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오키나와·홋카이도 여행(2015. 1. 4 - 2015. 1. 13)
서울 출발 -(티웨이항공)- 후쿠오카 -(버스)- 나가사키 -(버스) (후쿠오카 환승) (야간버스)- 가고시마 -(버스) (후쿠오카)- 시모노세키 - 모지 - 후쿠오카 -(Peach 항공)- 나하, 오키나와 -(Peach 항공) (오사카 환승)- 삿포로 -(열차)- 구시로 -(열차)- 아바시리 -(열차) (삿포로)- 오타루 왕복 -(열차)- 하코다테 왕복 - 삿포로 -(티웨이항공) - 서울 도착
(여정표는 맨 끝 편에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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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2015. 1. 9 (금) (나하, 오키나와 → 오사카 환승 → 삿포로 도착)
-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로 대반전) 오늘은 Peach항공으로 나하를 떠나 오사카에서 환승하여 삿포로로 가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일기예보를 챙겨보니 일본의 전형적인 겨울 기단배치인 동고서저(東高西低)가 나타난다고 한다. 서쪽 동해쪽은 흐리거나 눈이 오고 동쪽 태평양쪽은 화창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홋카이도의 경우 삿포로는 눈이 오지만 도동(道東), 즉 쿠시로 등 섬의 동쪽은 맑다는 얘기다. 곧 확인하게 될 것이다.
- 어제와는 달리 바람이 잦아든 쾌적한 아침이다. 항공기가 나하공항을 이륙하자 점점이 박힌 섬들이 보인다. 류쿠열도는 200개의 크고 작은, 유인 무인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정시 도착했으나 동북지방에 눈보라를 동반한 폭설 때문에 항공기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 최근 일본 저가항공의 급성장에 따라 간사이 공항에도 Peach(인천-오사카 취항), Vanilla(인천-나리타 취항), Jet Star 등 저가항공 전용 터미널이 생겼다. 지갑이 얇은 젊은 승객들이 많다. 홋카이도 신치토세(新千歲) 공항 사정 때문이라며 출발 시각을 계속 늦추던 항공기가 갑자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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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얼음으로 덮힌 신치토세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하는 Peach 항공기 |
- (폭풍설속에 삿포로 착륙) 일본 여행에서 오키나와와 삿포로는 변수가 많은 지역이다. 오키나와는 여름철 태풍, 삿포로는 폭설로 여행에 제약을 받는 일이 생길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항공기는 도호쿠(東北)지방의 눈덮힌 장엄한 산들을 지나 신치토세 공항 상공에 도착하니 온통 두꺼운 구름으로 덮혀있다. 구름을 뚫고 내려가니 설국, 눈과 얼음의 땅이다. 항공기는 엄청난 눈바람을 맞으며 무사히 내렸다. 항공기는 눈과 얼음으로 덮혀 있는 활주로를 유도등에 의지하여 엉금엉금 터미널을 찾아 들어간다. 나로서는 머릿털이 곤두서는 경험이다. 악조건에서도 안전하고 사뿐하게 항공기를 착륙시킨 기장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토쿄-삿포로 항공 루트는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로 10위에 꼽힐 정도로 승객이 많은 만큼 공항 시설은 꽤 크다.
- 터미널 지하에 있는 JR역에 들러 한국에서 구입해온 홋카이도 레일패스 교환권을 실물 패스로 바꾼다. 열차로 시내로 나온다. 오후 5시 조금 넘은 시각이지만 도시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북위 43도가 넘는 높은 위도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와보고 싶었던 홋카이도(北海道) 땅을 드디어 밟았다. 그것도 눈이 펑펑 내리는 하얀 겨울날 찾아왔으니 감개무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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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키마에거리(札幌驛前通) |
- (러시아 견제를 위해서 홋카이도 본격 개발 시작) 원래 아이누(Ainu)의 땅이었던 홋카이도에 본토인들의 유입이 조금씩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개발과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반과 중반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국은 농업과 광업 기술을 도와 주었다. 그런 이유로 홋카이도는 오늘날 농산물과 유제품, 목재 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하염없이 걷는 눈오는 밤) 눈은 계속 내린다. 밤새도록 내릴 기세다. 시내 산책에 나선다. 우선 오도리공원(大通公園)으로 나간다. 삿포로 중심부에 동서로 뻗은 오도리 거리(大通)을 따라 1.5km에 걸쳐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의 동쪽 끝에는 에펠탑을 본딴 TV타워가 불을 밝히고 있다. 2월 첫째 주말에 있을 삿포로 눈축제(雪祭, 유키마츠리, 雪まつり)를 준비하느라 구조물 설치를 비롯하여 이미 바쁘다. 오도리 거리와 직각으로 만나는 삿포로의 남북 중심가로인 삿포로에키마에거리(札幌驛前通)는 멋진 전구장식(화이트 일루미네이션, white illumination)으로 분위기에 한 몫 보탠다. 그 거리들을 눈을 밟으며 하염없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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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현청건물 |
- 일찍이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절묘한 겨울날씨다. 눈은 오지만 축축하지 않고 기온은 분명 영하지만 춥지 않다. 붉은 벽돌로 유명한 구(舊) 현청건물과 그앞 정원에 쌓인 눈은 아름다운 겨울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올드 팝가수 잉글버트 험퍼딩크(Englebert Humperdinck)의 ‘Winter world of love' 노래를 흥얼거린다. 홋카이도가 또 어떤 것들을 보여줄지 궁금해 하며 일단 호텔로 귀환했다.
7일차. 2015. 1. 10 (토) (삿포로 - 오타루 왕복 → 구시로 도착, 1박)
- (홋카이도 레일패스 개시) 오늘부터 홋카이도 레일패스 3일권이 시작된다.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오타루(小樽)행 열차에 오른다. 삿포로에서 40분쯤 거리에 있는 오타루는 삿포로의 외항(外港)쯤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열차는 새벽부터 자정 무렵까지 매우 자주 다닌다. 어젯밤부터 내린 눈이 밤새도록 왔는지 아직도 내리고 있다. 주말을 맞은 아침 7시 삿포로역은 붐빈다. 젊은이들 중에는 스키복장과 장비를 가지고 열차에 오르는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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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운하 1 |
- (파우더 스노우) 세계 최고의 설질(雪質)을 자랑하는 파우더 스노우(powder snow)로 유명한 곳 아닌가? 눈이 와도 조용하고 우아하게 와서 좋다. 축축하고 질퍽거리지 않고 도로나 차량도 더럽히지 않는 고마운 눈이다. 그래도 여기 사는 사람들은 겨우내내 눈에 시달려야 할테니 방문자의 눈과 현지인들의 눈은 느낌이 다를 것이다.
- 오타루 가는 길, 열차가 서는 곳마다 예쁜 작은 어촌들이 이어진다. 동해 바다의 거친 파도가 열차를 삼킬 듯 밀려온다. 미나미오타루(南오타루)역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다. 초자(硝子)에 라커를 칠한 각종 공예품점(라커웨어), 유리공예점, 해산물 음식점, 카페들이 이어진다. 동화속에나 나올 법한 그림같은 마을이 계속 눈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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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거리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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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거리 2 |
- (운치있는 오타루 풍경) 세월의 연륜을 머금은 서양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섞여 이 도시의 탄생 사연을 말해 준다. 그런 건물 중에는 은행 건물이 특히 많다. 메이지유신 이후 많은 은행이 이곳에 진출함으로써 북쪽의 월가(Wall街)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드디어 운하 지역이 나타난다. 일찌감치 메이지시대부터 서양 선박들이 드나들었던 오타루는 1923년 1.1km의 운하를 건설하여 외항과 시내 창고를 바로 연결하였다. 창고중 더러는 온전한 모습으로 아직도 잘 쓰이고 있다. 밤새 쌓인 눈위에 첫 발자국을 내며 운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다. 이 멋진 길은 밤에는 가스등으로 밝혀 운치를 더한다니 삿포로에 머무는 동안 어느 눈오는 밤 일부러 다시 찾아오리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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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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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南) 오타루역 |
- 오타루를 떠나 삿포로에 돌아오니 해가 난다. 시민들은 며칠씩 쌓인 눈을 치우느라 분주해진다. 쿠시로(釧路)행 열차 출발까지 시간이 남아서 역 주변을 산책한다. 후쿠오카가 그랬듯이 삿포로도 도심이 지하보도로 연결되어 있지만 외지인들은 지형지물이 없는 지하보도 안에서 방향을 잃기 십상이다.
- (삿포로 시계탑) 출구를 잘못 찾아 몇 번 들락날락한 끝에 삿포로의 상징물 중 하나인 시계탑(時計台, 시토케다이)에 닿았다. 시계탑은 구현청건물과 함께 삿포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878년 삿포로 농과대학(현 홋카이도대학)을 위해 건립된 만큼 건물 앞에는 삿포로 농과대학의 설립자이자 선교사인 클라크(William Clark)의 ‘Boys, be ambitious' 명구절이 그의 흉상 받침대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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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 |
- (남한 면적의 90% 홋카이도) 먹을 것을 그럭저럭 챙겨 쿠시로행 열차에 오른다. 328km, 네 시간 여정이다. 홋카이도 레일패스 덕에 홋카이도를 동서남북으로 누비는 여정을 감히 계획한 것이다. 특급열차 오조라(Ozora)호는 온통 눈밭과 침엽수림 뿐인 홋카이도 설원을 달린다. 홋카이도 거대한 섬이다. 남한의 90% 면적에 인구 542만(삿포로 200만명)이다. 오비히로(帶廣)를 지나며 해가 쨍쨍나지만 기온은 낮아져 한국의 겨울 날씨 비슷해졌다. 홋카이도 내에서도 동고서저의 기압배치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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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홋카이도는 어디를 가도 이렇게 설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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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로 역전 |
- (광활한 대지) 홋카이도의 광활한 대자연은 미국 서부를 닮았다. 누가 일본을 작은 섬나라라고 했던가? 인구로 보나 국토면적으로 보나 일본은 대국이다. 멀리 아칸(阿寒)국립공원의 높은 산들이 힐끗힐끗 보이더니 드디어 검푸른 북태평양을 만나고 곧 쿠시로다. 쿠시로는 홋카이도 제4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변방 중의 변방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끝까지 왔으나 드넓은 평원과 태평양을 만나서 그런지 가슴은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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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로 항 |
- 호텔에 체크인하고 잠시 도시 탐방에 나선다. 기온도 낮지만 쿠시로는 바닷 바람이 체감온도를 낮추어서 몹시 춥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위해서 장갑을 벗을 때마다 손끝이 아리다. 누사이아다리(弊舞橋)를 건너 어항까지 갔다 온다. 항구를 가득 메웠어야 할 어선들은 어디에선가 겨울잠을 자는지 항구가 썰렁하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드센 바람에 어선마다 걸린 깃발이 세게 날린다. 저녁을 일찍 챙겨먹고 여행기를 정리하는 밤이 아늑하기 그지없다.
8일차. 2015. 1. 11 (일) (구시로 → 아바시리 → 삿포로 도착)
- (토요코인) 내가 머물고 있는 토요코인(東橫イン)은 일본의 비즈니스호텔 체인이다. 우리나라 서울과 부산에도 여러 곳 있는데 깨끗하고 실용적인 것은 물론이고 아침식사 또한 훌륭한데 가격은 놀랍게도 착해서 싱글룸 기준 하룻밤에 4,500엔(한화 4만원 남짓) 정도이다. 밥과 국, 반찬과 카레가 나오는 정식 조찬을 먹고 쿠시로 역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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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코인의 싱글룸 객실 |
- (홋카이도 동부의 국립공원들) 오늘은 쿠시로에 올 때와는 다른 길로 돌아서 삿포로에 귀환하는 것으로 여정을 짰다. 쿠시로에서 시레토고샤리(知床斜里)를 거쳐 아바시리(網走)에 닿고, 그곳에서 삿포로행 특급열차에 오를 예정이다. 홋카이도 동부(도동, 道東) 지역은 일본에서는 가장 오지이지만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대표적으로 아칸(阿寒)국립공원, 시츠겐(濕原, 습원)국립공원, 시레토고(知床)국립공원 등이 있으니 다른 계절이었다면 며칠을 머물러도 모자랄 관광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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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량 편성 지선(支線)열차들 |
- (센모혼센 1량 열차) 아바시리행 센모혼센(釧網本線) 열차는 1량 편성의 디젤동차이다. 언젠가 NHK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바로 그 꼬마열차에 오른다. 경쾌한 디젤엔진음으로 출발하니 또다시 가슴이 부푼다. 열차 출발 15분쯤 지나자 습원지대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열차는 거의 한 시간 시츠겐 국립공원을 관통하며 볼거리를 쉬지 않고 선사한다. 중간 중간 열차가 서는 간이역은 어디에서 내려도 훌륭한 습지 체험 장소가 될 것이다. 숨막히게 장엄한 대설원은 미국 서부 와이오밍(Wyomong) 대평원과 흡사하다. 사방 수백 평방킬로미터에 걸쳐 끝없이 펼쳐진 습지는 천연기념물 두루미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의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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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츠켄 국립공원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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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츠켄 국립공원 2 |
- (시레토코 반도) 습지가 끝나며 산악지대에 접어든다. 아칸국립공원의 연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열차는 눈터널을 계속 지나더니 쿠시로 출발 두 시간 20분 시레토코샤리(知床斜里)에서 오호츠크해의 검푸른 겨울바다를 만난다. 이곳은 시레토코반도와 국립공원의 초입으로서 일본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쿠릴열도의 남쪽 끝이 가깝다. 맑은 날 시레토코 고개에 올라서면 쿠나시리(Kunashir) 해협 건너 쿠릴열도의 일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따라 일본은 당시까지 통치했던 사할린섬 50도 이남을 돌려 주고 러시아로부터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을 대신 받았으나 2차대전 패전으로 러시아(소련)에 빼앗겼으니 북방 4개도서에 대한 일본의 집착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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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시리 항 |
- (아바시리 감옥) 시레토코샤리에서 종점 아바시리까지 열차는 바다와 닿을 듯 해안을 가까이 끼고 40분을 더 달린다.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센모혼센 덕분에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바시리에는 오호츠크해 유빙(遊氷) 관광 쇄빙선 오로라와 아바시리 감옥이 유명하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삿포로행 열차로 바꿔타야 하지만 여기 또한 알맞은 계절에 다시 와보리라 다짐하게 한다. 아바시리 감옥은 메이지시대 이래 죄수들을 처형하는 대신 교화한다는 서구식 개념을 도입하여 머나먼 변방에 세운 감옥이다. 죄수들은 주로 도로공사에 동원되었고 난방없는 감옥방에서 때로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를 견뎌야 하는 악명높은 감옥이었다. 1984년 감옥은 영구 폐쇄되었고 대신 도시 외곽 텐토잔(天都山)에 감옥을 재현한 박물관을 세웠다.
- (오호츠크호 특급열차) 열차 환승시간을 이용하여 역에서 멀지 않은 아바시리항을 찾아가 상징적 사진 몇 장을 찍고 오후 1시 29분 삿포로행 오호츠크호 특급에 오른다. 347km, 5시간 30분 걸리는 먼 길이다. 열차는 홋카이도 내륙 중앙부의 험준한 산맥을 관통한다. 여태까지 홋카이도 다른 지역에서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설경을 만끽한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심산유곡의 겨울풍경을 열차에 앉아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 홋카이도는 역시 설국(雪國)이다. 열차는 정시에 삿포로역에 도착하니 1박 2일 홋카이도 동부 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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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운하 2 |
- (오타루 밤 풍경) 마침 눈이 오길래 역에서 삿포로역에서 곧장 열차를 바꿔타고 오타루로 향한다. 어제 아침에 다녀왔지만 밤의 오타루를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오타루 운하에는 가는 싸락눈이 가스등 불빛 아래 안개처럼 흐트러지며 몽환적인 정취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침 나같은 사람이 몇 명 더 있는지 운하교(運河橋) 위에서 이 멋진 오타루의 밤풍경을 정성스레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삿포로에 돌아와 호텔에 체크인하니 집에 온 듯 아늑하다.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