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29 03:00
[하젤로프 獨작센안할트州 총리]
"같은 민족은 결국 함께 살게돼… 통일 비용 너무 걱정 말길… 獨도 수십억 유로 지원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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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하젤로프 작센안할트주(州) 주총리가 본지 인터뷰에서 “같은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은 새로운 발전의 기회이자 역사적 운명”이라며 “통일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지금의 북한과 같은 구(舊)사회주의 동독에 속했던 독일 작센안할트주(州)의 라이너 하젤로프(60) 주총리가 한국을 방문해 28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젤로프 주총리는 한국유럽학회와 콘라드아데나워재단이 25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주최한 '독일통일 25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동독 출신인 하젤로프 주총리는 "한국에 와 보니 한국인들이 '통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이 느껴졌다"면서 "부국(富國) 독일이라고 해서 혼자 통일을 이룬 게 아니다. 통일 이후 주변국에서 수십억유로를 지원받았다. 한국도 그런 행운이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은 유럽연합(EU)이 역내 균형 발전을 위해 조성한 기금을 통해 옛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1994~2013년 총 783억유로(약 104조원)를 지원받았다.
하젤로프 주총리는 한반도 통일은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지리적·경제적 중심이 될 기회라고 했다. 한국이 그간 미진했던 영역을 강화하고, 기존 산업 구조를 재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센안할트는 반경 1900㎞ 내 유럽 주요 도시가 위치한다는 지리적 이점과 새로운 인프라를 기반으로 물류의 중심이 됐다"며 "'육지의 섬'이었던 한국도 통일 이후 대륙과 육로로 연결되면 중국·유럽과 교류가 늘고 동북아시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젤로프는 "현재 동독은 서독 경제의 80%를 따라잡았다"며 북한의 성장 전략도 조언했다. 그는 "작센안할트는 통일 이후 서독이 주도하는 산업 대신 비교우위를 갖고 있던 화학·기계부품·신재생에너지 등에 투자했다"며 "대형 콤비나트(동독 시절 종합 기업)도 서독 기업에 맞설 수 있는 대기업으로 키우지 않고 작은 회사들로 쪼개 경쟁력 유무를 판단했다"고 했다. 자본주의·민영화 개혁으로 실업률이 20%까지 올라갔지만, 꾸준히 재교육과 고용을 연계한 실업보험을 실시했다. 도로·공항 등 낙후한 인프라에도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 새로 정비했다.
그 결과 전국 평균의 60%에 그쳤던 작센안할트의 노동 생산성은 현재 기계산업 등 분야에서 옛 서독 지역을 앞지르고 있다. 그는 "실업률도 한 자리대로 떨어졌다"며 "최근에는 동독 출신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했다. 새 인프라 덕에 최근 수년간 유치한 외자만 30억유로(약 4조원)에 이른다. 국내 한화그룹도 이 지역의 태양광 기업 '큐셀'을 인수했다.
하젤로프 주총리는 "냉전으로 분단됐던 한국과 독일은 공통점이 많다"면서 차이도 지적했다. 그는 "독일 통일은 1980년대 동독 전역에서 주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통해 공산 정권을 무너뜨린 덕분에 가능했다. 일부에서만 민주화 요구 시위가 일어났다면 오히려 중국의 톈안먼 사태처럼 진압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 북한에서 이 같은 대규모 보텀업(bottom-up·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기대하기도 힘들다"며 "한국은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 지도부를 바꿔나가는 톱다운(top-down·위에서 내려오는) 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