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사장 뒤편 고층 아파트에는 ‘북-중 경제무역의 새로운 장을 열다’는 중국어 문구가 적힌 빨간색 플래카드가 길게 걸려 있었다. 행사장 주변과 거리 곳곳에도 중국 오성홍기와 북한 인공기가 가득 걸려 북-중 우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거리 곳곳에도 ‘호시 무역구’ 개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였다. 행사장 주변에는 ‘가발 생산자 200명이 있는 임가공 공장을 찾습니다’ ‘조중(북한과 중국) 현금거래의 새 통로를 개척하고 호상(互相) 무역을 통해 호상리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처럼 중국 측 사업 파트너들을 찾는 북한식 안내문들도 즐비했다.
‘호시 무역구’가 들어서는 곳은 단둥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로 비교적 외곽에 속한다. 북한과 중국 주민들의 무관세 교역 구역으로 양국 국경지역 반경 20km 이내 거주자라면 누구나 하루 8000위안(약 143만 원) 이하의 상품을 관세 없이 사고팔 수 있다. 국경무역의 일종인 ‘호시’는 한반도와 국경을 맞댄 단둥이 가진 지리적 특징 때문에 구한말까지 유지됐으나 일제 강점 후 중단됐다가 이번에 100년 만에 부활돼 관심을 끌었다. 향후 북한과 중국을 잇는 ‘중조 압록강대교’까지 개통되면 단둥을 통한 북-중 교역은 한층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 “中과 교역 트자” 北기업 100개 몰려 ▼
행사장에서 만난 단둥 시 계획국 소속 50대 중간 간부는 “지난 3년간 북-중 관계가 얼어붙었지만 10일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의 북한 열병식 참가를 계기로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고 있다”며 “북-중 관계가 개선되면 단둥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류융셩(劉勇勝) 투자유치 총감은 “한국 러시아도 점포 개설이 가능하다”며 “1, 2층을 함께 쓸 수 있는 점포 면적 72m²당 보증금 1000위안(약 18만 원)에 월세 1700위안(약 30만 원)만 내면 2년 계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관심이 있는 한국 투자자들이 일정 수 있으면 한인회 등을 찾아가 설명회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임대를 고려하고 있다는 단둥의 한 교민은 행사장에서 기자에게 “한국 제품이 북한에 판매될 수 있는 합법적 통로가 열린 셈”이라고 했다.
단둥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단둥 시 연간 무역액의 40%가 북한과의 거래이고 북한도 대중 무역의 70%를 단둥에서 하고 있다”며 “5·24조치로 대북 거래가 완전히 끊겨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이번 호시 무역구 개설로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단둥 시 공안 자료에 따르면 6, 7년 전 3000여 명에 이르던 한국인은 북-중 교역 중단으로 700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무역구 개소식과 별도로 자동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제4회 북-중 경제무역관광박람회(15∼18일)도 열렸다. 매년 열리는 박람회이지만 올해 처음으로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국가급 행사로 격상됐다. 북한은 무역성, 외무성, 국제전람사, 만수대 창작사, 투자합영우원회 등으로 400여 명(무역대표 300명 포함)의 대표단을 파견했으며 총 100개의 기업을 보내 달라진 북-중 관계를 느끼게 했다.
박람회장 건물 오른쪽 먹거리 시장(일종의 푸드코트)에는 중국과 북한의 다양한 음식들이 선보였는데 단둥에 진출한 북한 식당인 ‘해당화’ 등도 보였다. 의류 식품 민속문화 장식품 의약품 등 북한 물품들을 선보인 ‘조선 전시 구역’에 자리한 100여 개 부스에는 천장까지 인공기로 가득했다. 주변을 오가는 대다수 북한 상인들은 가슴에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었다. ‘금강산 관광총공사’에서 나왔다는 한 북한 여성은 꿀을 들어 보이며 “이 꿀만 먹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자랑했다. 희귀 돌(石)을 판다는 ‘고려 미석관’의 한 북한 남성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박람회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했다.
북한은 상품 전시관과 별도로 홍보관을 설치해 주로 중국어로 제작한 북한 안내책자와 관광지 소개, 김일성 3대의 어록집 등을 팔기도 했다. 홍보관 정면에는 왼쪽부터 김정일 김일성 김정은의 활동사진을 걸었다. 마치 평양 한복판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