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헬스케어

당뇨병 환자여, 무다리를 만들라!

화이트보스 2013. 12. 10. 11:37

당뇨병 환자여, 무다리를 만들라!

  • 노현정
    연세제일내과 원장
    E-mail : hjroh16@hanmail.net
    1995년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 내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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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2.10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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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의 시절 당뇨병 치료의 명의로 소문나신 교수님의 진료실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그 때만해도 대형병원이 많지 않기는 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두 달에 한 번씩 선생님을 뵙기 위해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진료실 앞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교수님 옆에서 환자들 혈압을 재면서 틈틈이 교수님의 비방(秘方)이 무엇일까 엿보았는데, 쓰시는 약은 일반적인 당뇨약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기야 비방이라는 것이 실제 있겠는가. 약이야 거기서 거기지. 그런데 특이한 점은 교수님께서 환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환자들의 종아리를 일일이 주물러 보시는 것이었다. 여자 환자들의 다리를 조물조물 주무르실 때는 약간 민망한 감도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굉장히 중요한 진료의 한 과정이었다.

    근육은 혈당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 경제 활동에 있어 은행 예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밥을 먹고 혈액으로 흡수된 포도당은 바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여분의 포도당은 근육에 흡수되어 있다가 나중에 활동 시 필요하면 혈액으로 방출되어 사용된다. 근육이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가 돈을 벌어 예금하지 않고 바로바로 쓰는 것과 같다. 있을 때 흥청망청 쓰거나 버리다가 정작 필요할 때 돈이 없어 쩔쩔 매는 상황인 것이다. 근육량이 적은 당뇨 환자는 많이 먹지 않아도 식사 후 혈당이 바로 확 올라가고 높은 혈당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반대로 식사를 거르거나 활동을 좀 과하게하면 당뇨약의 효과로 인해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는 저혈당 증세도 자주 올 수 있다.

    헬스클럽 같은 곳에 가 보면 체성분 분석이란 것을 해준다. 내 몸에 있는 근육과 지방량을 분석해서 좀 더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한 조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일일이 환자가 방문할 때마다 체성분 분석을 하기는 어려운데, 쉽게 몸의 근육량을 측정해 보는 방법이 종아리를 만져 보는 것이다. 우리 몸 근육의 많은 부분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같은 하체에 많이 몰려있다. 피부가 얇고 지방이 적은 종아리 부분을 만져 보면 대략적인 체 근육량을 알아볼 수 있다. 그냥 운동 많이 하라고 말로만 하지 않고, 일일이 종아리를 만져 보시면서 “왜 이렇게 약해. 운동을 많이 안했나보네. 많이 걸어요.”하시던 선생님의 진료 방식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환자에게 운동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 걷는 것만으로도 혈당을 낮출 수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 걷는 것만으로도 혈당을 낮출 수 있다.
    필자의 환자분 중 60대 후반 여성분이 있었다. 당뇨병에 걸린 지 20년이 되었고, 여러 약제를 사용해 보았지만 몇 달 이상 혈당이 적절 수준으로 조절되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는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드는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고 보고 인슐린 주사 요법을 권유한다. 하지만 환자 분은 완고하게 인슐린 치료를 거부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통해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갑자기 생활 습관을 현저하게 개선시켜서 혈당을 떨어뜨리는 것이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부 못하던 학생이 갑자기 뜻한 바가 있어 공부에 열중해 성적이 비약적으로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매우 드문 것처럼.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난 후 그 여자 환자분의 혈당은 식전, 식후 평균 100mg/dl 정도씩 떨어졌고 적절 수준의 혈당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비결을 물어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한 두 시간씩 근처 학교 운동장을 돌았어요. 직장 다녀와서 피곤해 쓰러질 것 같아도 걸었지요. 지난번 태풍 왔을 때는 우산 쓰고 죽기 살기로 걸었구요. 무릎 관절이 아파서 운동하고 나면 눈물이 날 정도였는데, 그래도 계속 걷다보니 적응이 되었어요.” 그 분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먹는 약으로 혈당 잘 조절되고 있고 복용하는 약의 개수도 줄였다. 종아리 근육은 나날이 탐스럽게 불어나고 단단해졌다.

    TV를 보다보면 인기 있는 걸그룹들의 늘씬한 다리를 보고 감탄한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그런 다리를 보면 잔소리가 튀어나온다. 필자는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분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혈당 조절이 안 되는 당뇨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 종아리를 주물러 보고 조선무 같은 탕탕한 알통이 잡히면 뿌듯한 느낌마저 든다. 당뇨병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간이 없다면 시간을 만들어서 걸어보자. 혈당이 신통방통하게 떨어지고 건강에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