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라서 더 걱정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입력 2014-08-09 03:00:00 수정 2014-08-09 03:00:00

권력에 대한 집착과 성취욕이 강한 정치 지도자들도 그 나이 땐 미약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은 육군 대위였다. 김영삼은 3대 민의원 선거에서 28세로 당선된 초선 국회의원이었고, 김대중은 같은 선거에서 후보 10명 중 5등으로 떨어졌다.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 극동군 제88국제여단의 대위였다. 1945년 10월 평양에서 ‘김일성 장군’으로 소개됐을 때가 33세였다. 김정일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었으나 후계자로 확정된 것은 38세인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 때였다.
새삼 서른 살 얘기를 꺼낸 것은 북의 지도자 김정은 때문이다. 1984년 1월 8일생인 그는 노동당 제1비서 및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다. 삼대(三代) 세습의 결과라지만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영도자’로 견고히 자리를 굳힌 과정을 보면 결코 나이로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그가 공포의 숙청으로 고위 간부들을 납작 엎드리게 만든 데는 ‘백두 혈통’이라는 점이 큰 힘이 됐을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신이 통치자는 금으로, 보조자는 은으로, 농부와 장인은 쇠와 구리를 섞어 만들었다며 계급을 분류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를 거짓말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플라톤은 두 세대가 지나면 신화에 대한 신앙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옳았다”고 평했다. 일본의 천황제를 예로 들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게 항일운동을 벌인 김일성 신화일 듯하다.
김일성, 김정일 사망 때마다 제기됐던 북한붕괴론이 모두 빗나간 것은 북 체제의 응집력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친 세뇌로 김씨 일가를 신처럼 받드는 북 주민들이 근거 없는 신화(myth)에서 깨어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종신 권력을 쥔 김정은의 남북관계 시간표는 이제 임기가 3년 반 남은 박근혜 대통령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언젠가는 조부 때부터의 유업인 적화통일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격세유전(隔世遺傳)이 맞는다면 38세 때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호전성을 물려받았을 수도 있다. 여건이 무르익을 결정적 시기를 기다릴 시간도 그에겐 충분하다. 이제 서른인 그가 지금 가진 것을 평생 지키는 데 만족하며 살 리 만무하다.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빌고, 9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북 선수단이 참가하는 것이 박 대통령으로선 임기 중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핵무기를 가진 김정은이 혈기에 넘쳐 위험한 모험을 하지 않게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진지한 대화를 제안했으면 한다. 광복절 경축사가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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