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3일부터 19일까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아래 ABC) 트레킹을 일주일간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마흔 언저리의 나와 K, 두 남자가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느낀 여러 생각과 소회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익히 히말라야를 경험하신 분들께는 그 때의 기억과 감흥을, 버킷리스트 한 편에 히말라야를 적어 놓고 '언젠가'를 준비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설렘과 정보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 기자말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네팔 국내선 비행기가 떴습니다. 비행기 이륙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사진으로만 보았던 설산의 위용이 눈에 나타납니다. 비행 시간이 30분 정도 되는데, 구름 위로 솟아오른 히말라야의 고봉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마치 공룡의 등뼈처럼 이어진 설산을 하늘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왜 히말라야를 '세계의 지붕', '신들의 정원'이라 명명하는지 알만합니다.
박제된 감동 대신 '나만의 깨우침' 얻기 위해 떠난 여정
국내선 왕복 항공료는 200달러. 당신이 비용적으로 부담만 없다면 안나푸르나 방향으로 트레킹을 할 때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히말라야 산군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으니까요. 그리고 일단 비행기를 탄다면 (국내선 비행기는 자유석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얼른 오른편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경우에는 오른쪽 창으로만 설산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젯밤 나는 K에게 물었습니다. 히말라야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냐고. K는 답했습니다. "지금 몸 담고 있는 직장에서 10여 년의 시간, 그동안 몸도 무거워지고 내면의 변화에 대한 갈망은 있었으나 웬만한 자극으로는 안 바뀌니까... 벼랑 끝에 자신을 세우는 심정으로 히말라야를 선택했다"고 말입니다.
40년을 살고 나서, 이대로 죽느냐 아니면 새로운 30~40년을 살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서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고 무뎌진 부리와 발톱을 뽑고 깃털을 간다는 솔개의 이야기. 그 스토리의 진위를 떠나 '환골탈태'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는 솔개의 진화는 K의 바람과 같았습니다.
이젠 K가 같은 질문을 묻고 내가 답했습니다. '인생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요즘 그 마음에 경계가 너무 많아졌다고. 분별과 시비, 평가와 계산, 두려움과 자만... 내 마음 속의 수 많은 선들을 지우고 싶다고. 그리고 지난 6개월간 이번 트레킹을 준비하며 히말라야에 관한 많은 책과 정보들을 접했는데, 누군가가 경험하고 느낀 박제된 감동이 아니라 히말라야를 통한 '나만의 깨우침'을 얻고 싶다고.
포카라에 내렸습니다. 네팔의 대표적인 휴양지라 그런지 햇살도 따사롭고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보통 이 곳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나야폴까지 이동해서 본격적인 ABC트레킹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우리는 일정상 사울리바자르(1220m)까지 차로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나는 늘 끝이 궁금했습니다. '원주율의 끝자리는 무엇일까'부터 '우주의 끝은 어떨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모여 있다는 히말라야. 그 끝을 오르지는 못할지라도 보고는 싶다는 열망이 어쩌면 자연스럽게 나를 이 곳으로 인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환상은 갖지 않았을지언정 기대는 컸겠지요. 히말라야를 여러 번 다녀온 지인이 봄부터 겨울까지 다양한 기후를 경험할 것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해주었건만, 나에게 히말라야는 '겨울', '설산'의 상(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노란 유채꽃밭이 다독이는 첫날의 긴장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버릴 만큼의 더위가 찾아옵니다. 오르막길 군데군데 소똥인지, 말똥인지 엄청난 크기의 분비물이 냄새를 풍겼습니다. 눈에 들어 오는 것은 '어떻게 저런 높이의 산비탈까지 땅을 개척해 살아갈까' 감탄을 자아내는 마을의 모습입니다.
그랬습니다. 트레킹의 많은 부분은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네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을 걷는 것입니다. 밭을 일구는 사람들, 뛰어 노는 아이들, 낯선 이방인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노파... 그리고 트레커들의 거친 숨과 땀을 위로해주는 아름다운 풍광. 노란 유채꽃밭이 긴장된 첫날 여정을 쓰다듬어 줍니다.
오늘의 도착점은 간드룩이라는 마을입니다. 흔히 안나푸르나 지역의 5대 뷰(view) 포인트로 불리는 곳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산장의 역할을 하는 '로지'에 짐을 풉니다. 낮에 걸을 때는 더웠지만, 밤이 되니 추위가 엄습합니다. 하긴 여기 높이가 1940m니까 지리산 천왕봉보다 높은 곳입니다. 두툼한 점퍼를 껴입고 침낭 속으로 웅크리고 들어갑니다.
오랜 시간 히말라야를 꿈꾸어 왔습니다. 모든 상(相)은 깨어지게 마련이지요. 히말라야에 대한 나의 상(相)은 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히말라야를 만나겠지요.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요. 히말라야를 걷는 동안 내가 만든 아상(我相)도 허상(虛像)도 모두 깨어지고 실재(實在)의 '나'를 만나기를 바라며 잠을 청합니다.
(다음 편으로 계속)
▲ 비행기에서 바라 본 히말라야 설산의 모습 | |
ⓒ 정수현 |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네팔 국내선 비행기가 떴습니다. 비행기 이륙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사진으로만 보았던 설산의 위용이 눈에 나타납니다. 비행 시간이 30분 정도 되는데, 구름 위로 솟아오른 히말라야의 고봉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마치 공룡의 등뼈처럼 이어진 설산을 하늘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왜 히말라야를 '세계의 지붕', '신들의 정원'이라 명명하는지 알만합니다.
박제된 감동 대신 '나만의 깨우침' 얻기 위해 떠난 여정
국내선 왕복 항공료는 200달러. 당신이 비용적으로 부담만 없다면 안나푸르나 방향으로 트레킹을 할 때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히말라야 산군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으니까요. 그리고 일단 비행기를 탄다면 (국내선 비행기는 자유석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얼른 오른편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경우에는 오른쪽 창으로만 설산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젯밤 나는 K에게 물었습니다. 히말라야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냐고. K는 답했습니다. "지금 몸 담고 있는 직장에서 10여 년의 시간, 그동안 몸도 무거워지고 내면의 변화에 대한 갈망은 있었으나 웬만한 자극으로는 안 바뀌니까... 벼랑 끝에 자신을 세우는 심정으로 히말라야를 선택했다"고 말입니다.
▲ 사울리바자르로 들어가는 길목의 다리 | |
ⓒ 정수현 |
40년을 살고 나서, 이대로 죽느냐 아니면 새로운 30~40년을 살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서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고 무뎌진 부리와 발톱을 뽑고 깃털을 간다는 솔개의 이야기. 그 스토리의 진위를 떠나 '환골탈태'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는 솔개의 진화는 K의 바람과 같았습니다.
이젠 K가 같은 질문을 묻고 내가 답했습니다. '인생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요즘 그 마음에 경계가 너무 많아졌다고. 분별과 시비, 평가와 계산, 두려움과 자만... 내 마음 속의 수 많은 선들을 지우고 싶다고. 그리고 지난 6개월간 이번 트레킹을 준비하며 히말라야에 관한 많은 책과 정보들을 접했는데, 누군가가 경험하고 느낀 박제된 감동이 아니라 히말라야를 통한 '나만의 깨우침'을 얻고 싶다고.
포카라에 내렸습니다. 네팔의 대표적인 휴양지라 그런지 햇살도 따사롭고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보통 이 곳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나야폴까지 이동해서 본격적인 ABC트레킹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우리는 일정상 사울리바자르(1220m)까지 차로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나는 늘 끝이 궁금했습니다. '원주율의 끝자리는 무엇일까'부터 '우주의 끝은 어떨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모여 있다는 히말라야. 그 끝을 오르지는 못할지라도 보고는 싶다는 열망이 어쩌면 자연스럽게 나를 이 곳으로 인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환상은 갖지 않았을지언정 기대는 컸겠지요. 히말라야를 여러 번 다녀온 지인이 봄부터 겨울까지 다양한 기후를 경험할 것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해주었건만, 나에게 히말라야는 '겨울', '설산'의 상(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 산비탈까지 빼곡히 땅을 개척한 네팔의 마을 모습 | |
ⓒ 정수현 |
▲ 일하고 있는 네팔 사람들의 모습 | |
ⓒ 정수현 |
노란 유채꽃밭이 다독이는 첫날의 긴장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버릴 만큼의 더위가 찾아옵니다. 오르막길 군데군데 소똥인지, 말똥인지 엄청난 크기의 분비물이 냄새를 풍겼습니다. 눈에 들어 오는 것은 '어떻게 저런 높이의 산비탈까지 땅을 개척해 살아갈까' 감탄을 자아내는 마을의 모습입니다.
그랬습니다. 트레킹의 많은 부분은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네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을 걷는 것입니다. 밭을 일구는 사람들, 뛰어 노는 아이들, 낯선 이방인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노파... 그리고 트레커들의 거친 숨과 땀을 위로해주는 아름다운 풍광. 노란 유채꽃밭이 긴장된 첫날 여정을 쓰다듬어 줍니다.
▲ 첫날밤을 묵은 간드룩의 로지 | |
ⓒ 정수현 |
▲ 배구코트를 사이에 두고 공놀이 하는 아이들 | |
ⓒ 정수현 |
오늘의 도착점은 간드룩이라는 마을입니다. 흔히 안나푸르나 지역의 5대 뷰(view) 포인트로 불리는 곳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산장의 역할을 하는 '로지'에 짐을 풉니다. 낮에 걸을 때는 더웠지만, 밤이 되니 추위가 엄습합니다. 하긴 여기 높이가 1940m니까 지리산 천왕봉보다 높은 곳입니다. 두툼한 점퍼를 껴입고 침낭 속으로 웅크리고 들어갑니다.
오랜 시간 히말라야를 꿈꾸어 왔습니다. 모든 상(相)은 깨어지게 마련이지요. 히말라야에 대한 나의 상(相)은 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히말라야를 만나겠지요.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요. 히말라야를 걷는 동안 내가 만든 아상(我相)도 허상(虛像)도 모두 깨어지고 실재(實在)의 '나'를 만나기를 바라며 잠을 청합니다.
(다음 편으로 계속)
▲ 유채꽃밭을 바라보며 걸어갑니다. | |
ⓒ 정수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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