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06 03:00
6부―[31] 포스코 전 사원 '릴레이 약속' 이끈 정준양 회장
사돈이 반대? 나한테 얘기하라… 그 댁에 직접 편지 써 설득할 것
호화결혼 문화, 최근 10년 일… 지도층 도덕적 해이 선 넘었다

정준양(64) 포스코 회장이 "나부터 두 딸을 시집보낼 때 양가 합쳐 200명만 초대해 작은 결혼식 올리겠다"고 약속하고 "앞으로 임원이건 평사원이건 사돈이 결혼식 크게 하자고 하면 무조건 내 이름을 팔면서 '회사 오래 다니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라"고 했다. 포스코는 5일까지 정 회장을 포함해 본사와 계열사 전 사원이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 캠페인에 동참했다. 정 회장 등 본사 및 40개 계열사 임원 300여명 전원이 맨 먼저 작은 결혼식 증서에 서명했다.
포스코는 아예 '협력사 임직원 등 이해당사자에게 청첩장을 돌리지 않고, 5만원 이상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사내 윤리규범에 집어넣었다. 10대 그룹 중 처음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포스코 본사 집무실에서 작은 결혼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 회장은 “젊은이들이 신혼집 구하기 어려워 큰일”이라면서 “철강으로 값싸게 집 지을 수 있는 공법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이진한 기자

정 회장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옛 포철에 입사했다.
"최근 모 특급호텔 결혼식에 갔더니 꽃값만 2000만원, 다른 호텔은 4000만원이라고 해요. 식사도 과잉이고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북적대면서 해야 하는 건지…. 결혼식이라는 게 '부조 내고 음식 먹고 오면 끝나는 건가?' 생각했어요."
내년 경제 전망은 어둡다. 다가올 5~10년 동안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는 전문가가 많다. 정 회장은 "경제가 어려우니 우리도 앞으로 내핍을 해야 하는데, 기업 혁신이라는 게 꼭 '하드웨어'(구조조정 등 기업 경영 측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기업문화)에서도 나온다"면서 "앞으로 임원들이 일요일에 골프 치지 말고 부하 직원들 주례 서주길 바란다"고 했다. 상사가 직접 주례를 서주면 직원들 살림살이와 마음속 풍경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겨 가까워진다는 얘기다.
(오른쪽 사진)포스코는 지난달 26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작은 결혼식 약속 서명식을 가졌다. 정준양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주요 임원과 계열사 대표 40여명이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그는 "옛날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게 없으니 '우리 집 형편에 내가 대학에 간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취직해서 결혼 자금 모으는 건 당연히 자기 몫이었다"고 했다. 그도 입사 3년차 때 두 살 아래 부인(62)과 포항 변두리에 있는 조그만 연탄 아파트(43㎡·13평)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가진 돈을 몽땅 털어 신혼집을 구하느라 신부에게 결혼반지도 못 사줬다고 한다. 밤새 수도가 터져서 광에 쌓아놓은 연탄이 곤죽이 되는 바람에 부부가 검댕투성이가 되어 연탄을 퍼낸 기억도 있다. 정 회장은 "고생스러워도 지나고 보면 그런 게 삶의 재미"라면서 "대신 우리 세대는 자기 힘으로 올라갈 여지가 있었다"고 했다.
"반면 요즘 젊은이들은 출발 자체가 어려워요. 저도 젊은 사람들 보면 '저 월급에서 세금 떼고 생활비 떼고 언제 모아서 신혼집 얻을까' 안쓰러워요. 그렇다고 '사회가 이러니 부모에게 기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지요."
한때 한국 젊은이들이 무섭게 뛸 때, 일본 젊은이들은 '힘들게 독립하느니 차라리 부모에게 얹혀살겠다'는 풍조에 젖은 적이 있다. 정 회장은 "그때 속으로 '일본은 큰일 났네'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젊은이들이 쉽게 출발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신혼부부와 혼주들이 허례허식에 돈 쓰지 말고 생활에 보태야 합니다. 포스코 임직원부터 그런 문화를 실천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