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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부 판사

화이트보스 2014. 3. 6. 19:26

형사부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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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3.06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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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장판사 김홍섭이 6·25 난리통에 속임수로 쌀 배급을 더 타간 여자를 재판하게 됐다. 그는 지인에게 털어놓았다. "나도 배고파서 배급을 좀 더 타 먹었는데 같은 죄인끼리 어쩌란 말이냐." 김홍섭이 세 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곤 말했다. "하느님 눈으로 보면 재판장석 나와 피고인석 여러분 중 누가 죄인일지 알 수 없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 여러분을 죄인이라 단언하는 것이니…." 그는 박봉 쪼개 사형수 가족을 보살폈다. 후배들은 나이 쉰에 떠난 그를 '사도(使徒) 법관'으로 불러 기렸다.

    ▶이찬형은 와세다대에서 법학을 배워 1913년 일제강점기 첫 조선인 판사가 됐다. 그가 선고한 사형이 집행되고 얼마 안 가 진범이 잡혔다. 그는 법복 대신 누더기 입고 엿장수로 3년을 떠돈 끝에 불가에 귀의했다. 좌선에 들면 절구통처럼 꼼짝 않고 용맹정진했다는 '절구통 수좌(首座)' 효봉 큰스님이다.

    만물상 일러스트

    ▶판사들이 가장 겁내는 것이 오판(誤判)이다. 재판받는 사람 목숨까지 왔다갔다하는 형사재판 판사는 더하다. 23년 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재판부는 유죄 선고에 앞서 "나중에 제3자가 나타나 유서를 대신 썼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스럽다"고 했다. 강기훈은 얼마 전 재심에서 무죄가 됐다. 어느 판사는 소형차 앞자리에서 청바지 입은 여자가 성폭행당하는 게 가능한지 가리려고 아내 손 끌고 주차장으로 데려갔다. 한 대법관은 퇴임식에서 "그간 내 오판으로 고통받은 분들께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서울고등법원이 지난달 인사 때 68명 부장판사들의 지망을 받아보니 형사부는 한 명이 지원하고 나머지는 민사·행정부를 골랐다고 한다. 작년에 이 법원 김상준 부장판사가 박사 논문을 쓰며 1심 유죄가 무죄로 뒤집힌 사건 540건을 들여다봤다. 거짓 자백(31.5%), 피해자·목격자가 착각한 진술(70%), 과학적 증거의 오류(13.9%)가 오판 원인이었다. 자백에 과학 증거까지 믿을 수 없다니, 형사재판 피하고 싶은 판사들 심정 이해는 간다.

    ▶한때 1심 형사단독 판사가 "서울시장 안 부럽다" 할 정도로 어깨 힘주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형사단독 안 거치면 잘나가는 판사라 할 수 없었다. 요즘 형사부 판사는 일도 제일 많고 마음의 짐도 커 '3D 업종' '기피 부서'로 꼽힌 지 꽤 됐다.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은 여론 눈치 안 볼 수 없고, 판사가 어떤 결론을 내든 진영 논리 따라 비판하는 게 요즘 법원을 둘러싼 현실이다. 상식과 법리로 재판하고, 판결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이명진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