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무연고자 유골 받아 모시는 古刹 '다이호지' 르포]
장의업체서 택배로 유골 보내 상자에 공양비 5000엔 동봉
3주간 매일 공양 올리고 사찰 지하 납골당에 안치
배우자 먼저 보낸 경우 옆에 유골함 예약하기도
도쿄서 장례 없이 화장하는 直葬 비율 30%에 달해
택배회사 로고 찍힌 차량이 일본 도야마현 다카오카(高岡)시에 있는 560년 된 고찰(古刹) 앞에 멈췄다. 택배 기사가 네모난 상자를 승려에게 건넸다. 승려가 허리를 굽혔다. "잘 받았습니다."
발신자는 장의업체. 상자 속 내용물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 일본 열도 반대쪽 해안 지바(千葉)현에서 가족 없이 혼자 살다 지병으로 숨진 64세 할머니의 유골이었다. 친척들은 다들 "인연 끊긴 지 오래라, 시신을 인수해 장례 치르기 곤란하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장의업체가 지자체 허가를 받아 할머니를 화장(火葬)한 뒤 유골을 수습해 이곳 다이호지(大法寺)에 택배로 보낸 것이다.
구리하라 게이인(栗原啓允·54) 주지 스님이 유골함을 본당 제단에 올리고 초를 켠 뒤 기도를 올렸다. "이분의 가족을 대신해 부처님께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이 절에는 이런 식으로 일본 전역에서 홀로 죽은 사람들의 유골이 하루가 멀다고 택배로 온다. 4년째다. 죽은 지 여러 날 지나서 발견된 이들도 많다.
애초부터 마음먹고 시작한 선행은 아니었다. 2009년 한 장의업체가 이 절에 신자들의 합사(合祀) 묘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을 받아달라"고 부탁해왔다. 다이호지 관계자 히즈메 나오쓰구(�爪直次)씨가 "처음엔 정말 난감했다"고 했다.
- 일본 전역에서 발견된 고독사 시신 중 일부는 화장 뒤 택배 상자에 담겨 도야마현 다이호지(大法寺)로 보내진다. 연고 없는 300여명 유골들이 절 한편 납골당에 모여 있다. 승려가 가족을 대신해 극락왕생을 빌어주고 있다. /안준용 특파원
"그분에게 '만약 우리가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폐기된다'고 해서 유골함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무연고자 유골을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이호지에 쉬고 있는 영혼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죽어도 시신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선 '무연사(無緣死)'지만, 정말로 가족도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은 아니다.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고 몇 년 전까지 멀쩡하게 직장도 다녔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이 끊겨 홀로 숨진 경우가 많다. 젊었을 때 가족을 팽개치고 회사에만 올인하다가 나이 먹어서 가족에게 외면당한 샐러리맨도 있다. "고령화·핵가족화·개인주의화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게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다이호지가 사회복지법인과 연계해 자발적으로 펼치는 활동인 만큼, 무연사 유골을 거둔다고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금을 주지도 않는다. 무연사 시신이 나오면, 지자체는 사망자가 각종 사건에 연루됐는지 확인한 다음 화장 허가서만 발급하고 손을 뗀다. 유골을 수습해 다이호지에 택배로 부치는 건 장의업체의 몫이다. 다만 업체가 그때 택배 상자에 사망자가 남긴 돈 중 5000엔(약 5만원)이 든 봉투를 동봉한다. 일종의 '공양비'로, 전액 납골당 안치·유지 비용에 들어가기 때문에 다이호지에 돌아오는 금전적 이익은 '제로'다. 사망자가 돈 한 푼 없이 죽는 바람에 5000엔을 동봉하지 않는 경우라 해도, 어찌 됐건 안치하지, 유골을 버리거나 돌려보내는 일은 없다.
구리하라 주지 스님은 "죽어서 갈 곳 없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마지막 10년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외로워졌을 뿐 그들 대다수는 우리처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스님은 "이분들이 결국 우리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이분들의 유골이 사망 사실, 화장 기록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폐기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다이호지 측은 유골함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이름·생년월일·사망일시·사연 등 고인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는 대로 모아서 문서로 기록해둔다. 최소한의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이 작업을 스님은 '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불렀다.
유골함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3주간 매일 공양을 올리고, 이후 본당 뒤편 지하에 있는 납골당(33㎡·10평)에 안치한다. 납골당의 양쪽 벽은 사물함처럼 생긴 유골 수납공간 300여개다. 각각의 수납공간 앞에 다이호지에서 붙여준 불명(佛名)이 쓰여있다. 문을 열어보면, 오래된 사진, 낡은 향수병 같은 사소한 소지품이 유골함과 함께 놓여있다. 아직 비어있는데 'Reserved(예약 완료)'라는 팻말이 붙은 수납공간이 간혹 있었다. 다이호지 관계자는 "꼭 무연고자가 아니라도 여기 안치되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돈이 없어 정식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배우자 유골함을 택배로 보내오면서, 본인도 나중에 죽으면 남편·부인 곁에 있고 싶다며 자리를 부탁하는 경우입니다."
취재 도중, 사이타마(埼玉)현에서 그런 택배가 왔다. 61세 남편의 유골함을 보내면서, 아내가 흰 봉투에 5000엔 지폐와 메모를 넣었다. "스님, 남편을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