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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면 내 대통령 덕, 안되면 네 대통령 탓

화이트보스 2014. 5. 23. 10:17

잘되면 내 대통령 덕, 안되면 네 대통령 탓

  • 권대열 블로그
    정치부 차장
    E-mail : dykwon@chosun.com
    법원·검찰·외교통상부·민주당·새누리당·청와대 등 딱딱한 출입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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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5.23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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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대열 정치부 차장
    권대열 정치부 차장
    야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연일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보여준 것"이라며 박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맞다. 정부가 참 무능했다. 해양경찰청도 안전행정부도, 총리실도 청와대도, 어디 한 군데 잘한 곳이 없다.

    그렇다고 이걸 "박 대통령이 사람의 가치를 무시해서 생긴 일" "박근혜 정부에서 '박피아(박근혜 마피아)'들을 임명한 때문"이라고 연결하는 건 지나치다. 야당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도 끌어들이고 있다. "2009년에 해운법 시행규칙을 바꿔서 여객선 운용 가능 선령(船齡)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기 때문에 20년이 다 된 세월호가 수입됐고, 그러니 '이명박 책임'"이라는 거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끌어내리려는 정치판 사람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는 전·현직 대통령들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건 그만했으면 싶다. 그런 식으로 따져보자. 청해진해운과 같은 내항(內港) 여객운송사업자에게 안전관리체제 수립·시행 의무를 면제시켜준 건 김대중 정부 때 일이다. 이 때문에 세월호 운영자 같은 업주들이 안전 대책을 대충 해도 됐다. 또 국제안전관리규약 규정을 국내 연안여객선에도 2003년부터 적용하려고 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2002년 10월에 포기했다. 이 준비를 맡았던 주무 부처가 해양수산부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준비 기간 중에 장관으로 있었다. 선원들 부담을 줄여준다며 안전교육·구명정 교육 의무 등을 사실상 면제시켜준 것도 노무현 정부 때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생겼다"고 비난한다면 수긍할 수 있겠나.

    물론 전·현 정권을 면책시켜 주자는 건 아니다. 그들 스스로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이 정권도 잘한 건 전부 자기들이 잘해서라고 하고, 못한 건 지난 정권이나 반대 세력에게 떠넘겼다. 올 신년보고 때 안전행정부가 "박근혜 정부 1년간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사망자 10명이 넘는 사고가 없었다"며 자화자찬한 게 대표적이다. 엄청난 착각이기도 했지만, 설사 그렇게 우리 사회의 안전이 좋아졌더라도 그게 어디 고작 1년 된 정권이 잘해서였겠나.

    박근혜 대통령은 며칠 전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했다. 우리가 처음 해외에 수출한 한국형 원자로 때문이었다. 청와대는 "원전 분야의 고급 인력 진출과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 3건의 협력 양해각서도 체결하고,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등 선전을 했다. "지난 정부의 공(功)이 컸다"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UAE 원전 수주는 혼자 잘해서 된 게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처음으로 국무총리·국방장관·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잇따라 파견해 안보·경제 협력 토대를 만들었다. 2006년에는 노 대통령이 수교 후 처음으로 직접 방문해서 에너지·안보·건설 등에 대한 기본적인 양해각서들을 체결했다. 그런 바탕이 없었으면 원전 수출이나 특전부대 파견은 어려웠을 거다.

    잘된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다 함께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늘 '잘된 건 내 덕, 안된 건 네 탓'이다. 손해 본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현 청와대부터 악습(惡習) 대신 미덕(美德)을 보여줬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