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경안 호남취재본부장
파독 교민 대표들은 지난 2004년 독일을 찾아온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소원을 피력했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임대주택이라도 마련해달라"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서 살다가 고향의 흙속에 묻히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없었다.
노미자(재독대한간호사협회장)씨 등은 직접 찾아 나섰다. 고국을 수차례 오가며 주거할 만한 곳을 물색했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순천에서 적지를 찾았다. 이 '파독 전사' 50명은 지난해 5000만원씩 내놓았다. 주택이 지어지면 5000만원을 더 내어 구입할 예정. 그래도 이들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독일에 남아 연금에 의존하는 고령의 파독 전사들은 다수가 임대주택을 원하고 있다. 국내 지인들과 민간사업으로 추진해왔으나 조각조각 붙어 있는 땅과 분묘 등이 '걸림돌'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인·허가도 복잡했다.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한 해가 또 간다"며 오히려 마음은 조급해지는 상황.
이렇게 되자 노씨 등 파독 전사들은 올여름 정부와 국회에 탄원서를 올렸다. "우리를 독일에 버리지 말라"고 했다. "고국에 거처를 마련하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원하는 순천독일마을은 250가구 규모.
다행히 국토교통부가 해법을 찾아나섰다. 주택공사가 이 순천독일마을을 임대주택단지로 짓는 방식 등을 고민하다 '적자 보전'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자 '공공성 사업'으로 전남도가 추진토록 방향을 잡았다. 국토교통부가 '순천 독일인 조성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한옥 도시 건축 지원사업 예산'으로 국회 예산 심의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국회에서 여야가 이 순천의 독일마을을 짓는 사업비 지원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업에 대한 여야 관련 의원들의 심의 결과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노씨와 같은 파독 전사들은 모두 1만8993명. 지난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광부 7936명, 간호사 1만1057명이 파견되었다. "3년 뒤에는 돌아가겠다"던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20%인 약 3800명이 독일에 남아 있다. 40%인 약 7600명은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산다.
지금 독일에 남은 이들은 대다수가 100만원 안팎의 연금에 의지해 살고 있다고 한다.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본격 송금한 1965년부터 1975년까지 총송금액은 1억153만달러. 특히 1965~1967년 서독 근로자 송금액 규모는 당시 우리나라 수출액의 1.6~1.9%에 해당했다. 조국 경제 발전의 종잣돈이었다.
이번을 계기로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위한 모색이 큰 틀에서 진지하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조국이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귓전에 맴돈다는 이들의 눈물을 이젠 조국이 닦아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