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오키나와·홋카이도 여행(2015. 1. 4 - 2015. 1. 13)
서울 출발 -(티웨이항공)- 후쿠오카 -(버스)- 나가사키 -(버스) (후쿠오카 환승) (야간버스)- 가고시마 -(버스) (후쿠오카)- 시모노세키 - 모지 - 후쿠오카 -(Peach 항공)- 나하, 오키나와 -(Peach 항공) (오사카 환승)- 삿포로 -(열차)- 구시로 -(열차)- 아바시리 -(열차) (삿포로)- 오타루 왕복 -(열차)- 하코다테 왕복 - 삿포로 -(티웨이항공) - 서울 도착
(여정표는 맨 끝 편에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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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2015. 1. 7 (수) (후쿠오카 - 시모노세키. 모지 왕복 - 나하, 오키나와 도착)
- (간몬해협과 세토내해) 시모노세키 가는 길은 공장지대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높은 산들과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기타큐슈(北九州)에 거의 다다르니 조선소, 제철소 등 번잡한 공업지역과 거대한 도시군이 나타난다. 고쿠라(小倉)는 2차대전시 미군의 원자탄 투하 원래 목표였을 만큼 제철소를 비롯한 전략산업 집결지이다. 기타큐슈시는 1963년 5개 인접 도시를 통합하여 탄생했으며 시모노세키까지 합치면 인구 130만명의 메트로폴리스이다. 후쿠오카 출발 한 시간 남짓 지나 긴 터널을 나오니 드디어 멀리 간몬해협(關門海峽)과 그너머 일본의 다도해, 일본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낭만의 바다 세토나이카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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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몬대교. 왼쪽이 혼슈, 오른쪽이 큐슈다. |
- (일본의 운명 결정지은 역사의 현장) 버스는 삽시간에 간몬대교를 건너니 혼슈(本州)땅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다. 시모노세키(下關), 글자 그대로 일본의 ‘아랫쪽 관문’을 지켜온 수문장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곳 또한 역사의 사연이 많다. 막부 말기인 1863년 서양과의 불평등 개항조건에 반기를 든 조슈(長州) 반란을 비롯하여 청일전쟁 이후인 1895년 일본의 존재감을 세계에 과시한 계기가 된 시모노세키 조약까지... 그야말로 일본의 국가 운명을 결정지은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요충중의 요충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 또한 한국인이라면 어려서부터 들어왔을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의 도시 아닌가?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겪은 선대 어른들 중 부관연락선과 사연이 있는 분들 또한 많을 것이다. 바로 그 역사적 상징성 때문에 큐슈에 오면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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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 카이코유메타워(海峽夢タワ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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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에도 선교사 하비에르의 상륙기념비가 있다 |
- (아, 부관연락선) 역에서 300m 떨어진 시모노세키항에는 오늘 부관연락선, 아니 부관페리 성희호가 들어와 있다. 153m 높이의 카이코유메타워(海峽夢タワー)의 모습이 도시 스카이라인에 권위를 부여한다. 시내에는 아직도 영업을 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우체국을 비롯하여 100년 이상된 역사적 랜드마크 건물이 여럿 있다. 역에서 멀지 않은 히요리야마(日和山) 전망대를 향하여 계단길을 오른다. 사방으로 해협 아니면 항구 풍경이다. 어제 비가 오더니 공기가 차다 못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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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는 시모노세키의 상징이다. 일본 전체 복어 소비의 70%를 이곳에서 산출한다 |
- (복어의 70%를 산출) 하라토(唐戶)항으로 발길을 옮긴다. 간몬해협 건너편 큐슈쪽 도시 모지(門司)가 보이고 멀지 않은 곳에는 간몬대교가 높이 걸려있다. 빠른 물살위로 배들이 심심치 않게 다닌다. 하루 700척의 배가 왕래한다는 간몬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항로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시모노세키의 또다른 상징물은 복어(후구, ふぐ)다. 음식은 물론이고 로고, 조형물, 악세사리까지 여기서는 복어가 단연 테마다. 간몬기선의 페리를 타고 건너편 모지항으로 건너간다. 작지만 속력을 내어 좁지 않은 해협(500m)을 삽시간에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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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항 부근 풍경 |
- (볼 것 많은 모지항) 모지항에는 아직도 온전히 사용중인 백년 이상된 건물이 여럿 있다. 보존하고 보관하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섬세함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간몬대교 밑에는 해저터널이 있으나 거리가 꽤 되어 걷는 것을 포기한다. 모지에도 불 것과 먹을 것이 많은데 이 고장의 볶음 카레 또한 명물이니 나도 한 그릇 점심으로 뚝딱 해치웠다. 하루나 이틀쯤 투자해도 될 만큼 볼 것이 많고 역사가 농축되어 음미할 것도 많은 곳을 바람처럼 스쳐가니 아쉽고 미안하다. 언젠가 다시 시간을 내어 깊이있게 탐구할 기회를 가질 것을 다짐하며 고쿠라로 나와 후쿠오카행 고속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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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나하 슈리성 전경 |
- (오키나와행 피치항공) 오늘 밤에는 오키나와 나하(那覇)로 떠난다. 대중교통이 비싼 일본에서 국내선 항공여행이 가능해진 것은 갖은 종류의 패스와 저가항공의 확장, 그리고 엔저덕이다. 공항으로 나가는 A번 버스조차도 산큐패스를 이용하니 산큐패스 3일권을 알뜰하게도 활용한 셈이다. 큐슈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 공연히 더 남쪽 오키나와 여행이 기대된다. 인간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그러려니 하며 한국의 겨울을 견디어내며 수십년 살아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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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나하 시내 중심 |
- 오키나와 나하행 피치(Peach) 항공기는 정시에 출발하여 두 시간 걸려 나하에 도착한다. 나하공항 터미널이 도착하고 떠나는 미군들로 분주한 것을 보며 오키나와의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을 읽는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들로 인한 성범죄, 환경오염 등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 GDP의 5% 정도가 미군과 관련한 업종에서 생성된다.
- (어쩔 수 없는 미군주둔?)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치른 오키나와 전투(Battle of Okinawa)로 12만명, 당시 오키나와 인구의 1/4을 잃은 비극을 겪기도 했다. 오키나와는 2차대전 직후 미군정아래 있다가 1972년 일본에 귀속되었지만 아직 오키나와는 동북아 주둔 미군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이고 한국의 안보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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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 입구 1 |
- (류쿠국에서 오키나와현으로) 오키나와는 원래 류쿠국(琉球國, 유구왕국)으로서 1429년 통일하여 건국한 이후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 등과 중계무역으로 번성하였다. 오랫동안 중국에 조공을 해오다가 1609년 사쓰마 번의 침공 이후에는 도쿠가와(?川) 세력에게도 조공을 바치며 줄다리기 외교를 통하여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결국애는 1872년 메이지유신때 일본에 합병되었고 1879년에는 오키나와현으로 일본에 귀속되었다. 메이지시대 이후로 일본은 오키나와의 일본 동화(同化)를 시도해왔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차별을 느낀 많은 오키나와인들이 미국 등으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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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에서 본 도시 풍경 1 |
- (오키나와인의 용모) 오키나와는 가라데의 본 고장으로 알려진 것말고도 미국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대중음악으로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기 위하여 승차한 모노레일에서부터 현지인들의 독특한 용모를 엿본다. 누가봐도 분명 본토인(內地人)들과 확연히 다른 폴리네시안 계열 얼굴의 현지인들을 드물지 않게 본다. 약간은 짙은 피부, 곱슬머리에 쌍가풀진 둥근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중국도, 일본도, 동남아시아도 아닌 오키나와의 묘한 정체성을 새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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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거리 1 |
- 모노레일은 오키나와현의 수도 나하(那覇)시 중심으로 진입한다. 번화하면서도 깨끗한, 그러면서도 일본 본토와는 다른 도시의 모습을 본다. 오키나와 전체 인구(142만)의 거의 절반인 70만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이다. 현청앞(縣廳前)역에서 내려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아들어가니 전형적인 오키나와인 용모의 젊은 남성이 멀리서 온 여행자를 반긴다. 오키나와에서는 내일 온전히 하루가 주어지는 일정이다. 효율적인 도시 탐방을 위해서 늦은 시각이지만 이런저런 정보를 챙긴다.
5일차. 2015. 1. 8 (목) (나하, 오키나와)
- (교통 불편한 오키나와) 나하 시내 이동은 나하순환버스(那覇市內觀光 周遊バス)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버스 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싼 오키나와에서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시간 관계상 나하시내만 탐방하기로 했지만 시외곽의 목적지는 아마도 자동차를 렌트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순환버스 1일패스를 사러 버스터미널로 간다. 그곳과 공항에서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은 흐렸지만 춥지는 않다. 오늘 최고기온은 섭씨 15도를 예상하는데 이곳 기준으로 그 정도면 추운 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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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 입구 2 |
- (한국인 인기관광지) 하늘에는 미 공군기들이 수시로 날아다닌다. 나하 북쪽 40km 오키나와시에 있는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발진했을 것이다. 거리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 최근 한국의 거의 모든 저가항공사들이 오키나와 취항을 시작한 것과 관련있을 것이다. 과거 메이저 항공사가 독점하던 시절, 오키나와는 유독 항공요금이 비싸서 오기 힘든 머나먼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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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쿠국 왕궁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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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쿠국 왕궁 2 |
- (UNESCO 문화유산 슈리성) 먼저 도착한 곳은 슈리성(首里城)이다. 류쿠국의 왕궁으로서 2차대전때 철저히 파괴되었으나 두 차례에 걸쳐 재건했다. 류큐 건축양식의 독자성이 인정되어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성에서는 도시 전체와 멀리 동중국해까지 보인다. 역사교과서에 한두 줄로만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쳐버린 류쿠왕국이지만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것을 깨달으니 전율이 느껴진다. 일본과 중국, 두 강대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정체성을 지켜 고유 문화를 남긴 왕국이 눈 앞에 되살아 나는 것 같다. 성을 나와 잠시 걸으니 소담한 돌포장길이 정연하게 깔린 고즈넉한 마을이 나타난다. 긴조초이시다타미 지역이다. 돌포장길과 함께 오래된 예쁜 집들이 뿜어내는 분위기에 젖어 한참을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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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조초이시다타미 |
- (A+ 현립박물관) 시내에 있는 현립박물관을 찾는다. 해양 생태학, 고고학, 해양 교류사, 자연사, 역사, 민속, 예술과 미술까지 모두 갖춘 종합 박물관이다. 뒤늦게 1429년에 이르러서야 통일 왕국이 성립되었지만 1879년 사쓰마 세력에 의해서 왕국이 멸망하고 일본에 현으로 편입될 때까지의 역사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중국(청나라)과 일본, 두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정체성을 지켜온 왕국의 험난한 역사가 곧 소국 우리나라 같아서 크게 관심이 간다. 심지어 청나라와 일본은 류쿠를 분할해서 나누어 가지자는 논의까지 있었다. 청일전쟁으로 분할 논의는 종지부를 찍었지만 열강각축 시대에 풍전등화같았던 소국의 운명을 확인하니 왠지모를 연민과 동정이 인다.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든 오키나와 전투, 문제많은 미군 주둔과 미군정, 가난과 차별을 피해 수없이 떠난 이민 행렬 등 근현대사의 기록이 특히 상세하다. 아주 잘 설계되었고 정성스럽게 준비된 썩 훌륭한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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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거리 2 |
- 해변을 맛보러 나미노우에(波の上)비치를 찾는다. 나하 유일의 해수욕장이지만 임해고속도로 교각 아래에 위치하는 등 초라한 모습이다. 그래도 동지나해 한복판에 발을 적셔본다. 순환버스로 시내를 반바퀴 돌아 슈리성을 다시 찾는다. 조명을 받은 성루(城樓)와 함께 산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도시 야경이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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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에서 본 도시 풍경 2 |
- (에너지 넘치는 국제거리) 마지막으로 국제거리(고쿠사이도리, 國際通り)를 걸어서 지난다. 현지인들의 쇼핑과 오락 공간이라서 ‘국제’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지만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다양하고 화려한 거리이다. 시민들의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나하의 명동인 셈인데 음식점, 옷가게, 클럽, 바, 면세점 등 없는 것이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 가게도 많다. 예를 들어 미군방출품 전문점 같은 것들이다.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는데 쇼핑객들은 이 거리에 들어서면 얼마나 신날까? 구운 요리가 많은 오키나와 음식을 조리하는 냄새가 쉬지 않고 식욕을 자극한다. 마침 거리는 나하의 공설시장 마키시(牧志)시장과 닿아 있어서 더욱 많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너무나 짧은 오키나와 일정이라서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섬의 찬란한 자연을 접한 후에야 오키나와에 대한 온전한 느낌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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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거리 3 |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