라 각각 4000만원씩 썼다. 양씨의 둘째 딸은 결혼식 마친 뒤 친정에 놀러 왔다가 "두 식구 사는데, 엄마가 사준 식탁은 너무 커서 불편하다"고 투덜거렸다. 양씨는 "차마 딸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적잖이 섭섭했다"고 했다.

    자녀 세대는 부모가 혼수 마련해주는 걸 당연하게 알고, 고마운 줄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왜 이런 심리가 나타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꼽았다.

    첫째는 지금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취업난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세대라는 점이다. 그런 판국에 소형 주택 전세금은 계속 뛰어서, 선배들처럼 자기 힘으로 벌어서 출발하는 게 구조적으로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어차피 내 힘으론 안 된다'고 포기하고 부모에게 기대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또 보육·교육·복지 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식을 돌보는 일이 거의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다.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자력으로 해결하기보다 "엄마!"를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서도 부모 세대의 관심과 간섭은 거추장스러워한다. 부모에게 지원받는 만큼, 부모에게 되갚을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결혼한 뒤 부모에게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는 신혼부부는 10명 중 2명에 그쳤다. 이런 태도에 대해 조윤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젊은이들이 결혼식 올릴 때까지는 '나는 가족의 일부니까 부모의 지원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결혼식 올린 뒤에는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개인'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혜경(가명·57)씨는 "다음 달에 결혼하는 장남에게 신혼집 마련해주느라 1억 가까이 들었다"면서 "차남 결혼시킬 때도 그만큼 대주려면 솔직히 집 파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