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최혁 주필의 숨겨진 역사 찾기>

화이트보스 2014. 11. 3. 10:37

최혁 주필의 숨겨진 역사 찾기>"한반도의 아들들, 나라위한 풍운 불게 모이자"
14.네브라스카 헤이스팅스의 한인소년병학교(中)

최혁  |  hchoi@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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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2  16: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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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민보등에 권고문, 소년병학교 입학 호소
입학생 늘자 헤이스팅스 대 각종 혜택 제공
지역 행사에 초청돼 각개교련 시범보이기도

 

   
▲ 한인소년병학교 야구반헤이스팅스 대학에 있었던 한인소년병학교의 야구반. 맨 뒷줄 가운데가 박용만 선생이다. 우측에서 세번째가 정희원이다. 두번째줄 우측 첫번째가 유한양행을 세운 유일한 박사이다. 정희원은 소년병학교를 졸업한 뒤 와이오밍주 슈피리어 탄광으로 건너가서 한인광부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

1911년 여름학기, 헤이스팅스 소년병학교에 입학한 학생수는 무려 44명에 달했다. 학생 수가 크게 늘자 헤이스팅스 대학에서도 소년병학교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 대학 측은 소년병학교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경우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여주었다. 소년병학교에서 받은 군사훈련을 인정해 군사학과목 이수를 제외하는 특혜를 베풀기도 했다.

헤이스팅스 소년병학교 학생들은 네브라스카 미국사회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헤이스팅스에서 처음으로 열린 비행기 시범비행에서는 소년병학교 학생들이 초대돼 각개교련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1912년 6월 네 번째 하기훈련에는 34명이, 1913년의 다섯 번째 학기에는 30여명이, 1914년에는 20명이 입학했다.

박용만 등은 신한민보 등을 통해 미국 내 한인 노동자들에게 소년병 학교에 입학하기를 권유했다. 신한민보 1914년 3월 5일자(제 313호 3면) 신문에는 리종열씨가 기고한 ‘소년병 학교 학도되기를 권고함’이라는 글이 실려있는데 소년병학교 설립과 운영취지가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신문이나 혹 잡지 상으로 보던지 전한 말로 듣던지 하와이와 미주에 거류하는 형제들은 나와 너를 물론하고 여러 천명의 입이 한결같이 말하되 원수를 물리치고 어육에 든 동포들을 구원하자 속박을 벗고 자유를 회복하자 하나니 그러면 뜻 있는 자 반드시 일을 이루는 법이라.

대저 한사람의 원하는 바도 성공하기를 기약하거늘 하물며 2천만 인구가 함께 원하는 일이면 되지 않을 리가 있으리요. 그러나 성사하기를 기약할 때에 불가불 그 일의 밟아 나가는 방향은 있을지라.

   
▲ 헤이스팅스 대학교정의 이승만과 한인학생들 1910년 이승만은 헤이스팅스를 방문해 한인소년병학교 학생들을 격려했다. 오른쪽 세번째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하기전 이곳에 들러 2주동안 머물렀다. 이박사는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박용만 선생의 무장투쟁론을 반박하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무슨 능력으로 원수를 물리치고 동포를 구원하며 무슨 방법으로써 속박을 벗고 자유를 회복코자 하나뇨. 이와 같이 말함은 남의 경중을 시험코자 함이 아니라 이 사람이 비록 몽매하나 만일 좋은 일 하는 마당이면 울혼자(鬱魂者)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바이며 어리석은 소견도 밝음을 얻고자 함이로다.

이등박문의 악한 혼은 안 의사(義士)의 날쌘 칼에 슬피 울며 돌아가고 스티븐슨의 간사한 머리는 장 장군의 총소리에 떨어진지 벌써 5, 6년이 되었도다. 반갑다, 이 때여. 이제는 한사람이 대적할 때가 아니요 이천만명을 대적할 때가 분명하도다.

어찌 장부의 기운을 시험할 날이 아니리요. 정치적 외교적 종교 적은 더욱이 무한히 좋거니와 우리의 먼저 일은 활동하는 기백과 무예 적 정신으로 저들과 죽고 살기를 내기 할 것 뿐이라 하노라.

어찌 구구한 생명을 아껴 속절없이 초록과 함께 썩기를 즐겨하며 조국을 위하여 한번 죽기를 사양하리오. 그러면 이 몸의 죽는 것이 값이 있도록 예비해야 할지어다. 아시는 바와 같이 네브라스카의 소년병 학교는 이를 위하여 설립한 바이며 기십 명 학생들도 이를 위하여 연습함이라. 어찌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니리요.

대저 이 넓디넓은 육대주 지구상에 태극기를 높이 달고 총과 칼로 경례하는 곳이 어디 또 있으며 한반도의 아들 큰 풍운을 한번 불고자 하는 남자들이 모인 곳이 몇 곳이나 되나뇨.아 아! 소년 남자들아 우리 대한국 소년들아 소년병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하느냐. 어서 바삐 금년 6월 15일 소년병 학교 개학을 하는 날에 입학예비하기를 축원하노라.

작년 여름에 야외연습을 나갔다가 밤중에 칼을 잡고 군막을 순행할 때에 달빛은 물결을 희롱하며 청결함을 자랑하고 초목은 잠든 듯이 새소리도 적막한 데 홀로 풀방석에 비켜 앉아 감개한 눈물을 금치 못하였노라.

어찌 감히 수 삼십 명 군인을 양성하여 이천만 형제를 대신하여 어찌 능히 적은 수효의 군병으로 오천만의 연습한 강호 도적을 당하리요, 하던 마음이 오늘 흉거에 가득 쌓였도다. 누구시든지 만일 목적을 이로써 정하시면 직로의 먼 것도 관계가 아니요 못 먹고 헐벗기도 낙이 될지라.

다시 청하노니 형제들이여, 다른 더 좋은 방침이 있으면 이 사람도 따라 행코자 함이며 만일 없으면 한 곳에 같이 죽어 말가죽에 쌓여 한 구덩이에 묻히기를 감히 권고하나니…“

조국에 대한 사랑이 절절이 느껴지는 글이다. 힘을 길러 일본을 무찌르는데 목숨을 바치자는 결의가 곳곳에 가득하다. 이런 기개와 결의는 한인소년병학교 군가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헤이스팅스 교정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대한인의 독립투쟁을 불태우던 한인소년병 학생들의 함성이 금방이라도 들리는 듯싶다.

   
▲ 헤이스팅스 대학교정한인소년병 학교 이 건물을 중심으로 해서 학생들은 각개교련 등 군사훈련을 받았다. 한인들은 이 근처 건물에서 국기게양식과 하기식을 갖기도 했다.
   
▲ 헤이스팅스 대학정문 곁의 최혁 주필 헤이스팅스 대학은 한국인들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지난 1949년 이대학 Johnson박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한인소년병학교 군가>

1.

이 몸 조선 국민되어

오늘 비로소 군대에 바쳐

군장 입고 담총하니

사나이 놀음 처음일세

2.

군인은 원래 나라의 번병(藩屛)

존망과 안위를 담당한 자

장수가 되나 군사가 되나

나의 직분 나 다할 것

3.

나팔소리 들릴 깨마다

곤한 잠을 쉬이 깨어

예령 돌령 부를 때마다

정신차려 활동하라

4.

우리 조련 이같이 함은

황천이 응당 아시리라

독립기 들고 북치는 노래

대장부 사업 이뿐일세



후렴

종군악(從軍樂) 종군악

청년 군가 높이 하라

사전년 영광 회복하고

이천만 동포 안녕토록

종군악 종군악

이 군가로 우리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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