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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 10배 줘도 안 팔아... 예산만 풀어주면 제2 이정현 못 나올 이유 없당께"

화이트보스 2015. 1. 20. 11:21

"땅값 10배 줘도 안 팔아... 예산만 풀어주면 제2 이정현 못 나올 이유 없당께"

  •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E-mail : flatron2@chosun.com
    1982년 경남 진해의 어촌마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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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1.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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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5일 오후 1시경 찾아간 광주지하철 (광주)공항역에는 손님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런 지하철역도 있나 싶을 정도였다. 공항역은 광주공항과 300m가량 떨어진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광주공항 지하철역에서 보듯 광주도시철도공사와 광주공항은 2013년 기준으로 각각 364억원, 25억원의 적자를 냈다. 적자는 수년째 누적되는 중이다.

    오는 3월 호남고속철(용산~광주송정)이 개통되면 광주공항역과 광주공항의 사정은 악화될 것이 뻔하다. 호남고속철 개통으로 용산~광주 거리는 1시간33분대로 좁혀진다. 지금도 용산에서 광주송정까지 KTX가 투입되지만, 서대전 이남에서는 고속선이 아닌 일반선을 이용해 3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KTX가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와 별반 차이가 없어 상당수 승객은 비행기를 고집해 왔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광주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147만여명. 이 중 광주~김포(서울) 노선 이용객은 48만6000명에 달한다. 3분의 1에 달하는 잠재승객을 날릴 위기에 처한 셈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KR)의 한 관계자는 “광주공항은 호남고속철 시종착역인 광주송정역과 지하철 두 정거장으로 지척”이라며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광주공항은 대구공항과 비슷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광주발전연구원에 따르면, 대구공항은 2004년 KTX 개통 후 서울~대구 거리가 1시간50분대로 줄어들자 내륙노선 수요가 94% 급감했다. 광주광역시도 이를 전제로 광주 취항 항공사 측과 노선다변화 협의에 들어간 상태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반대로 호남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광주송정역 일대는 화색이 돈다. 광주송정역은 호남선, 경전선(慶全線), 광주선 세 개 노선이 만나는 광주의 대표 관문. 하지만 인근 광주공항으로 인해 주변 개발이 더뎠다. 고도제한 등 각종 규제에 걸리면서다. 지난 1월 5일 기자가 찾았을 때도 공군 전투기가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을 내뿜으며 수시로 뜨고 내렸다.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광주공항과 무안공항의 통폐합이 가속화될 것이고, 공항 이전과 함께 발전의 활로가 트일 것”이란 것이 광주송정역 일대 주민들의 기대다. 전남 무안공항은 위험한 목포공항과 소음피해가 큰 광주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3000억원을 들여 해안가에 지은 서남권 신(新)공항이다. 하지만 광주공항의 국제선만 무안으로 옮겨 가고, 국내선이 존치되면서 반쪽짜리 공항으로 남아있다.

    그 결과 고도제한이 계속되면서 광주송정역 앞은 ‘대표 관문’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낙후해졌다. 역 앞에는 허름한 단층 창고건물이 늘어서 있고, 이면도로에는 색주가(色酒家)들만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광주상무대가 전남 장성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군 장병들이 회포를 풀던 곳”이라며 “과거 화재사고로 성(性)매매 여성들이 불에 타죽고, 단속이 심해지면서 지금은 몇 개 업소만 영업 중”이라고 했다.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광주송정역은 기존의 광주역(광주 북구)을 능가하는 광주·전남 최대 교통허브가 된다. 지난 1월 5일 찾아간 광주송정역은 현재 영업 중인 임시 가건물 역사 북쪽으로 지상 4층의 번듯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광주송정역의 감리를 맡은 혜원까치종합건축의 한상진 감리단장은 “현재 공정률은 94%로, 오는 2월 9일 완공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실 광주는 향토기업인 금호고속(옛 광주고속)의 아성인 탓에 철도 이용이 덜했는데,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광주시민들도 철도 이용에 눈뜨게 될 것”이란 것이 한상진 단장의 말이다.

    광주송정역은 광주지하철 1호선과도 연결돼 있다. 지하철과 연계되지 않은 구도심의 광주역이나 광주종합터미널(유스퀘어)보다 연계교통이 편리하다. 현 임시역사 자리에는 쇼핑센터와 주차장 등을 갖춘 복합환승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광주광역시 정책기획관실의 한 관계자는 “시외버스 등을 광주송정역과 연계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광주송정역 일대 땅값도 꿈틀거린다. 광주송정역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호남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광주송정역 일대 지가가 10배는 올랐을 것”이라며 “이제는 3.3㎡당 1500만~2000만원을 준다고 해도 땅을 내놓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일대 개별공시지가는 3.3㎡당 500만~600만원대에 불과하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다른 공인중개사의 한 관계자는 “광주 송정리 출신 야구선수 선동열을 아느냐. 예부터 송정리(현 송정동)에는 ‘선(宣)씨들의 땅을 밟지 않으면 못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이 일대 허름한 창고들도 모두 선씨들 소유다. 광주송정역이 개발되면 역 앞을 예산을 들여 수용해 정비할 것이고 선씨들도 돈방석에 오를 것”이라고 부러워했다.

    이제는 광주송정역 일대의 정치 지형마저 뒤흔들 태세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광주송정역에서 열린 호남고속철 기공식 때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는데 박수 유도 등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호남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광주송정역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많이 달라졌다. 광주송정역 앞에서 만난 정모(62)씨는 “광주송정역에 복합환승센터까지 들어온다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예산만 확실히 투입해주면 광주에서도 (새누리당 국회의원) 이정현 같은 사람이 못 나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광주송정역 앞에는 오는 7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과 함께 새누리당이 걸어놓은 현수막도 나부끼고 있었다.

    사실 호남이 영남에 비해 발전이 더뎠던 것은 철도 탓이 컸다. 호남선이 개통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경부선(1904년)에 비해 10년이 늦었다. 그 결과 호남의 지역발전은 영남에 비해 10년 이상으로 지체됐다. 특히 광주는 당시 완고했던 유생(儒生)들의 반대로 인해 호남선 축에서도 벗어나 버렸다.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에 따르면, 광주 지역 최초 기차역인 광주송정역이 광주 시내에서 서쪽으로 비켜난 송정리(당시 전남 광산군)에 들어선 것도 이 때문이다.

    호남고속철 개통도 지난 2004년에 1단계(서울~대구)를 개통한 경부고속철에 비해 10년이나 뒤졌다. 하지만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광주와 서울(용산) 간 거리는 1시간33분으로, 서울~부산 간(2시간18분)보다도 50분가량 더 빨라진다. 광주가 부산보다 서울에서 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호남선 철도가 부설된 지 정확히 101년 만에 맞이하는 최대 교통혁명이다. 라이벌 영남을 제칠 역전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광주광역시(시장 윤장현) 측도 호남고속철 개통이 불러올 막대한 변화를 예의주시 중이다. 광주광역시는 2011년 광주발전연구원에 의뢰해 KTX 개통 대비 지역발전전략연구 등을 수립한 상태다. 2013년에는 분야별 세부실천계획 등도 마련했다. 2004년 경부고속철 1단계 개통 때 대구에서 일어난 변화가 주된 비교관찰 대상이다.

    광주광역시 정책기획관실의 한 관계자는 “호남고속철 개통으로 서울과의 접근성이 한층 개선되는 만큼 광주시의 문화관광 등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광주를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의 증가로 문화관광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기대한다”고 했다. 광주 출신 직장인 김웅(34)씨는 “광주 기아 타이거즈 팬이지만 서울에서 광주까지 거리가 있어 광주 홈구장에서 열리는 야구경기에 한 번도 못 가봤다”며 “호남고속철이 생겨서 1시간30분대로 줄면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리는 홈경기에 꼭 가볼 것”이라고 했다.

    광주와 상황이 유사한 대구의 음식, 숙박, 서비스업 및 관광산업 매출액 증가를 보면, 2004년 경부고속철 1단계 개통 직후 6713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은 개통 5년째인 2009년 8283억원으로 증가했다. 개통 당해 대비 23.4%가량 증가한 수치다. 부산·대구·울산 지역의 백화점 및 대형마트의 판매액 역시 조사결과 매출은 꾸준히 증가했고, 타 지역으로 쇼핑의 빨대효과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환경 역시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에는 향토기업인 금호타이어를 비롯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기아차 광주공장 등 대기업 사업장이 산재해 있다. 수출액만 놓고 보면, 광주는 대구의 2.3배, 대전의 4배에 달한다. 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서울 본사와 업무협조 출장 때 시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의료의 경우 대구, 울산 등 KTX 개통 선행도시 사례에 비추어 봤을 때 역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광주시의 판단이다. 울산에서는 KTX 개통을 전후로 서울 지역의 상급병원 이용건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이에 광주시는 오는 4월 권역응급외상센터를 세우는 등 질환별 특성에 맞는 전문·특화병원을 확충해 호남고속철 개통을 지역의료산업의 새로운 전기로 삼을 계획이라고 한다.

    오는 3월 호남고속철 개통에 전북 익산 시민들도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호남고속철은 충남 공주역을 지나 전북 익산역에 정차한다. 익산역이 사실상 호남의 첫 관문이 되는 셈이다. 지난 1월 5일 찾아간 익산역 플랫폼에는 호남고속철에 투입될 보라색과 아이보리색 도색의 신형 KTX 열차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형 KTX 열차는 호남선에서 수시로 시운전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오는 3월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용산에서 익산까지 거리는 68분대로 절반가량 줄어든다. 지금은 KTX로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사실상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로 바뀌는 셈이다. 익산역은 이미 지난해 11월 29일부터 리모델링한 선상(線上) 역사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호남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익산역 광장 일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등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2009~2013년 광주공항 적자 추이
    2009~2013년 광주공항 적자 추이
    익산은 지금도 호남 최대의 철도교통 요지다. 익산역의 전신은 1977년 화약열차 폭발사고로 유명세를 탔던 이리역. 이리역은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등 세 개 철도노선이 한데 모이는 철도분기점이다. 일제는 호남 지역의 물자수탈을 위해 세 개의 철로를 부설했고, 이리에는 수탈당한 자원이 한데 모였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현 익산역(이리역) 일대는 영정통(榮町通)이라고 불리며 흥청망청 번영을 구가했다고 한다. 옛 일제의 익옥(익산·옥구)수리조합 건물에 있는 익산문화재단의 김진아 문화정책팀장은 “일제가 전주에는 유생들이 많아서 들어가길 꺼렸고, 이리를 신도시로 조성했다”며 “당시만 해도 이리역 앞 영정통 일대는 양복점과 금은방, 요릿집들이 늘어서 있어 돈이 흐르는 부촌(富村)이었다”고 말했다. 또 넘치는 돈을 겨냥한 화상(華商)들까지 이리로 몰려들어 금은방, 이불집, 중국식당 등을 운영하면서 대규모 화교(華僑) 상권을 이뤘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3년에는 귀금속 가공 등에 특화된 호남 최초의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경남 마산에 이어 두 번째 수출자유지역이었다. 하지만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직후 상황이 바뀌었다. 이리역 플랫폼에서 화약열차가 폭발하면서 사망자 59명을 포함해 사상자만 1402명을 낸 초대형 참사였다. 이리역 앞 반경 500m 이내의 모든 건물이 전파됐고, 이리역 앞 삼남극장에서 공연을 하던 하춘화, 이주일도 폭발 여파로 극장 지붕이 내려앉는 바람에 부상을 당했다. 윤장현 현 광주광역시장은 당시 군의관으로 재해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이리역 폭발사고 직후 엄청난 규모의 복구지원비가 익산역 일대에 쏟아졌다.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정권의 호남 차별론을 끝내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막대한 복구지원비 덕분에 역 앞 도로가 확장되고, 주변도로가 바둑판식으로 정비되는 등 일시적으로 번영을 구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철도교통의 쇠퇴는 점차 이 익산역 일대의 몰락을 불러왔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 자동차 교통이 느린 철도를 대체하면서 익산의 중심도 옮겨 갔다. 특히 지난 2000년, 익산 영등동 일대에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익산역 일대는 순식간에 몰락해 버렸다. 지난 1월 5일 저녁, 익산역 앞은 쇠락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익산역 앞으로 뻗어 있는 중앙로 옆의 ‘젊음의 거리’는 2015년 초입에도 불구하고 2013년에 내건 빛바랜 현수막을 아직까지 내걸고 있었다. 저녁 6시 퇴근시간에도 젊은이는커녕 노인들만 간간이 보였다.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하춘화, 이주일이 공연했다는 삼남극장 역시 문이 굳게 닫힌 채 주변에 쓰레기만 널브러져 있었다. 삼남극장 앞 익산중앙상가 우편취급국의 한 관계자는 “극장 문을 닫은 지가 하도 오래돼 기억도 잘 안 날 정도”라고 했다. 맞은편 문화예술의 거리(옛 영정통)의 상가들은 두 집 걸러 한 집이 문을 닫거나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외벽 칠이 벗겨진 건물들은 우범지역을 연상시켰다. 익산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익산역 앞은 건물주들이 30~40년 이상 소유한 노인들이라 건물 수리에 소극적이다”라고 말했다.

    익산시로서는 쇠락한 구도심을 되살릴 호기(好機)를 맞이한 셈이다. 익산시 홍보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익산역 이용승객이 20~30% 증가할 것으로 본다”며 “2004년 경부고속철 1단계가 개통됐을 때 대구 지역의 빨대효과 얘기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반짝했던 것처럼, 호남고속철을 이용한 익산 지역의 기업체 유치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익산문화재단의 김진아 문화정책팀장은 “익산역 앞에는 구한말,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근대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지금도 이를 찾아 견학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호남고속철 개통으로 서울에서 익산까지 1시간대 거리가 되면 건축 매니아와 학생들이 많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