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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기부양책에 정치권이 조용한 이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지도에 없는 길 가

화이트보스 2014. 10. 16. 13:41

지도에 없는 길 가겠다" 선언 뒤 산적한 현안 정면 돌파[중앙일보] 입력 2014.10.16 00:05 / 수정 2014.10.16 08:58

언론·정계 풍부한 경험, 업무력 발판
직원들 "정책 뒤쫓느라 눈 핑핑 돌아"
국회서 잠자는 민생법안들 걸림돌
노사정 대타협, 규제 완화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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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뚝심과 정면돌파’

 정치인이자 한국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선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스타일을 지인들은 이렇게 묘사했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좌고우면 하는 법이 없다. 어지간한 주변 견제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맷집도 세다. 지난 7월 16일 경제부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내놓은 정책 카드가 그렇다. 가계부채에 기름을 붓는다는 우려로 거론조차 금기시됐던 주택대출 규제는 “한여름에 겨울 옷”이라는 한 마디로 풀어버렸다. 그러고선 41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시작으로 매주 굵직한 대책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기업이익환류세제와 담뱃값 인상 같은 깜짝 카드가 줄을 이었다. 내년에는 정부지출을 5.7% 확대하는 공격적 재정정책도 내놓았다. 최경환호에 올라 탄 기재부 간부들은 “부총리가 쏟아내는 정책 아이디어들을 뒤쫓아가느라 눈이 핑핑 돈다”고 말했다.

 독불장군에겐 적이 많을 법한데 불도저 같은 그의 경기부양 드라이브에 적어도 정부 안에선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는다. 끈끈한 사람 관리가 비결이다. 그는 한 번 맺은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동창회부터 각별히 챙긴다. 경산중 21회 동창회 활동에도 공을 들인 그는 지난해까지 2년 간 대구고 재경동창회장을 맡았다. 미 위스콘신대 한국 총동창회장이기도 하다. 위스콘신대 동문인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윤상직 지식경제부 장관이 그의 우군이다.

 대학 입학동기인 신동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환이는) 굉장히 융통성이 있는 친구여서 주위에 늘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니 주변에 큰 적(敵)이 없고 부총리까지 올라간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세대·행시 동기인 이희수 전 세제실장은 “매사에 적극적이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주로 경청하는 것도 사람들이 따르는 비결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그를 행정관으로 데리고 있었던 김인호 전 경제수석은 “사무관 때부터 봤는데 전문가로서의 면모 못지 않게 돌쇠와 같은 뚝심이 강점”이라며 ‘최뚝심’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이 순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는 1979년 행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기획예산처(현재 기획재정부의 예산실+공공정책국+재정관리국) 산하 예산청 법무담당관을 끝으로 옷을 벗었던 1999년만 해도 그는 기재부 내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도전을 겁내지 않은 그의 뚝심이 빛을 발했다. 위스콘신대 유학을 거쳐 언론사(한국경제) 논설위원으로도 변신했다. 위스콘신대서 함께 공부한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공무원들은 으레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최 부총리는 박사 과정에 진학해 정말 열정적으로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언론사에서도 기자 동료들과 밤새 토론하고 칼럼으로 시장 자율을 해치는 정부 규제를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정계에 진출해서는 3선 의원이 된 끝에 여당의 안주인인 원내대표까지 됐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은 “지역구에 출마해 밑바닥에서부터 파고 든 결과”라고 말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제특보를 맡아 정계에 입문한 것도 언론과 국회에서 두루 경제 전문가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다. 친박계였음에도 이명박 정부에서 그를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전 대통령은 “시원시원하다”며 그의 일처리 솜씨를 칭찬했다. 당시 지식경제부 공무원들은 “(최경환이) 부처협의, 국회· 언론 관계를 꿰뚫고 있으니까 업무가 팽팽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도저 같은 그의 저돌성은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도 했다. 그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가 2006년 ‘먹튀’ 논란을 일으키자 저격수를 자처했다. 이재오·나경원 의원과 함께 ‘외환은행 매각 중단조치 촉구 결의안’을 내며 론스타를 맹공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이 정치자금을 받았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런데 뇌물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변양호 신드롬(론스타 매각을 주도한 옛 재정경제부 국장으로 나중에 외환은행 헐값 매각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려나 논란 소지가 있는 일은 무조건 덮고 보자는 공무원 보신주의를 낳았다)’만 불렀다는 지적을 받는다.

 옛 기획원의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데다 정치인이란 경력은 정책을 만들 때도 기존 정석에 얽매이지 않게 했다. 기업이익 환류세제가 대표적이다. 기업에 쌓인 현금을 가계로 흘려 보내 내수를 살리자는 게 이 정책의 골자다. 박정희 정부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 공식은 수출·기업이 주도하는 모델이었다. 가계의 저축과 외자를 기업에 몰아주면 기업은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고 일자리를 만들어 가계에 소득을 돌려주는 선순환 방정식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수출로 달러를 벌어들인 기업이 투자나 배당·임금으로 현금을 흘려 보내지 않으면서다. 최 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들고나온 기업이익환류세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있다. 현재로선 배당·임금으로 돈을 쓸 수 있는 건 대기업뿐이다. 배당·임금을 늘려봐야 서민 주머니로 현금이 흘러 들어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자칫 미래 먹거리 투자를 위해 비축해둔 기업의 ‘실탄’만 허비하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취임 직후 거침 없었던 그의 태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3개월 전 취임사에서 “국민이 체감할 정도로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경제 활성화의 핵심 카드로 내세운 가계소득 증대는 아직 어디에서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대출규제 완화의 부작용이 먼저 나타나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제·민생 법안 대다수는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가시밭길 위에 사면초가만 들려오는 형국이다. 그도 최근 들어선 답답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그가 ‘성장 무기력증(hysteresis)’과 ‘소심증의 함정(timidity trap)’을 거론한 이유다. 한국은행이 역대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로 지원사격을 했는데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못하면 최경환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 그는 구조개혁 카드를 만지고 있다. 핵심은 노사정 대타협과 서비스업 규제 완화다. 노사정 이슈는 스웨덴·독일·네덜란드처럼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활성화 대책이 ‘도루묵’이라는 생각에서다. 둘째는 서비스업 규제 완화다. 그는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쓰는 것도 내수”라며 “국내인이 쓸 여력 없다면 외국인이 와서 마음껏 쓰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마저도 국회 협조 없이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 승부사 최경환의 진정한 시험대가 지금부터 펼쳐지고 있는 이유다.

김동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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