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前대통령, 회고록서 남북 접촉 등 秘史 공개]
2009년 北, 정상회담 대가로 "100억弗 투자하라"
천안함 폭침 사과 요구하자 北 "동족으로선 유감"
연평도 포격 다음달 보위부 대좌 등 서울로 보내
朴대통령, 정운찬 浮上 오해… 세종시 수정안 반대
재임중 폐병 진단, 환자로 보일까 아내 화장품 발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달 2일 발간할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과 대중국 관계, 천안함·연평도 사건 대응 과정 등 비사(秘史)를 밝혔다.
◇북한과 중국 관계 비사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비공개 면담 이후, 북한 측이 개성 실무접촉에서 "두 사람이 서명한 내용"이라며 세 장짜리 합의서를 내놓았다고 했다. 문서에는 정상회담 조건으로 우리 측이 옥수수 10만t, 쌀 40만t, 비료 30만t을 비롯해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달러어치를 제공하고 북측의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달러를 제공하라고 돼 있었다.
비밀 접촉 직후인 같은 해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이 대통령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북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조건없는 남북 정상회담을 바랐는데 왜 그런 식으로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하자, 원자바오는 "그 조건은 김 위원장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며 "김 위원장과 연락할 기회가 되면 대통령의 뜻을 전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우리 측이 사과를 요구하자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는 유감이라 생각한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가 거듭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자 북측은 또다시 쌀 50만t의 지원을 요구했다.
북한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다음 달인 12월 5일 보위부 대좌 1명과 상좌 1명, 통신원 2명을 비밀리에 서울로 보냈다. 이 전 대통령은 "김정일의 서한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고, 그들을 따로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장군님 메시지를 가지고 왔는데 이 대통령이 왜 우리를 만나지 않느냐"고 거칠게 항의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캐나다 토론토 G20 정상회의에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 책임을 묻는 데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후진타오 주석에게 "이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얼굴 붉힐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자 후진타오는 "말씀 충분히 알아들었다.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건이 잘 해결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을 만나 "연평도 포격 도발을 한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해 올 경우 단호히 응징하겠다는 뜻을 북에 전해 달라"고 했다. 다이빙궈는 한 달 뒤 김정일을 만나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남북 간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북·중 관계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고 이 전 대통령은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2012년 1월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만찬 자리에서 "한반도 통일 후 (주한)미군은 현재 주둔하고 있는 위치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후진타오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은 채 듣기만 했다고 이 전 대통령은 밝혔다.
2007년 12월 대선 직후엔 북한을 자주 드나들던 한 목사가 이 전 대통령을 찾아와 "북한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용의가 있는데 그 조건으로 이 당선자가 북한에 '당선에 도움을 준 데 감사한다'는 내용의 친필 서한을 써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8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북한이 지금 구소련 공산국가가 망해 가던 그 길을 가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지금과 같이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해나가면 언젠가 통일은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미 대통령과 있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애초 골프 카트 운전을 부시 대통령이 하도록 돼 있었으나 이 전 대통령이 "카트 운전은 제가 더 잘할 것 같다"고 하자 부시 대통령이 "직접 운전해보겠습니까"라고 해 이 전 대통령이 운전하게 됐다고 한다.
◇국내정치
이 전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과 관련,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었지만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며 "돌이켜보면 당시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되는 이변을 기대했다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반대 토론에 나서면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며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우리 정치권과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고 썼다.
이 전 대통령은 '자원 외교'에 대한 최근 야당의 비판과 예정된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자원 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걸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라며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 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또 "과장된 정치적 공세는 공직자들이 자원 전쟁에서 손을 놓고 복지부동하게 만들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생활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재임 중 폐병에 걸렸던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광우병 사태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2009년 하반기 갑자기 기력이 떨어졌다"며 "그해 12월 건강검진에서 '폐에 문제가 생겼고 상태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세계 금융위기 중에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아 아내에게만 발병 사실을 알리고 아들·딸은 물론 청와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부속실 직원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비타민을 복용하는 것으로 하고 물을 가져오게 했다"며 "안색이 환자처럼 보일까 봐 매일 아침 아내가 쓰던 화장품으로 메이크업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즈음 내 병도 완치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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