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20년 벌어 40년 살아야하는데… 혼주들 결혼비용 아우성] [中]

화이트보스 2012. 11. 16. 16:05

[20년 벌어 40년 살아야하는데… 혼주들 결혼비용 아우성] [中]
아래층 월세를 전세로 돌리고 펀드·적금 모두 깨 예단 마련
안사돈이 골라놓고 전화하면 저는 가서 돈만 계산해요… 지금도 안사돈 전화오면 떨려
시부모님 모시고 있고 아직 결혼 안한 자식도 있는데 남은 건 매달 나오는 연금뿐…

"너 꼭 이렇게까지 시집가야겠니?"

2007년 결혼을 앞둔 맏딸(36)에게 제가 내뱉은 말입니다. 저 올해 환갑이에요. 공무원 남편과 1남2녀 키웠습니다. 그해 가을, 맏딸 시집보내느라 남편 퇴직금(공무원연금) 일부도 미리 당겨 받고, 생활비 아껴서 꼬박꼬박 붓던 펀드와 적금도 해약했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조그만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데, 아래층(76㎡·23평)을 월세 놓던 것을 전세로 돌려 쏟아부었습니다. 공무원 형편에 큰 무리를 했지요.

처음 딸이 사위와 만날 때, 우연하게 사위가 딸을 집에 데려다 주는 걸 봤어요. 사위가 젊은 나이에 고급 차를 몰더라고요. 우리 집은 공무원 외벌이라 집 한 채가 전 재산이에요. 나중에 딸이 '남자친구네 집이 장사를 하는데, 그 집에 갔더니 안방이 우리 집 거실만 하더라'고 해요. 그렇게 잘사는 집에 딸을 시집보내려면 수준을 맞춰야 하잖아요?

처음엔 악착같이 결혼을 말렸어요. "너뿐만 아니라 두 동생도 있는데 어떻게 그 집 수준에 맞추겠느냐"고요. 하지만 딸은 지지 않았어요. "엄마, 그래도 내가 못사는 집에 시집가는 것보다 낫잖아? 그럼 동생들 결혼시킬 때 내가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거 아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저도 차차 '큰딸이 잘살면 동생들을 도와주겠지' 생각하게 됐어요. 아래 두 아이도 "누나(언니)가 부잣집에서 괄시받으면 불쌍하니까 최대한 잘해주자"고 했고요.

막상 결혼 준비를 시작하니 정말 '상상 이상'이더군요. 결혼식은 꼭 호텔에서 해야 한다고 하고, 시댁에 보내는 이불과 반상기는 죄다 이름난 장인이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을 골라서 보내라고 하고…. 안사돈이 가게에 가서 물건을 다 골라놓고 전화를 했어요. "압구정 어디 가서 그릇 세트 사시면 돼요. 혹시 뭐 준비해야 할지 모르실까 봐 전화 드렸어요." 그럼 저는 가서 계산만 했어요. 지금도 안사돈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뜨면, 길 가다가도 주저앉을 것 같아요. 하루에도 수백만원씩 쓰다 보니 겁이 나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남편이 꼬박꼬박 벌어오는 봉급이 매번 한순간에 우습게 나가는 게 무서웠어요.

그래도 사위네 집이 잘산다니까, 집도 전세가 아니라 자가(自家)를 해온다니까, 꾹 참았어요. '우리 형편에는 무리지만 잘사는 집은 이게 당연한가 보다'고요. 딸이 결혼 전 벌어둔 돈은 손도 안 댔어요. 나중에 시집가서 월급 없어서 서러울 때, 꼭 필요할 때 쓰라고 했어요.

딸 결혼시키고 나니까 후유증이 느껴졌어요. 당장 생활이 달라져요. 그전에는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마사지를 받았는데 싹 끊었고요. 몸이 안 좋아 운동도 열심히 다녔는데 이제는 동네 요가학원도 못 가요. 앞으로가 큰일이에요. 딸 시집 보내느라 남편 퇴직금을 당겨 써서, 매달 나오는 연금도 반 토막이 됐어요. 그새 물가는 해마다 올라 먹고살기는 빠듯해요. 우리보다 힘든 분도 많겠지만 저희 부부도 이제 나이를 먹는데…. 더구나 저희는 고령의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아직 결혼 못 시킨 자식도 있어요.

요즘은 자다가 문득문득 깨요. '앞으로 어머니, 아버지 편찮으시고 목돈 들어갈 일 생기면 어떻게 하지?' '그때 월세를 전세로 돌리지나 말 걸, 아니면 퇴직금 미리 당겨 받지 말 걸' 딸 결혼시키느라 목돈 쓴 후회가 계속 이어지는 거예요. 한 번 생활이 흔들리고 나니까 계속 힘들어요, 계속.

주변 사람들은 딸 시집 잘 보냈다고 부러워들 해요. 집에 무슨 일 있으면 '딸한테 도와달라고 하라'고 해요. 근데요, 딸 부부는 잘사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 하고는 전혀 상관없어요. 1년 전 아들 결혼시키는데 딸은 10원 한 푼 못 도와주더라고요. 제가 빚을 얻어서 아들에게 원룸 한 칸 신혼집을 마련해 줬어요. 맏딸이 미안한지 요즘 그래요. "엄마, 막내 보낼 때는 내가 보탤게. 한꺼번에 뺄 수는 없지만 막내 시집갈 때쯤에는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근데 그거, 많이 기대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