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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룡 버려야 박 대통령이 산다

화이트보스 2014. 7. 11. 18:07

조자룡 버려야 박 대통령이 산다

기사입력 2014-07-11 03:00:00 기사수정 2014-07-11 03:00:00

박성원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자룡을 첫사랑으로 꼽았다. 조자룡은 유비의 아들을 품에 안고 난관을 뚫어 구해낸 인물로 의리의 표상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아버지 대통령 시절 법률비서관을 지냈고 변함없이 믿고 의지한 김기춘 비서실장이 조자룡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 김 실장이 어제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에 출석해 뭇매를 맞는 동안 박 대통령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침몰 직후 박 대통령은 서면보고와 유선보고 외에는 7시간 동안 아무런 대면보고도 못 받고 회의도 주재한 게 없었다. ‘김기춘 청와대’는 위기관리뿐 아니라 정무 민심 의전 경호에서도 실책을 거듭했다.

진도실내체육관과 안산 희생자합동분향소를 찾은 박 대통령은 무릎 꿇고 조속한 구조를 호소하는 세월호 가족에게 눈높이를 맞춘 사과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번번이 타이밍을 놓쳤다. 진도에서 가짜 유가족이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에게 근접해 사회를 본 것이나, 안산에서 일반 조문객 할머니를 유가족으로 알고 대통령에 근접시켜 “연출이 아니냐”는 논란이 생긴 것도 중대한 의전 경호 실패다. 두 번 다 김 실장이 직접 근접보좌를 한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김 실장은 그동안 빈틈없는 일처리와 청와대의 복무기강 확립으로 박 대통령의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세월호 정국과 잇단 인사 참사에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 한가운데 김 실장이 버티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조자룡이 어느덧 ‘조자룡의 헌 칼’이 돼버린 셈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김 실장이 간언(諫言)을 서슴지 않은 당태종의 충신 위징일지 몰라도 밖에서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소통을 막고 있는 일종의 방화벽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던 정홍원 국무총리도 후임을 구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원위치시켰다. 세월호 대처 혼선과 두 차례의 총리후보자 낙마로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 비서실장까지 유임시킨다면 국민은 누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참고로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한 홍명보 감독은 어제 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그런데도 김 실장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하다. 여권의 한 원로는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김 실장 빼고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있다면 권영세 주중대사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국민은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이 달라져야 한다던 박 대통령이 어떤 변모를 보여줄지 주시하고 있다. 7·14전당대회에서 새롭게 출범할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 차원에서도 청와대가 상전 노릇을 한다는 소리를 들은 당청(黨靑) 관계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2008년 부경대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나를 버릴 때 정치는 권력투쟁 이상의 것이 되고 비워진 그릇에 국가와 국민을 채울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노자(老子)의 말을 원용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마음으로 무디어져가는 국가 개조의 칼날을 새롭게 벼릴 때가 아닐까 싶다.

김 실장은 공직에서 물러나 쉴 때도 자택 안방에서 2층 서재로 정시에 출근할 정도로 자기절제가 분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조사특위의 청와대 기관보고가 이뤄지고 2기 내각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까지 마친 이때야말로 혼란했던 세월호 정국의 한 매듭을 짓고 김 실장도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는 적기(適期)라는 생각이다. 비서실장 교체에는 인사청문회가 필요 없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