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티베트

인도 카슈미르- 꿈결 같은 히말라야 낮과 밤

화이트보스 2015. 3. 4. 14:23

인도 카슈미르- 꿈결 같은 히말라야 낮과 밤

스리나가르~쇼케다런~비샨사르 호수~행탑 트레킹

글 | 이치상 경희대산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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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북서부의 카슈미르 지방(Jammu & Kashmir Predish)은 히말라야산맥을 가운데 두고 파키스탄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다. 인도는 힌두교가 대부분이지만 카슈미르 지방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슬림 일색이다. 잦은 테러로 공항에서의 검문검색이 엄격하고 절차가 까다로워 쉬운 여행대상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트레킹 대상지로 카슈미르 지방을 정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다. 둘째, 히말라야 하면 네팔이 먼저겠지만 여름 네팔은 몬순이라서 히말라야 경치를 구경할 수 없다. 셋째, 네팔 트레킹과 달리 카슈미르 트레킹은 초원에서 캠프를 한다. 넷째, 카슈미르 히말라야 지역을 다녀온 한국 트레커가 많지 않다. 게다가 일정 대비 네팔에 비해서 비용이 싸다는 점이 트레킹 대상지를 카슈미르로 잡은 대략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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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탑(Hang top·3,600m) 정상 부근. 정면의 검은 암봉이 해발 4,000m의 타지와스(Tajwas)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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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호수(Dal lake)에 떠 있는 스리나가르의 명물 하우스 보트와 수상택시 ‘시카라’.

 
2013년 라다크의 캉야체 등반 이후 ‘인도 재입국=등반’의 공식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네 후배와 친구 등 평소 술자리에서 히말라야에 대한 관심이 많던 지인들이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 트레킹을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고는 흔쾌히 등반을 포기하고 말았다.

충북 음성 금왕에 살고 있는 후배 두 명과 가족들이 갈 것을 결심했고, 부산에 살고 계신 남기탁 선배님의 합류로 부산약사회 산사랑산악회 회원들까지 합류해 총 16명의 대원이 인도 카슈미르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게 되었다.

약사 산악인으로 유명한 남기탁 선배님과 사모님은 고희를 넘기신 고령이고, 금왕 후배 김정래 대원의 딸 윤지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열살 어린 소녀다. 70대 2명, 60대 1명, 50대 2명, 40대 3명, 30대 3명, 20대 1명, 10대 4명 등 연령층이 다양했다. 대원들 중에는 남기탁 선배님처럼 등반과 트레킹 경험이 많은 대원이 있는가 하면 음성 대원 대부분은 첫 히말라야 트레킹이라서 짐을 꾸릴 때부터 걱정과 염려가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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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굴가든에서 본 무굴제국의 성과 호수 가운데 남아 있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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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슈미르 트레킹의 장점은 말을 타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고소적응이 덜 된 대원들은 말을 타고 트레킹을 했다.


2013년 라다크 캉야체(6,400m)봉을 등반할 때는 여행사를 통해 인도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입국해 인천공항 못지않은 빠른 입국심사로 편리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인도 당국은 비자발급 방식을 일방적으로 바꾸더니 출국을 앞두고는 도착비자 발급으로 바꾸었다(2014년 4월 15일부터 도착비자로 바뀜. 비자 발급비용 1인당 60달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대로 내려서는 계단 아래에 도착비자(visa on arrival)를 받는 창구가 있다. 한국을 비롯해 10여 개국만이 도착비자를 받는다는 안내문이 창구 뒤쪽 벽면에 씌어 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창구 앞에 몰려든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한국 사람들이었다. 3시간의 고투 끝에 16명 전원 도착비자를 받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스리나가르가 고향인 잔(Jaan·33)과 업무 차 델리에 머무르고 있는 명지대 산악부 OB 고광태(CJ 홈쇼핑 인도지사장, 86학번) 씨로, 두 사람은 오랜 기다림에도 밝은 웃음으로 일행들을 반겨 준다. 어떤 사람들은 5시간 이상 기다린 후에 겨우 비자를 받고 입국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3시간 만에 입국을 마친 것에 안도하며 버스로 향했다. 잔은 세종대 한국어학당에서 1년 동안 공부한 터라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


히말라야 풍광 즐기면서 저녁 식사

8월 2일. 몬순기간인 델리는 좀 덥긴 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날씨였다. 인도 서부 뱅갈 지방은 폭우로 피해가 적지 않다는데 이곳 날씨가 좋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국내선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스리나가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리나가르에 가까워지자 창밖으로 만년설이 덮인 히말라야산맥이 뭉게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히말라야가 처음인 대원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구름이 많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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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해발 3,450m에 위치한 인도지도를 닮은 호수에 발을 담그고 발목이 얼어붙을 듯 차가워 비명을 지르는 윤교근 대원과 최연소 대원 김윤지(10세)  양. / 아래_재미있는 모양의 부르자(Burza) 나무.
공항에 도착해 잔이 도착등록증을 작성하는 동안 대원들은 짐을 카트에 싣고 밖으로 나왔다. 2013년 캉야체 등반 때 가이드였던 라쥬가 흰 이를 드러내며 반갑게 맞아 준다. 라쥬는 잔의 친동생이다. 20년 전 겨울, 혼자서 스리나가르에 왔다가 한밤중 현지인에게 안내되어 간 하우스 보트에서 지낸 3일의 기억 속에 왠지 낯익은 얼굴이라 생각했었는데 가이드 잔과 그의 동생 라쥬는 그 당시 묵었던 하우스 보트 주인의 두 아들이었다.

스리나가르는 인도 북동부의 다르질링과 함께 휴양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스리나가르 하면 떠오르는 것이 달호수(Dal lake)와 호수 위에 떠 있는 호텔인 하우스 보트(House boat)다. 약 1,200개의 하우스 보트가 호수 곳곳에 늘어서 있는 풍경은 한가롭게 보인다. 그 사이를 오가는 수상택시 격인 작은 배 ‘시카라’는 카슈미르의 심볼마크가 되었다. 호숫가 선착장에서 시카라를 타고 하우스 보트에 여장을 풀었다.

스리나가르 도착 후 첫 일정은 무굴가든 방문이다. 무굴제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인 1634년 완성된 무굴가든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인공수로와 연못을 가운데 두고 카슈미르 지방과 이란에 자생한다는 키 큰 치나르(Chinar)가 공원에 시원한 숲은 만들어 주고 있다. 무굴가든에서 내려다보면 무굴제국의 성이 달호수 건너편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고, 호수 가운데 다리가 놓여 있다. 무굴제국 최고의 번성기를 이끌었던 4대 왕은 술과 여자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코끼리를 타고 다리를 건너 무굴가든으로 향했을 왕의 행차를 상상해 본다.

8월 3일. 트레킹을 위해 2대의 승합차에 나눠 타고 스리나가르를 출발했다.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해발 2,300m의 소나마르그(Sonamrg)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트레킹을 시작했다. 주위의 풍경은 잔의 말대로 알프스 못지않다. 짐을 실은 말과 뒤섞여 한 굽이 돌아서자 오늘 올라갈 사면이 올려다 보인다. 언덕 위에서 군인들에게 신고를 하고 키 큰 구상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트레킹 첫날인 데다 고도가 해발 2,600m를 넘어서자 현저히 느려진 걸음에 가이드 잔은 애가 타는지 걸음을 재촉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채근할 수는 없지만, 언덕을 다 올라서야 오늘 캠프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마냥 룰루랄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여분의 말이 있어 걷기 힘든 대원들이 말에 올라 사면을 가뿐하게 올라서자 속도가 난다. 맨 후미는 남기탁 선배님 부부와 나였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초원 사이로 난 길을 올라서자 초원 위에 자리잡은 캠프가 코앞이다. 해발 3,100m의 쇼케다런이다.

바람이 부는 가운데 캠프를 만들고 야외에 만들어진 테이블에서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며 저녁식사를 즐겼다. 이런 점이 카슈미르 트레킹을 이끈 가장 큰 매력이었으리라.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 초원 위에서의 첫날을 즐겼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별이 눈이 부실 정도다. 보름이 가까워진 달은 이미 서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8월 4일. 오늘은 해발 3,658m에 위치한 비샨사르호수까지 운행하는 날이다. 고지대에서 하룻밤을 자고 났는데 특별히 고소증세를 느끼는 대원이 없어 다행이다. 한국에서 계획을 세울 때부터 일정은 상징적인 것이었고, 운행은 그날 상황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 오늘 역시 말을 타고 가는 대원과 걷는 대원으로 나뉘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본인의 선택에 따라 말을 타든지 걷든지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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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둘째 날 최고 도달지점에서 음성군기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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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을 말을 타고 오르는 대원들.


초원지대를 가로질러 언덕을 올라서자 부르자(Burza : 옛날 나무껍질을 벗겨 종이 대신 편지를 썼다는 나무) 숲이다. 숲 속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좋다. 20여 분 숲을 가로질러 계곡으로 나섰다. 수목한계선 위부터는 초원과 너덜지대가 번갈아 나타났다. 말이 걷기 곤란한 돌밭에서는 대원 모두 걸었다. 그러다가 초원지대가 나타나면 다시 말에 올라 트레킹을 이어갔다. 말이 있다는 것이 짧은 일정의 트레킹에 대원들의 체력문제로 인한 곤란함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말을 타고 가던 김경숙 대원의 낙마사고는 말 트레킹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셈이다. 다행히 걸을 수 있는 상태여서 트레킹을 이어갔다.

해발 3,400m대의 초원에서 트레킹을 멈추었다. 앞쪽 높은 고개를 넘어선 후 2시간은 더 가야 비샨사르호수가 나온다는 가이드 잔의 말에 오늘 운행을 이곳에서 멈추고 점심식사와 휴식 후에 캠프로 돌아가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10분 거리에 위치한 인도지도를 닮은 호수로 향했다. 차가운 호수에 발을 담그자 발목이 얼어붙을 듯 차가워서 20초도 버티기 힘들다.

캠프로 돌아오는 길 역시 자유롭다. 걷는 대원들은 도중에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며 오후의 태양과 계곡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을 즐겼다. 말을 탄 대원들이 부르자 숲 속으로 사라진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쇼케다런 캠프로 돌아왔다. 오늘 밤도 눈이 부실 정도로 밤하늘에 별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행탑에서 카슈미르 트레킹의 절정 맛봐

8월 5일. 일정대로라면 오늘은 비샨사르호수에서 캠프 한 후, 키샨사르호수를 경유해 니치나이(3,505m)에서 캠프를 하는 날이다.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대원들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나아갔다. 잔의 권유로 캠프 뒤쪽 언덕 위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처음부터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는 부담감에 위축되긴 했지만 말을 타고 가도 괜찮다는 라쥬의 말에 대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말을 탈 대원들과 걷는 대원이 두 개의 대열을 이뤄 사면으로 접어들었다. 말은 잠깐 사이 언덕을 훌쩍 올라섰다. 걷는 대원들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며 쉬다가 다시 말을 타고 잠깐 사이 고도를 높이는 대원들은 힘이 들지 않아서 얼굴이 밝았다. 걷는 대원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변하는 주위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나름 최고의 기분이 되어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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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 마지막 날 하산 길에 기이하게 굽어진 부르자 나무 아래에서 기념촬영.

 
3시간 후에는 언덕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해발 3,600m의 행탑(Hang top)은 전망대와 같다. 산과 계곡을 한눈에 둘러 볼 수 있는 꼭대기에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카슈미르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낙오한 대원도 없었고, 모두 즐거워하는 얼굴이다. 바람을 피해 언덕을 돌아내려와 초원 위에서 천상의 식사를 펼쳤다. 윤교근 대원의 아들 윤주열(14세) 군이 고소증세가 있어 식사를 못 하고 설사까지 했다. 내리막길에서 말을 탄 주열이의 모습은 그나마 밝아 보였다.

하산 길에 언덕 중간에 있는 작은 연못에 들렀다가 집시들의 마을에서 차와 난(빵)을 대접받고 캠프로 돌아왔다. 트레킹 중 마지막 캠프다. 아쉬운 마음에서 기우는 해를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아 맥주 파티를 즐기는 동안 김정래·윤교근 대원은 현지인들의 크리켓 게임에 끼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같이 놀고 있다. 저녁식사가 차려지기 전, 잔은 캠프 옆 바위 뒤에서 양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었다.

숯불에 두 시간가량 구워진 양고기는 트레킹으로 힘들었을 대원들에게 최고의 성찬이었을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는 앙상한 뼈만 남았고, 쿡이 정성껏 차린 저녁상은 미안하게도 건너뛰어야 했다. 필자가 일찍 텐트로 돌아와 잠에 빠진 동안 대원들은 현지 스태프와 어울려 댄스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날 역시 밤하늘에는 눈 부실 만큼 많은 별들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8월 6일, 트레킹 마지막 날. 오늘은 첫 날 올라온 언덕을 내려가는 일만 남아 출발부터 여유롭다. 아이들과 변수민 대원은 말을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사면의 숲을 지나면서 바라본 산 풍경은 첫 날 힘들어서 보지 못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사람들이 카슈미르 풍경을 유럽 알프스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과 소와 말 따위 가축들과 하늘을 찌를 듯한 침엽수와 빙하가 걸린 침봉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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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하게 펼쳐진 하산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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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케다런 초원지대를 걷고 있는 대원들.


내려오는 길이어서일까, 대원들의 발걸음은 여유롭고 한가로웠다. 트레킹을 마쳐야 한다는 아쉬움도 한몫 했으리라. 흐린 하늘이 따가운 해볕을 가려 주어 시원했다. 소나마르그에서 하산을 마친 대원들은 누구도 트레킹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두 대의 승합차를 타고 하우스 보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비몽사몽이었다. 어느새 차창 밖으로 달호수 풍경이 보였고, 잠에서 깨어난 대원들은 집으로 돌아온 듯 밝은 모습이다.

가이드 잔에게 카슈미르 지역의 다른 트레킹 코스에 대해 물었다. 눈가에 웃음이 걸린 잔의 대답은 다음 여행 대상지를 결정짓기에 충분했다. 말을 마친 잔의 얼굴에 남겨진 미소에서 ‘또 오세요’ 하는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 트레킹한 곳은 카슈미르에서는 중간쯤입니다. 알리파트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알리파트리가 최곱니다. 백 배는 나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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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5-03-02 09:45  |  수정일 : 2015-03-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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