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빚은 장관. 미국 서부의 협곡을 마주한 사람은 누구나 이토록 뻔하고 진부한 수사를 입에 담는다. 무신론자라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다. 20억 년 전부터 모래가 쌓이고 바위가 깎이고 땅이 뒤틀려 만들어진 풍경은 그만큼 비현실적이다. 어떤 신비한 기운이라도 흐르는 걸까. 이 땅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부터 성지로 여겨졌다. 인디언들은 이 땅을 지키겠다고 피 흘리며 싸웠고, 뉴욕주에서 창시된 모르몬교(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가 이 일대를 본거지 삼아 부흥했다. 지금은 전 세계인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며 끊임없이 모여든다. 자동차를 몰고 미국 유타주와 애리조나주 일대 협곡을 헤집고 다녔다. 엿새에 걸친 드라이브 여행은 피곤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한국에 잘 알려진 그랜드 캐니언은 빼고 아치스 국립공원·모뉴먼트 밸리·앤털로프 캐니언 등 아직 한국에 낯선 지역을 돌아다녔다. 아치 모양의 모래바위가 있는가 하면, 벙어리장갑 모양의 바위산도 있었다. 순백의 설산과 벌겋게 달아오른 사막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경이(驚異)롭다기보다 ‘경외(敬畏)로운’ 풍광이었다. 브라이스 캐니언에서 만난 한 네덜란드인이 웃으며 말했다. “미국은 정말 엄청난 나라인 것 같아요. 운전할 때 미치도록 따분한 것만 참을 수 있다면요.” 그녀는 세 달째 혼자 자동차로 미국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핸들을 번갈아 잡을 수 있는 동반자, 그리고 질리지 않는 음악만 있다면 생애 한번쯤은 직접 핸들을 잡고 미국의 협곡으로 향할 일이다. 지구의 태곳적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협곡지대가 펼쳐진 유타와 애리조나를 여행하기 전에 알아야 할 단어가 있다. 바로 인디언과 모르몬(Mormon)이다. 이 땅은 유럽에서 백인이 넘어오기 전까지 인디언, 즉 아메리카 원주민의 터전이었다. 19세기 들어 이 일대를 접수한 건 모르몬교(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였다. 뉴욕주에서 건너온 모르몬교는 유타를 본거지로 삼았다. 유타주는 지금도 인구의 약 60%가 모르몬교도이어서 ‘모르몬주’라 불리기도 한다.
첫 목적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262㎞ 떨어진 자이언 캐니언(Zion Canyon)이었다. 19세기 중반 모르몬교도가 처음 발견해 ‘신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협곡이다. 다른 협곡에 비해 극적인 멋은 덜하지만 협곡 사이를 자동차로 달릴 수 있었다. 누르락붉으락 V자 형태로 깎인 암산의 풍모는 화라도 난 것처럼 위압적이었다.
자이언 캐니언에서 135㎞를 달려 브라이스(Bryce) 국립공원에 닿았다. 모르몬교도 애버니즈 브라이스가 발견해 그의 이름을 붙였다. 브라이스 캐니언에서는 퇴적·융기·풍화 등 교과서에서나 봤던 지질학 용어가 눈앞에 펼쳐졌다. 억겁의 세월 동안 쌓인 모래 중에서 단단한 부분만 남아 후두(Hoodoo)라고 하는 탑 모양을 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보니 수백만 개의 돌탑이 서 있는 모습이 도미노 패를 이리저리 줄지어 세워놓은 것 같았다.
저 신비한 풍광을 멀찍이서만 보고 돌아설 수 없어 협곡을 들어갔다가 나오는 나바호(Navajo) 트레일을 걸었다. 2㎞ 남짓한 길이었지만 해발 2500m 위에 있어 숨이 턱턱 막혔다. 아찔한 낭떠러지를 끼고 돌들의 전시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아치스 국립공원에는 바람과 물이 깎아 만든 아치(Arch)가 2000개 이상 널려 있다. 아득한 옛날 콜로라도 고원에 고여 있던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생겨난 것들이다. 모양에 따라 더블 아치, 야자수 아치, 부러진 아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수많은 아치 중에서도 유타를 상징하는 델리키트 아치(Delicate Arch)를 찾아갔다. 유타주의 자동차 번호판이나 우표에 등장하는 친숙한 녀석이다. 델리키트 아치를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주차장과 가까운 전망대에서 멀찍이 바라보거나, 4.8㎞ 길이의 트레일을 걸어 바로 앞까지 가보는 것이다. 전망대에서는 동글동글한 암석이 아치와 함께 도열한 고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억 년 전의 물과 바람이 체스 게임을 하다가 간 듯했다.
델리키트 아치로 가는 트레일에는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메마른 사막 기후이지만 길섶에 야생화가 피어 있었고, 아이들이 토끼와 도마뱀이 출몰할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아치에 다다랐다. 파리의 개선문이 이토록 웅장할까. 전망대에서 봤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기기묘묘한 자태였다. 20m 높이의 아치 밑까지 가봤다. 부러질 듯이 위태해 보였다. 국립공원 측은 더 이상의 풍화를 막기 위해 아치 곳곳에 플라스틱 코팅을 했다고 한다. 정말 감쪽같았다.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놓쳐선 안 될 게 또 있다. 인디언이 곳곳에 그려놓은 벽화다. 수천 년 전부터 이 땅에 살던 인디언의 흔적이 그려져 있었다.

모뉴먼트 밸리는 국립공원이 아니다. 나바호 부족공원이다. 미국 정부가 원주민을 배려한 것 같지만 사연을 알면 슬프다. 1863년 나바호족은 미국에 땅을 뺏기고 500㎞ 거리의 뉴멕시코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5년 뒤 미국 정부는 나바호족에게 사과하고 고향 복귀를 허락했다. 이후 나바호족은 ‘나바호국’이란 반(半)자치정부를 세웠고 대통령도 뽑고 있다. 하나 꼭 세 들어 사는 모양새다. 공원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조악한 공예품을 파는 그들에게서 150년 전 이 땅을 호령했던 선조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모뉴먼트 밸리가 나바호족의 성지라는 건 협곡에 진입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벙어리장갑 모양의 거대한 바위산 세 개가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스타워즈’에서 봤던 우주선이 바위산 사이로 날아다닐 것 같았다. 공원 안쪽에 난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로 차를 몰았다. 사막 위를 흙먼지 휘날리며 달리니 황야의 무법자라도 된 듯했다. 종종 말을 타고 질주하는 나바호족도 보였다. 영화가 현실이 되는 풍경이었다.
해질 무렵 나바호족이 운영하는 전망대 식당으로 갔다. 해가 기울면서 시시각각 다른 색 옷으로 갈아입던 바위산은 이내 태양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식당의 음식 맛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메뉴가 흥미로웠다. ‘나바호 타코’ ‘클린트 이스트우드 치킨’, 이런 식이었다. 술은 없었다. 맥주가 있었지만 알코올이 0%였다. 나바호족이 가장 신성시하는 성지여서라고 했다.

앤털로프 캐니언은 나바호족이 운영하는 관람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한다. 1997년 일어난 홍수에 관광객 11명이 협곡에 갇혀 몰사한 뒤부터다. 앤털로프 캐니언이 지금껏 봐온 협곡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퇴적과 침식, 여기까진 같은데 지금도 여름마다 홍수가 나 독특한 풍광이 연출된다.
다국적 관광객과 트럭을 타고 협곡으로 갔다. 협곡 2개 중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위쪽 코스를 택했다. 폭 3m, 높이 30m의 협곡은 천장이 열린 동굴 같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빙하에 균열이 생긴 크레바스를 닮았다. 협곡 안쪽으로 들어서자 사방이 화려한 물결 무늬로 반짝였다. 방금 파도가 일렁이고 지나간 듯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머리 위 좁은 바위 틈에서 햇볕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4~9월 정오 즈음에만 볼 수 있다는 기막힌 광경이었다.



글·사진=최승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