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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는 국고보조금] [2] 의사면허 빌려 세운 '사무장 病院'… 6년동안 의료보조금 6500억 꿀꺽

화이트보스 2015. 6. 1. 16:46

도둑 맞는 국고보조금] [2] 의사면허 빌려 세운 '사무장 病院'… 6년동안 의료보조금 6500억 꿀꺽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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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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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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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6.01 03:00

    [적발된 불법병원만 전국 826곳]

    전과 10犯인 목사, 보조금 노리고 요양병원 세워
    치과 차린 카센터 사장, 택시기사 상대 불법진료
    월급제 의사 고용하면서 "의료 면허 명의 빌려달라, 월급 1000만원 주겠다"

    대구의 한 요양병원. 80병상 규모의 실내가 휑했다. 침대 시트와 이불이 밖으로 다 나와 있었다. 간호사는 "폐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80·90대 환자 상당수는 이미 퇴원 조치했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대구의 다른 신장 투석 전문 병원 역시 20여 병상의 병실이 텅 비어 있다. 간호사는 "이미 입원해 있는 환자를 내쫓을 수도 없지 않으냐"고 했다. 두 병원 모두 폐업을 앞두고 있었다. 병원 소유자인 전모(56) 목사가 애초 보조금을 빼먹기 위해 세운 불법 병원이라는 사실이 경찰에 적발됐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에서는 정비공 출신으로 카센터를 운영하던 김모(57)씨가 치과 의사들을 면접했다. 김씨의 채용 조건은 간단했다. "치과를 차리려는데 의료 면허 명의만 빌려달라. 월급은 1000만원씩 주겠다"는 것이었다. 목사가 세운 신장 투석 병원이나 카센터 사장이 차린 치과 모두 서류를 위조하고 '페이 닥터(월급제 의사)'를 고용한 일명 '사무장 병원'이었다.

    
	대구의 한 목사가 불법으로 차린 사무장 병원. 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고령 환자들은 경찰 적발 뒤 병원이 문을 닫게 되자 퇴원 조치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대구의 한 목사가 불법으로 차린 사무장 병원. 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고령 환자들은 경찰 적발 뒤 병원이 문을 닫게 되자 퇴원 조치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박국희 기자

    매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막대한 의료급여 보조금이 불법 사무장 병원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공단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09~ 2014) 적발된 사무장 병원은 826개로 이들이 공단에서 불법으로 빼돌린 의료급여 보조금은 6459억원에 달했다. 지난 2009년 5억6000만원이던 금액 규모는 2014년 3681억4000만원으로 654배 증가할 만큼 사무장 병원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현금이 부족한 의사들은 자신의 의료 면허를 빌려주고 페이 닥터를 자청해 매달 고액의 월급을 챙기고, 이들을 고용해 사무장 병원을 세운 이들은 '나이롱 환자'(가짜 환자)나 의료수가(醫療酬價) 부풀리기를 통해 공단에서 보조금을 빼먹는 상호 이득 구조다.

    대구에서 불법 사무장 병원을 운영하다 구속된 전씨는 일요일에는 대구 시내 B교회에서 설교를 하며 목사로 활동했고 주 중에는 신장 투석 병원의 본부장 직함을 걸고 병원으로 출근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병원은 의사 면허가 있는 의료인만 세울 수 있다. 예외적으로 300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법인 병원을 세우면 되는데, 전씨는 조합원 명부를 위조해 두 개의 불법 병원을 세웠다. 서류상 가짜 의료생협의 대표로는 자신이 담임목사로 있던 B교회의 이모(56) 장로를 내세웠다.

    사실 치료를 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일반 병원과 사무장 병원을 구분할 수 없었다. 전씨는 병원을 세운 2012년부터 작년 말까지 2년8개월간 환자들을 치료한 대가로 보험공단에서 보조금 70억원을 타낸 뒤 이 중 최소 9억원을 빼돌렸다.

    본부장 직함으로 나오는 매달 900만원 월급으로만 1억9200만원을 받았고, 요양병원이 자신의 교회에 헌금을 하는 수법으로 17회에 걸쳐 1억2500만원을 챙겼다. 전씨는 폭행 등 전과 10범이었다. 병원 폐업을 앞두고 애꿎은 환자들만 피해를 봤다. 전씨는 지난 4월 구속됐다.

    ◇"내가 차를 고쳐줬지만 이제는 치아를 고쳐주겠다"

    서울 노원경찰서에 적발된 김씨는 카센터 업계의 수익성이 나빠지자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려 치과를 차리기로 했다. 의사 명의를 빌려 합법적으로 병원을 세운 뒤 건강보험공단에서 보조금을 타내는 사무장 병원의 전형적 형태였다. 70대 이상 고령의 의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개원의, 개업을 앞두고 목돈이 필요한 초년병 의사들이 이런 식으로 명의를 빌려주고 페이 닥터를 자원한다.

    김씨는 과거 자신이 카센터 사장으로 있었을 때 단골손님이었던 노원구 일대의 택시 기사들을 상대로 수건을 돌리며 '반값 할인' 광고를 했다. 사무장 병원의 경우 '나이롱 환자'를 유치하거나 하지도 않은 치료를 했다고 부풀리기 신고를 하며 건강보험공단에서 보조금만 빼먹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을 상대로 공짜 치료를 내걸기도 한다. 작년 초까지 4년간 치과를 운영한 김씨는 보조금 2억3000만원을 타냈다.

    사무장 병원의 페이 닥터들은 면허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받는 월급에만 신경을 쓴다. 김씨 치과의 의사들은 아예 '1년 약정'을 하고 근무한 뒤 떠났다. 부작용을 호소하며 합의금을 요구하는 환자가 속출했다.

    최근 6년간 사무장 병원이 공단에서 불법으로 타간 부당 이득금은 6459억원에 달했지만 징수된 금액은 505억원뿐이다. 징수율은 7%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