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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

화이트보스 2015. 1. 14. 17:50

대통령의 말

  • 신정록 블로그
    논설위원실
    E-mail : jrshin@chosun.com
    1999년부터 정치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현재의 야당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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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1.1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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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돼 청와대 들어간 뒤로도 즉흥 연설을 즐겼다. 한번 발동 걸리면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A4 몇 십 장이나 되는 녹취록은 읽어내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거기 섞인 '깽판' '똥별' '군대에서 썩는다' 같은 거친 말이 읽는 호흡을 끊었다. 격정적이기도 해서 친형에게 인사 청탁한 어떤 기업인을 가리켜 "머리를 조아렸다"고 기자회견에서 비난했다. 이 기업인이 자살하는 바람에 그는 곤욕을 치렀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버릇 때문이었다. 처음에 "장사해봐서 아는데"라고 할 때는 신선했다. 그러다 점점 노점상, 철거민, 민주화 운동으로 범위를 넓혀가자 "도대체 안 해본 게 뭐냐"는 반응으로 기울었다. 전에 했던 말과 다르거나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어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미더움이 덜했다.

    [만물상] 대통령의 말
    ▶김영삼 대통령은 어처구니없는 말실수를 많이 했다. 일본의 초대형 정경 유착 사건 '리크루트 사건'을 '야쿠르트 사건'이라고 하는 식이었다. 다자간 무역 협상 '우루과이 라운드'를 '우루과이 사태'로 말하기도 했다. 말한 것을 받아 적으면 그대로 문장이 된다는 김대중 대통령과 대비된다고 했으나, 거꾸로 그런 것이 김영삼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취임 2년 만에 두 번째 일문일답 기자회견을 했다. 호기심 갖고 지켜보던 사람들 마음에 회견 내용을 떠나 몇 장면이 걸렸던 듯하다. 대통령은 동생 박지만씨에게 '비선(袐線) 국정 농단 자료'를 넘겨준 사람들을 겨냥해 "이간질해 어부지리 노린 사람들"이라 했다. 동생에 대해선 "이간질에 걸려든 것"이라며 "그런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유독 매섭게 경고했다. 장관들의 대면(對面) 보고가 필요하지 않으냐는 질문엔 장관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되물었다. 순간 총리·부총리·장관들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번졌다.

    ▶정치 지도자의 말은 정확하고 간결해야 하며 거기에 마음과 의지가 담겨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말에 품위까지 있으면 듣는 이를 즐겁게 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원래 달변가도 웅변가도 아니지만 '한번 말하면 지키는 것'이 자산이라고 해왔다. 그제 대통령 회견이 끝난 뒤 뭔가 개운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일부 용어 선택이 부적절하거나 거칠다는 지적도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