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14좌.
전문 산악인들에겐 로망이고, 일반인들에겐 꿈이다. 전문 산악인들이라도 쉽게 다가갈 수 없다. 수많은 전문 산악인이 있지만 지금까지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사람은 전 세계 남녀 통틀어 30명 남짓 될 뿐이다. 많은 산악인이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14개의 봉우리를 가리켜 ‘히말라야 14좌’라 부른다. 이 히말라야 14좌 또한 부지기수의 산악인들의 목숨을 가져갔다. 일반 등산객들도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온 후 그 고난의 과정을 강조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종류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다 온 사람이고, 다른 종류는 가지 않은 사람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그 정도다.
새벽녘에 초오유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초오유(중앙) 정상 등정 모습이 하얀 불빛으로 연결돼 있다. 새벽의 반짝이는 별빛과 곳곳에 쳐진 텐트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
그 꿈이고 로망인 히말라야 14좌를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단, 사진으로만. 사진을 보는 순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 수도 있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지 싶다. 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히말라야의 대장관을 사진으로 만이라도 대리만족할 수 있는 기회다. 세계 최고봉 14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진작가 이창수씨가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 촬영한 14좌 사진전을 오는 6월26일부터 8월11일까지 45일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다. 전문 사진작가가 3년여 동안 히말라야를 오가며 촬영한 히말라야 14좌 사진전은 처음이다.
이창수 사진작가가 히말라야 14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창수 사진작가. 그에게 사진작가란 명칭이 붙기 전에는 사진기자란 이름이 붙어 다녔다. 1985년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샘이 깊은 물>에서 첫 직장생활, 즉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국민일보, 월간중앙으로 옮겨 계속했다. 사진기자 생활 16년, 그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대학 다닐 땐 유럽 무전여행을 경험했고, 사진기자할 땐 한국의 동식물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비자를 받기 힘든 시절 가이드 없이 혼자서 백두산 천지까지 오가며 사진을 찍고 다녔다. 1991년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있는 칼라파타르까지 갔다. 죽을 고비도 몇 차례 넘겼다. 당시 그에겐 사진이 인생의 전부인 시절의 얘기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설산이 연봉으로 이어진 가운데 마나슬루의 웅장한 모습과 네팔 사원, 그리고 그 위를 나는 새의 모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듯하다. |
1999년 6월 어느 날 문득 ‘내년이면 사십이다. 인생의 절반, 사진기자 생활 16년 동안 열심히, 원 없이 일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가? 왜 사는가?’라는 본질적인 화두가 확 생겼다. 그 전부터는 그는 40세가 되면 지리산, 50세에 지리산에 기반을 잡아 다양한 지역활동을 하고, 60세에 히말라야로 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터였다.
그래, 떠나자. 미련 없이 떠나자. 그래서 훌훌 떠난 게 지리산 하동 악양 형제봉 아래 자리 잡았다. 지리산에서 봄에는 녹차 만들고, 여름에는 매실 수확하고, 가을에는 감 따고, 겨울에는 곶감 만들고….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갔다. 정신 차려 돌아보니 벌써 50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가 됐다. 잊고 있던 히말라야가 문득 그에게 다가왔다.
티베트 초오유 가늘 길에 있는 호수와 어울린 초오유가 환상적인 절경을 보여준다. |
2011년 12월, 고교 동기가 전화를 했다. “히말라야 칼라파타르(5,550m) 가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살짝 고민을 하다, ‘그래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내친 김에 한 번 경험해보자’라고 결정했다. 이게 사전답사가 됐다.
칼라파타르 트레킹 도중 아웃도어 업체의 한 임원이 “히말라야 14좌(사진전)를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하고 제의했다.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하고 거절했다. 트레킹 끝나가는 시점에 다시 “그렇게 돌아다니지 않아요. 그냥 노신다고 생각하시면 되요”하고 건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시로 히말라야 생각이 났다. 그 임원의 제의가 머릿속에 가물거렸다. 그런데 그 임원이 바뀌었고, 그 자리에 온 새 임원은 연락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가물거렸지만 ‘그걸로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히말라야 제2봉인 K2가 그 명성답게 전형적인 악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2012년 5월 새 임원도 OK하고 그에게 연락이 왔다. 바로 승낙하고 3년의 장도에 올랐다. 그 장도는 그에게는 60세 즈음해서 히말라야로 떠나기 위한 사전 답사성격도 강했다. 총 7회에 걸친 ‘700일간의 히말라야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1년 12월21일부터 2012년 1월6일까지 에베레스트 칼라파트라와 촐라체, 2012년 5월30일부터 6월10일까지 안나푸르나, 2012년 6월29일부터 7월26일까지 K2․브로드피크․가셔브롬ⅠⅡ․낭가파르밧, 2012년 10월12일부터 11월3일까지 칸첸중가, 2012년 12월10일부터 2013년 1월7일까지 마나슬루와 다울라기리, 2013년 5월6일부터 5월27일까지 마칼루, 2013년 9월22일부터 2013년 10월14일까지 초오유와 시샤팡마, 2013년 12월6일부터 2013년 12월24일까지 에베레스트와 로체까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와 카라코룸 산맥을 두루 훑고 끝냈다.
히말라야 팅그리 평원에서 바라 본 초오유의 아침. 고요한 가운데 장엄한 모습이 잘 어울려 있다. |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기 전과 갔다 온 후를 비교하면, 내 안에 있는 가꾸지 않은 원석을 조금씩 다듬고 깎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에서 읽었던, 책으로 봤던 인생과 삶의 의미를 경험적으로 느꼈던 것도 큰 소득이었습니다. 700일 간의 여정은 그러한 과정에서 나온 한 걸음이었고, 잠시의 시간이 쭉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히말라야는 한편으로는 내 안의 있는 ‘내면의 산’이었습니다.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나의 진실, 아니 내 안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찾았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히말라야’를 물으면 ‘난 히말라야를 잘 모른다’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사진에는 ‘히말라야는 없고 이창수는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히말라야는 저 자신의 ‘내면의 산’이라는 겁니다.”
고쿄리 가는 길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고봉준령들. |
깊고 깊은 인생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간 구도자적인 화두로 히말라야 14좌를 마친 소감을 말했다. 사진작가 이창수씨가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 촬영한 14좌 사진전을 오는 6월26일부터 8월11일까지 45일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다. 전문 사진작가가 3년여 동안 히말라야를 오가며 촬영한 히말라야 14좌 사진전은 처음이다.
짧게는 보름여 간, 길게는 한 달 가량 히말라야에 머물면서 많은 고비도 있었다. 말이 베이스캠프지, 그곳도 5000m 내외여서 심각한 고소증세를 겪을 수 있다.
마칼루 가는 길에도 설산으로 뒤덮여 있다. |
처음 출발 땐 의욕적으로 갔다. ‘사진도 많이 찍고 남이 갖지 못하는 다양한 모습을 렌즈에 담아야지’하고. 적어도 K2 베이스캠프 갈 때 가지는 그랬다. K2가 분수령이었다. 오를 때까지 의식적으로 사진 찍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 순간 걷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수록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이 사라졌다. 단지 살기 위해 걸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곤도고라패스라는 설산을 넘을 때였다. 해가 뜨면 눈이 녹아 위험하기 때문에 해 뜨기 전에 열심히 걸어야 했다. 밤 10시쯤 출발했다.
마나슬루 가는 길. |
밤새 5000여m 설산을 넘으며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다. 양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천길 낭떠러지였다. 무조건 걸어야 산다. 정말 죽어라 걸었다. 춥기는 얼마나 추운지.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눈에 미끄러지고, 쳐박히고…. 죽지 않기 위해선 잡아야 하고, 발이 땅에 닿아야 한다는 사실만 알면 되는 그런 곳이었다.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사진 찍을 엄두조차 못 냈다. 문득 다가오는 대장관의 장면, 바로 그런 곳에만 집중해서 렌즈에 담았다. K2를 갔다 온 후 ‘아, 의도적으로 찍으려고 하는 것보다 다가오는 장면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고봉 설산이 욕심을 내려놓게 하는 순간과도 같았다.
여자 셰르파가 짐을 이고 마칼루 베이스캠프로 가고 있다. |
“산의 내면을 바라보며 대장관을 렌즈에 담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었어요. 그게 히말라야를 걸으며 내 자신을 더욱 찾게 된 계기가 됐고, 시간을 완성하는 순간이었던 겁니다. 잠시의 시간이 쭉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K2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야경이 환상적이다. |
그래서 전시회도 4부로 구성했다.
1부는 히말라야 14개 봉우리의 장관을 담은 장면들이다. 제목은 ‘영원한 찰나’. 찰나가 영원하고, 영원한 것도 찰나라는 알쏭달쏭한 의미다. 곧 ‘영원한 것도 없고, 일시적인 것도 없다’라는 개념과도 통한다. 인간을 위압하는 자연의 대장관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2부는 ‘한 걸음의 숨결’이란 제목으로 거대한 자연에 다가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꾸준히 자연에 다가가고, 그 자연에 다가가는 모습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의미다.
3부는 히말라야 고봉들을 날아다니는 새 사진 위주로 구성됐다. 히말라야에서 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의미가 크다. 제목은 ‘신에게로’로 정했다.
4부는 ‘신의 은총이 당신에게’라는 뜻의 네팔 말인 ‘나마스테’다. 히말라야 자락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어떻게 보면 신(神)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마칼루 베이스 캠프에서 바라본 마칼루의 웅장한 모습. |
그의 앞으로의 삶도 궁금했다. 과연 그가 계획했던 대로 60대에 들어서 히말라야로 떠날지….
“마누라와 30여년 같이 살았으니, 많이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부관계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며, 마누라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면 된다고 봅니다. 히말라야 트레킹도 잠시 시간을 내어 같이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맛을 봤으니 같이 가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내 혼자라도 계획했던 대로 갈 것입니다.”
몇 년 뒤 그를 보려면 현재 살고 있는 지리산이 아니라 히말라야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그는 그만큼 계획을 세우면 열정을 갖고 좌고우면 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마나슬루 가는 길에서 만난 네팔 현지인들이 평화롭게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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