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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회고록, 반쪽짜리 용기

화이트보스 2015. 2. 4. 17:45

MB 회고록, 반쪽짜리 용기[중앙일보] 입력 2015.02.04 00:03 / 수정 2015.02.04 00:10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대통령은 5년간 국가를 책임진다. 그런 대통령의 회고록은 사사로운 개인 기록이 아니다. 역사에 대한 국가의 보고서다. 그러므로 회고록엔 냉혹한 진실과 심장 떨리는 참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MB) 회고록은 반쪽짜리다. 공적은 대로(大路)에 있고 잘못은 골목에 있다.

 MB의 가장 큰 공적은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이다. 회고록 장면을 보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위기를 부추기는 국내외 언론, 빠져나가는 외국 자본, 눈앞에 닥친 1997년의 악몽….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고 MB는 적었다. “이런 시기에 CEO 출신인 내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는 역사적 소명이 있을 것이었다.”

 MB 정권은 총력을 다했다. 28조원의 추경예산을 풀고 미·중·일과 통화 스와프(currency swap)를 맺었다. 이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다. 급할 때 달러를 조달하는 것이다. 청와대 지하벙커에선 비상경제회의가 열렸다. 경제단체장과 대기업 경영진도 참여했다. 위기를 맞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가 단결한 것이다. 한국은 세계로도 뛰었다. 주요 20개국(G20)에 들어갔고 의장국도 맡았다.

 극적인 소명을 만들려는 신의 장난인가. 2009년 하반기 대통령은 심각한 폐병에 걸렸다. MB는 아내에게만 알렸다. 약도 먹었지만 기본적으로 MB의 처방은 ‘일’이었다. 회고록은 이렇게 적었다. “35세 현대건설 사장 때 나는 간염에 걸렸다. 하지만 쉬지 않고 일했다. 10년 만에 바이러스가 사라졌다. 일이 나를 살렸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신념대로 폐병은 6개월 만에 물러갔다. 병과 함께 위기도 사라졌다. 원래 2009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은 -2%였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0.2% 성장인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플러스 성장은 호주·폴란드·한국뿐이다. 대외 의존도를 고려하면 한국의 플러스는 기적이었다. 2010년엔 6.1%까지 치솟았다. 세계 두 번째다. 유럽 재정위기도 왔지만 한국은 끄덕하지 않았다. 2012년 3대 신용평가회사는 한국의 등급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렸다.

 이 밖에도 MB의 성공 스토리는 많다. 한·미 동맹을 재건하고 북한을 원칙으로 다뤘다. 자유무역협정(FTA) 영토를 확대하고 대규모 원전을 수출했다. 아덴만 작전으로 국가의 사기를 높였다. MB는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많았다. 그렇다면 독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회고록을 덮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덮을 수가 없다. 중요한 게 빠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백의 용기다. 회고록에 홍보는 많지만 참회는 없다. MB에겐 중요한 실책 3개가 있다. 이상득·박근혜 그리고 연평도다. 이것에 관한 진실이 책에는 없다.

 국민의 소리를 들었다면 MB는 이상득 사태를 막았을 것이다. MB가 집권하자 많은 국민이 형님의 출마를 반대했다. 역대 정권에서 벌어졌던 친·인척 재앙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MB는 잘못된 혈연에 매달렸다. 결국 형님에게 사람과 돈이 몰렸다. 형님은 자원외교로 피했지만 그것도 비정상이었다. 마침내 터질 게 터졌다. 김영삼(YS) 아들 현철은 은행 계좌, 김대중(DJ) 아들 홍업은 아파트 베란다, 노무현 가족은 라면상자에서 돈이 나왔다. 형님 이상득은 장롱이었다. 형님의 친구와 보좌관, 대통령 친구, 대통령 부인의 사촌오빠도 감옥에 갔다.

 이명박 그룹은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둘렀다. 2008년 총선 때 친박계를 학살했다. 박근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절규했다. 유권자는 박근혜를 살리고 MB를 징벌했다. 박근혜를 잘못 다뤄 MB는 시련을 겪었다. 광우병과 세종시에서 MB는 필요한 협조를 받지 못했다.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회고록의 연평도 기록은 무책임한 것이다. MB는 한국군이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 걸 군의 탓으로 돌렸다. 잘못된 교전수칙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아니 군의 최고 명령권자가 누구인가. 대통령 아닌가. 연평도 8개월 전에 이미 천안함이 터졌다. MB는 그때 북한 소행이란 걸 알았다. 그렇다면 그는 앞으로 천안함까지 합쳐 북한을 응징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F-15K 같은 무기체계도 공부하고 지휘관들과 응징작전을 협의해 뒀어야 한다. 그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가 막상 일이 터지자 책임을 아래에 돌렸다.

 용기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금융위기에 맞서고 불굴의 의지로 폐병과 싸우는 것은 훌륭한 용기다. 그러나 피눈물로 잘못을 기록하는 것도 똑같이 위대한 용기다. 대통령의 반쪽 용기 때문에 5년의 추억이 반쪽짜리가 되고 있다. 용기가 있었다면 한국은 갈등을 넘어 전진하고 있을 것이다. 이니셜(initial)의 운명인가. MB는 끝내 Memoir Barrier(회고록 장벽)를 넘지 못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