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야당’ 낳은 국회선진화법
이현수기자
입력 2015-05-12 03:00:00 수정 2015-05-12 03:00:00
[‘甲질의 전당’ 입법권력]5분의 3 동의해야 법안처리 가능, ‘野 허락’ 필수… 다수결 원칙 깨져
국정과제 처리가 ‘정책 흥정’ 변질
“‘해머’는 사라졌지만 ‘집권 야당’이 국회를 집어삼켰다.”
4월 국회 마지막 날인 6일 여야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 민생법안 처리가 무산되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왔다. 시한에 쫓기는 ‘연말정산 소급입법’을 처리하기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이라도 통과시키자는 새누리당의 요청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의 뜻은 확고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지 않을 경우 다른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는 130석 제1야당의 몽니에 160석 집권여당은 무력할 뿐이었다.
2012년 5월 소위 ‘선진화법’으로 불린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회법 85조 2항은 ‘국회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기 위해선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 또는 소관 상임위 위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수결의 기본 원칙이 깨진 것으로 위헌 시비도 잇따른다. 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다수당의 일방적 법안 처리는 불가능해졌다. 야당의 동의가 없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장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선진화법의 등장은 국회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08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는 공사 현장에서나 나올 법한 ‘해머’가 등장했다.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단독 상정하자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해머를 동원해 회의장 문을 부쉈다.
극단적 폭력을 포함해 주요 법안 처리 때마다 등장하는 여야 대치를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 선진화법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도 커 보인다. 야당의 ‘허락’ 없이는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역설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파기한 폭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다수의 선택을 받아 다수당이 됐을지라도 핵심 정책과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수 야당의 ‘양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 당 관계자는 “여당의 단독 처리 수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야당에 대한 상당한 압박이 됐지만 지금 야당은 무서울 게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선진화법을 볼모로 ‘제왕적 야당’이라는 괴물이 나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가 겉으로는 싸우는 척하면서도 선진화법을 계기로 비대해진 입법 권력을 즐기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선진화법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대화’와 ‘타협’으로 선진화된 국회 운영을 하겠다는 여야의 대국민 약속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국회를 ‘선진화’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기득권을 늘리는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새누리당은 선진화법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이현수 기자 soo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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