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 사회부장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정문에서 가까운 제2 묘역.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사병들의 묘역인 이곳에 장군 무덤이 하나 있다.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 지난 2013년 타계한 그는 유언으로 사병들과 함께 묻히겠다고 했다. 26.4㎡(8평)가 주어지는 장군묘역이 아닌 3.3㎡(1평)의 사병묘역을 원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를 20년 넘게 보좌한 정재성 예비역 대위는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6·25와 베트남전에서 생사의 기로를 수없이 겪었기 때문에 전사자의 애절함을 잘 안다. 장군께서 현충원을 찾아 부하들의 묘비를 붙잡고 통곡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죽으면 전우들 곁에 묻혀야 하겠다고 평소에도 말했다.”
최근 현충원에 갔다가 채 장군의 무덤을 찾았다. 그의 묘는 사병묘역 맨 앞에서 부하들을 아버지처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장군묘역에서 여러 별들 중 하나로 있는 것보다 빛나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베트남전 영웅인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5·16 쿠데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나, 정치권으로 진출하지 않고 군으로 복귀했다. 박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 선포에 강력히 반대했고, 그 탓에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한 채 중장으로 예편했다. 전역 이후 스웨덴과 그리스, 브라질 대사를 지내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말년에는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를 통해 자신이 경험한 전쟁의 교훈을 설파했다.
채 장군을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가 권위의식 없이 소탈한 성품이었으나 공적 규범 준수엔 엄격했다고. 1960년대에 그를 돕는 당번병 역할을 했다는 이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 “장군은 당시 군대에 만연했던 군수품 비리를 없애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간부들이 보급품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착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병사들의 팬티까지 일일이 살펴볼 정도였다.”
해군의 한 준장이 장병들의 부식비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채 장군의 일화가 떠올랐다. 구속된 준장은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임무를 맡았던 청해부대 12진 함장이었다. 아덴만 여명작전 등으로 쌓아올린 청해부대 명예가 그로 인해 한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해군은 뒤숭숭한 참이다. 참모총장을 지낸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해상작전헬기 도입 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는 탓이다. 독립운동의 거목인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도 헬기 비리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육·해·공군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방산 비리는 보는 이를 헛헛하게 만든다. ‘방산’이 마치 ‘비리’와 한 묶음의 단어인 것처럼 운위되는 현실이다. 정부가 29일 ‘방산 비리 척결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책의 골자는 방위
사업청의 사업을 상시 검증하는 감독관을 두고, 감사관실 인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軍)피아’가 장악한 방사청 구조를 놔두고 감독 인원만 늘린다고 비리가 근절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군과 방사청으로부터 독립된 외부 전문 감사기관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군은 이런 불신을 받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일부의 부패가 전체 군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인 군 장성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신독(愼獨)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옛말에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고 했다.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방산 브로커의 유혹쯤은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직자의 탈을 쓴 도둑일 뿐이다. 그런 도둑이 많으면 부패의 두엄자리가 깊고 넓게 퍼져간다. 이 두엄자리에서 체제 부정의 독버섯이 자란다. 국가 공동체를 흔들려는 세력이 기승을 부린다.
물론 국가 전복을 선동한 이석기 일당을 황당하게 여길 만큼 우리 국민의 체제 신뢰는 강건하다. 하지만 공직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그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치솟는다면, 이석기류의 선동이 변혁의 복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비리를 저지른 군 장성은 반체제 세력의 연합군이다.
채명신 장군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자유베트남이 패망한 것은 부패를 틈탄 내부 공산세력의 발호 때문이었다. 내부가 썩은 국가는 외부의 어떤 도움에도 결국 망한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