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30 03:03
아베가 일제의 침략과 범죄라는 동북아의 확립된 역사 인식에 정면 도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뒤에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재정난으로 국방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미국은 그 빈틈을 일본의 힘으로 메우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아베는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과 대북(對北) 대응에서 일본이 필수적 존재가 됐다는 상황 변화를 이용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침략 전쟁을 부인하는 폭주를 거듭해 왔다. 미국은 이런 아베의 도발을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비판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아베가 집단적 자위권이란 이름으로 추진하는 일본의 군사화에 대해선 명시적으로 그 한계를 설정하지도 않은 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미국의 자세와 태도가 아베의 오판을 불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베가 침략 전쟁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태평양 전쟁에서 희생된 미국민들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마치 남의 일인 듯 대처해왔다. 미국의 강력한 경고가 있었다면 아베가 일본이 이미 썼던 반성의 역사를 지우겠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오히려 한국에 대해 "과거사와 안보 문제를 분리 대응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는 이상 미국의 영향력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뉴욕타임스지는 "미국의 지원 없이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는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는 아베의 행보가 아시아 지역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미국이 분명히 입장을 밝혀 아베가 야스쿠니 참배를 사죄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도록 하지 않으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바탕부터 금이 갈 수밖에 없다. 한국 국민의 가슴에 난 상처로 인해 미국이 입을 피해는 일본의 돈으로 메울 수 없는 것이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28일 직접 성명을 발표해 "일본 오키나와현이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계획을 승인한 것을 환영한다"면서 "미·일 두 나라의 지속적 파트너십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한 지 하루 만이다. 아베가 지난 25일 오키나와현 지사를 만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확정 짓고 다음 날 야스쿠니를 참배한 건 이 '선물'로 미국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이 이런 아베의 계산대로 움직일 것인지 여부는 곧 판명 날 것이다.
아베는 벌써 미국을 무마하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내년 4월 일본을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근본적인 일본의 자세 전환 없이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은 성립하기조차 어렵다는 엄연한 사실을 정확히 인식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