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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서울 임시정부'

화이트보스 2013. 12. 27. 10:56

'북조선 서울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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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2.27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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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택 사태 계기로 탈북자가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
    그들의 체험과 정보력은 남한 내 북한 전문가들 압도… 향후 통일 과정에서도 역할 기대
    分裂보다 統合으로 힘 모아야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장성택 사태 때 각 방송에서 쏟아진 북한 보도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 많은 탈북 출연자가 없었다면 방송사들은 어떻게 방송을 메웠을까. 한국 사회 곳곳에 포진해 활약하는 탈북자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부터 놀라운 일이었다. 이들은 북한 민주화 운동을 통해 실시간으로 얻는 정보력, 그리고 자신의 북한 체험을 토대로 사태의 본질을 실감 나게 풀어주었다. 북한 내부에 네트워크를 박은 탈북자 그룹이 다른 전문가를 압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북한 총리의 사위였던 강명도 교수(경민대)는 장성택과 김정남(김정은의 이복형)의 접촉 사실을 알렸다. 북한군 장교 출신의 김성민 대표(자유북한방송)는 북한 발표 전에 일찌감치 장성택이 총살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물론 억측도 있고 틀린 사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탈북자들 아니었다면 우리는 북한의 난해한 정변(政變) 방정식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장성택 사태는 우리가 의식 못했던 탈북자들의 존재 가치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북한에 큰일이 터지자 우리가 왜 이들을 필요로 하는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탈북자들은 북한을 보는 우리의 눈이자 귀였다. 앞으로 북한에서 긴급 사태가 터지면 현지 사정에 어두운 우리를 대신해 손과 발 역할도 할 것이다. 탈북자 집단은 언젠가 닥쳐올 북한 변혁을 위해 시대가 미리 선물해준 통일 자산(資産)이었다.

    탈북자들은 인권이라는 북한의 아킬레스건(腱)을 사정없이 파고들고 있다. 강철환은 요덕수용소를 전 세계에 고발했고, 신동혁은 14호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폭로했다. 전 세계가 북한 주민의 참혹상을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탈북자들 덕이었다. 이들 아니었다면 유엔이 매년 북한 인권 결의안을 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조직한 단체는 100여개에 달한다. 그 상당수가 북한 민주화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중국 등지에 떠도는 탈북자를 구출하거나 북한에 민주화 복음(福音) 방송을 쏘고 전단을 날려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매일같이 듣고 보는 이런 활동이 대개는 탈북자 단체가 주도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들이 얼마나 미웠던지 간첩을 보내 탈북자 운동가(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살해하려 한 일도 있다.

    탈북자들은 나태해진 남한 사람을 대신해 사상전(思想戰)의 선봉에 서기도 한다. 이석기 재판 때 탈북자들은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노숙 방청(傍聽) 투쟁'을 벌였다. 북한 정권을 비호하는 종북(從北) 세력에 몸을 던져 맞서는 것도 탈북자들이다. 때로는 과격하다는 지적도 받지만, 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북한 문제를 보는 눈은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져 있을 것 같다.

    사선(死線)을 뚫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2만6000여명에 달한다. 북한 인구(2300만명) 1000명 중 한 명꼴로 와 있는 셈이다. 수적으로도 만만치 않지만 구성원 분포를 보아도 북한의 축소판 같은 대표성이 있다. 한국에 적응 못 하는 일부 일탈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많은 탈북자가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회의원 1호까지 배출됐고 사업가·학자·예술인 등으로 성공한 탈북자도 적지 않다. 탈북자 집단은 북한 개혁의 전위부대로 활약하기에 충분한 역량(力量)을 갖추고 있다.

    얼마 전 한 탈북자 단체가 김정남을 지도자로 옹립하자는 서명운동을 펼친 일이 있다. 김정남을 내세운 데는 갸우뚱하는 반응이 많겠지만 '북한 림시(임시) 망명정부'라는 단체 명칭이 눈길을 끌었다. 단순한 인권 차원을 넘어 '김정은 이후'까지 겨냥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독립투사들은 '상하이 임시정부' 깃발 아래 민족해방운동을 펼쳤다. 지금 탈북자들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북한 해방운동이다. 북한 정권의 잔악함을 못 이겨 탈출한 그들이 북한의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탈북자 사회는 출신 지역과 신분에 따라 복잡하게 분열돼 있다고 한다. 이제 북한 변혁이란 대의명분 아래 힘을 결집할 때가 됐다. 만약 범(汎)탈북자 조직이 탄생한다면 명칭은 '북조선 임시 망명정부'로 해주길 바란다. 북한 급변 사태를 겨냥한 대안(代案)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황장엽 같은 거물급이 망명해 합류해 준다면 범이 날개 다는 격일 것이다.

    박정훈 | 디지털 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