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마우스와 서류 대신 달걀과 닭모이를 든 젊은이들. 전남 곡성군 스트롱에그 협동조합 양계장에서 문국 이사(왼쪽)와 남궁지환 이사가 닭 500마리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스트롱에그 협동조합 제공
전남 해남군 계곡면에 위치한 청정농원의 이용희 대표(36)는 소위 명문대 출신 농부다. 고려대를 졸업해 스포츠용품업체의 마케터로 일했었다.그러던 2005년, 해남에서 절인 배추를 파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배추를 정성 들여 재배하는 모습을 블로그에 올렸다. 뻔한 농산물이라도 이야깃거리를 붙여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해발 350m의 고랭지에서 청정한 지하수를 뽑아서 배추를 길렀다. 간수가 빠진 전남 신안군의 여름소금만 쓴다’는 식이다. 배추 값이 폭등하면서 대박이 났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3억 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농산물 가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이듬해 아예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는 못생긴 고구마와 호박이 제값을 못 받는 점을 눈여겨보고 이를 재료로 건강호두과자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계절별로 다른 작물을 팔아 현재 연매출 4억∼5억 원을 올리고 있다. 귀농 직후에는 좋은 대학을 나와 기껏 농사짓느냐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도 엄연한 사업’이라고 맞받아치는 여유가 생겼다. 김 씨는 “직장 생활을 해도 20년 뒤에는 퇴직해서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며 “남들보다 빨리 ‘평생 직업’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던 농업에서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보고 농촌에 몰리는 20, 30대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농사짓는 데에서 한발 나아가 농업에 관광산업, 정보기술(IT)이나 가공기술 등을 결합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숨은 일자리’를 찾아내고 있다.
○ 축산업에 IT와 디자인, 브랜드 컨설팅 접목하다
젊은 귀농인이 늘면서 농업도 성장산업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284만 명인 국내 농촌 인구는 급속한 고령화로 매년 10만∼15만 명씩 감소하고 있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각종 기술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농업에 가세하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시 말해 접근을 달리하면 농업과 같은 전통적인 산업에서도 신규 일자리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귀농한 젊은이들 중에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벤처기업을 창업하듯 ‘창농(創農)’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친환경 달걀 생산협동조합인 ‘스트롱에그’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디자인과 IT, 브랜드 컨설팅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이 지난해 4월 세운 ‘축산 벤처기업’이다.
전남 곡성군 옥과면에 자리한 스트롱에그의 양계장에 들어서면 폐쇄회로(CC)TV가 곳곳에 달려 있다. 이들은 ‘닭답게 사는 닭’이 낳은 달걀을 판다는 구호를 내걸고 홈페이지를 통해 닭들이 자라는 환경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다수 달걀이 밀집 사육장에서 사육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이들은 친환경 축사를 짓고 양계장 바닥에 볏짚을 깔았다. 닭들에게 야생들풀과 토착 미생물을 발효시킨 사료를 먹인다. 닭들도 햇빛을 받는 등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건강한 달걀을 낳는다는 취지다.
이런 사업을 구상하기까지는 창업 멤버들의 다양한 이력이 한몫했다. 중국 칭화(淸華)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신동호 대표(33)가 IT 시스템을 구축했고, 경영학을 공부한 남궁지환 이사(31)가 브랜드를 붙이고 건강한 달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디자이너였던 문국 이사(30)는 달걀 캐릭터를 그렸다. 이들은 “친구 3명이 퇴직금을 털어 회사를 세웠다”며 “친환경 달걀 생산에 그치지 않고 달걀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 연 2조 원에 이르는 국내 달걀 시장 판도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 블루베리 농장캠핑과 모바일 앱의 실험
농사라는 1차 산업에 그치지 않고 체험·관광 등 3차 산업을 결합한 창업도 각광받고 있다. 충북 음성군에서 블루베리 농장을 운영하는 이석무 씨(31)는 농장에서 즐기는 캠핑을 ‘팜핑(농장을 뜻하는 팜과 캠핑의 합성어)’이라는 상품으로 발전시켰다. ‘강남 토박이’인 그는 4, 5년 전까지만 해도 금융사 취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아 창업 아이템을 알아보다가 블루베리를 접했다. 고령화 시대에 항산화 식품인 블루베리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 단, 국내에도 블루베리 농장이 많은 만큼 단순히 블루베리를 파는 것만으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농장에서 블루베리를 넣은 바비큐를 굽고 블루베리 잼을 만들며 블루베리 따는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도시인들에게 여유시간이 많아지면서 농촌 체험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 게 적중했다. 매년 1000∼1500명이 이곳에 몰리면서 그는 연매출 1억5000만 원을 거두고 있다. 이 씨는 “취업하지 않은 것에 후회는 없다”며 “농업을 통해 도시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것은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오 씨는 ‘흙에서 멀어진 식재료는 점점 생명을 잃어간다’는 신념에 따라 고향 땅에서 생산된 신선한 식재료를 바로 가공해 죽을 만들고 있다. 그는 하동솔잎을 먹인 한우와 자연 방사해 키운 유정란, 오메가3가 들어간 쌀 등을 재료로 쓴다. 또 고객층이 25∼35세의 젊은 주부라는 점에 착안해 인터넷은 물론이고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으로도 이유식을 판매한다. 현재 고객이 7000여 명으로 지난해 매출액이 3억 원을 돌파했다. 그는 “대기업 못지않은 식품기업으로 키워 동네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더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유영 abc@donga.com ·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