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하게 수사 지휘한 박만 서울지검 2차장, 검사장 승진서 탈락…수사팀 십자가 혼자 졌다
검찰 내부 기류도 그러했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서울지검의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송 두율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한다면 내가 사표를 내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김 종빈 대검차장도 동조 사표 의사에 가담했다. 출퇴근 수사를 강조하던 나에게 혹시나 해서 다짐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세헌 공안1부장, 정정식 검사도 “구속 안하면 사표”
그것은 수사팀도 마찬가지였다. 수사를 맡았던 공안1부 오세헌 부장검사(현 변호사)와 정점식 검사(현 서울고검 공판부장)가 하루는 내 방에 올라와서 “송두율 교수를 구속 수사할 것이 아니라면 사표를 내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출퇴근 수사 방침으로 인해 지레 불구속으로 방향이 정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넘겨짚었던 모양이다. 속으로는 그들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그 뒤 언젠가 사석에서 그들에게 “그때 사표를 낸다고 하니까 너무 무섭더라”며 우스갯소리를 나눈 기억이 있다.
- 왼쪽부터 송광수 전 검찰총장, 김종빈 전 대검차장 (검찰총장을 지냈다), 오세헌 전 서울지검 공안1부장, 정점식 검사.
당시 송광수 총장은 나에게 강금실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보고의무가 있었다. 평소 강 장관이 언론에는 진보성향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고 더욱이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짐작을 하고 있었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보고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나는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보고 자료를 직접 작성하여 대면보고를 했다. 격렬한 논쟁으로 치달아 결국 송 교수의 구속 수사는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범죄 사실이 무엇이고, 이는 국가보안법의 어디에 해당하는 것이고, 왜 구속 수사해야 되는 것인지 조목조목 설명을 드렸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는 국가적으로 국론을 양분시킬 정도로 좌우파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이므로 법원 판단에 맡기는 것이 검찰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라고 말씀드렸다. 검찰이 일방적으로 책임 부담해서는 안 되고 제3의 판정이 정말로 필요한 사건이라고 말씀드렸다.
송두율 구속 수사에 순순히 동조한 강금실 장관
의외로 강 장관은 순순히 나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너무 뜻밖이어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 역시 법률을 전공하고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변호사였다. 법 집행에 있어서는 자기의 개인적인 정치철학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강 장관의 뒤에 버티고 있는 국가보안법 반대론자로부터 강 장관이 추궁당할 시련을 상상해보니 안타깝기만 했다. 법무부장관이 이래서 어려운 자리이다.
결국 송 교수는 구속기소된 상태에서 2004년 3월 30일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되었고, 2008년 7월 24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처럼 유죄판결이 내려지기까지는 황장엽 선생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원래 송두율씨의 국가보안법 위반행위는 너무 명백해 자기까지 증언을 할 필요가 없다면서 끝까지 증언을 거절했다. 그러나 수사검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증언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유죄판결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 2003년 10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을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내 개인적인 사상의 창고에 묻어두어야 했다. 공인의 입장에서, 수사 주재자로서의 검사인 나는 국가보안법을 추상같이 지켜야 하고 따라서 송 교수를 구속기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개인인 나와 검사인 나를 철저히 구분해야 했다.
김석휘 법무부장관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장관실로 출국인사를 하러 갔었다. 그때 소파에 앉아 함께 차를 마시는데 갑자기 김 장관이 “도대체 헌법을 개정하자고 인도를 행진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을 개정하자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느 검사장은 인도행진 행위를 도로교통법을 적용해서라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있으니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있나”라고 한탄했다. 1985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 민주세력이 평통 위원들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자는 운동을 전개하던 때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임명해 법무부장관이 된 분이 임명권자가 만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주화 세력의 헌법 개정 운동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웠다. 당시만 해도 헌법 개정 운동을 강력히 단속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법무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분은 이를 거부했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유학을 가는 나를 앉혀 놓고 한탄을 했던 것이다. 그의 말에 나는 감동했다. 아직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내가 미국 유학을 가서 3~4개월 지났을 때 김석휘 장관이 전격 해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분이 검찰총장도 하고 법무부 장관도 했기 때문에 오늘날 검찰이 이만큼이라도 큰 발전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이 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하자고 하는 의견이나 운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우리가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자체를 이적행위로 간주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시절의 박만 검사.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다.
“수사 이후 승진에서 밀린 박만 2차장 검사에 너무 미안”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제정됐고 엄연한 실정법으로 존재하고 있다. 폐지 운동과는 별개로 국가보안법 규정 자체를 위반한 행위에 대해선 그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다. 법은 폐지되기 전까지는 실효적인 법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두율 교수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자기 의견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실정법을 위반한 점은 인정하고 승복해야 한다. 이것이 법률가의 기본상식이고 철학이 되어야 한다.
당시 박만 2차장 검사(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는 송두율씨 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극도로 절제되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주옥같은 공보(公報)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 후 검사장 승진 1순위임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못하고 성남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고 말았다. 더구나 그 후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민사소송도 당했는데 우리 모든 수사팀의 십자가를 혼자 지고 간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 큰일을 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